기획 완결 현대미술 이야기

멕시코 전통문화 세계에 알린 국민화가

입력 2022. 06. 28   16:56
업데이트 2022. 06. 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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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
 
남부 테우안테펙 여행 현지 풍속 매료
전통의상·민속풍습 사실적 묘사
단순 색상 사용 따뜻한 인간애 표현
이탈리아 여행 계기 벽화 운동에 빠져
미국 이주 자본주의·금융 만능 비판

 

‘토르티야를 만드는 사람’, 1924년, 캔버스에 유채,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정부 소장.
‘토르티야를 만드는 사람’, 1924년, 캔버스에 유채,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정부 소장.

‘월스트리트 연회’, 1923~1928년, 프레스코화, 멕시코시티 교육부 소장.
‘월스트리트 연회’, 1923~1928년, 프레스코화, 멕시코시티 교육부 소장.

‘무기 배급-혁명의 발라드 부분’, 1923~1928년, 프레스코화, 멕시코시티 교육부 소장.
‘무기 배급-혁명의 발라드 부분’, 1923~1928년, 프레스코화, 멕시코시티 교육부 소장.

변방에 있던 멕시코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린 화가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다. 리베라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멕시코 베라크루즈 주지사의 장학금 덕분에 스페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후 1921년 멕시코로 돌아온 리베라는 1922년 말 멕시코 남부 테우안테펙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풍속에 매료되었다. 테우안테펙은 멕시코 해안 북쪽 캄페체만과 멕시코 해안 남부 테우안테펙만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콜럼버스 이전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정복을 거쳐 식민지화되었음에도 토착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테우안테펙의 여행은 리베라의 작품 세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통을 지키는 테우안테펙으로의 여행을 통해 멕시코의 전통적인 풍속에 빠진 리베라는 이후 작품의 주제가 유럽적인 것에서 멕시코 민속적인 것으로 바뀐다. 리베라가 멕시코 문화를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토르티야를 만드는 사람’이다.

화면 왼쪽 붉은색 숄을 두른 소녀가 의자에 앉아 절구에 옥수수를 빻고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은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펴고 있다. 멕시코 전통의상인 흰색 옷을 입은 여인이 반죽하는 둥근 형태는 토르티야다. 멕시코산 빵인 토르티야는 옥수수나 밀가루를 반죽해 팬에 구워 먹는데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식이 됐다.

화덕에 올려진 팬 위의 노란 것은 옥수수, 흰색은 밀가루인데 두 개의 화덕이 놓인 부엌을 나타내며 장식이나 가구가 없는 것은 이곳이 가난한 농가임을 암시한다.

또 배경의 밝은 노란색 벽은 이곳이 흙으로 지어진 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리베라는 노란색과 주황색 등 단순한 색상을 사용해 평화롭고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애를 표현했으며 멕시코적인 주제를 살리기 위해 고전주의 양식을 택했다.

하지만 리베라가 멕시코 전통만 고집한 것은 아니다. 그의 예술적 근원은 서양 미술이었다. 리베라는 15년 동안 유럽에 거주하는 동안 당시 세계 미술을 주도했던 신인상주의, 큐비즘, 상징주의 등 다양한 미술 사조를 경험한다. 또 리베라는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비잔틴에서 미켈란젤로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 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프레스코 벽화에 빠진 리베라는 이를 멕시코 전통문화와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으며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1920년대 멕시코에서 시작된 벽화 운동이다.

벽화 운동은 1910년 발발한 멕시코 혁명이 시발점이었다. 기존 독재체제를 타도하고 반(反)식민지적 사회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했던 멕시코 혁명은 인디오의 문화와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부흥시켜야 한다는 인디오 전통 부흥 운동으로 이어진다. 벽화는 근대 멕시코의 시각예술 운동으로서 민족주의적 행위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급진적인 실천 미술의 서막을 알렸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중요한 혁명사를 내포해 멕시코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리베라가 멕시코 혁명을 그린 대표적인 벽화가 ‘무기 배급-혁명의 발라드 부분’이다. 이 작품은 멕시코 혁명을 표현하고 있다.

화면 중앙 붉은색 옷을 입은 프리다 칼로가 노동자들에게 무기를 배급하고 있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짙은 눈썹이 그림 속 여인이 프리다 칼로임을 알려준다.

당시 프리다는 계급투쟁을 위해 무장봉기한 노동자들을 지지했었다.

프리다 뒤에서 오른손에 깃발을 들고 왼손으로 노동자들을 가리키고 있는 남자는 노동자들을 선동하는 혁명 지도자를 나타낸다.

왼손이 가리키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가 추구하고 있는 이념을 암시하는데 흰색의 옷과 밀짚모자, 그리고 붉은색 스카프는 멕시코의 전형적인 농부를 나타낸다.

화면 왼쪽 기계는 그림 속 인물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임을 나타내며 중앙 하단의 상자에서 무기를 꺼내는 어린이는 당시 혁명에 농부, 노동자뿐만 아니라 어린이도 참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면 왼쪽 크게 그려진 노동자는 리베라의 친구다. 오른쪽 붉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여인은 쿠바 공산주의자 메야의 연인이며 그 옆에 선 인물이 메야다. 그는 벽화 제작 당시 멕시코에 망명한 상태였다.

이 작품은 1920년대 후반 리베라가 멕시코 정부를 위해 완성한 벽화 중 하나다. 리베라는 연작에 멕시코 사람들의 열망을 담기 위해 실제의 사건과 상상의 사건을 벽화에 그려 넣었다. 또한 그는 사람들에게 쉽게 읽힐 수 있도록 검은색 윤곽선과 대담하고 대조적인 색채를 사용했다.

멕시코에서 국민 화가로 활동하던 리베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게 해 줄 곳이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화가가 되기를 원했던 리베라는 미국으로 이주한다.

미국에서 그가 느낀 것은 거대한 자본주의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였다. 리베라가 자본주의를 비판한 작품이 ‘월스트리트 연회’이다.

화면 정면의 거대한 금고 앞 식탁 의자에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정장 차림의 남자와 여자는 식탁 위 기계에서 나오는 종이를 쥐고 있으며 식탁에는 얼음에 담긴 샴페인이 놓여 있다. 사람들 앞에는 반쯤 채워진 샴페인 잔이 놓여 있고 식탁 끝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 불을 밝히고 있다. 정면의 거대한 금고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자금력을 상징하며 식탁 위 기계에서 나오는 기다란 종이는 증권을 암시한다.

사람들이 종이를 쥐고 있는 것은 그들이 금융업 종사자라는 것은 의미한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곳이 미국 월스트리트라는 것을, 자유의 여신상 형태의 조명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은 24시간 돌아가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말한다. 정장 차림의 남자와 보석 장신구를 한 여인, 그리고 돈 가방은 그들이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고액의 연봉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금고 옆 검은색 스피커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주시하는 대중들을 암시하고 화려하고 즐거운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찡그리고 있는 것은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그들의 생활을 보여준다.

화면 왼쪽의 잘 차려입은 여자에게 식탁 밑으로 손을 내밀고 있는 남자는 미국 상류층의 방탕한 삶을 나타내는데 장미꽃은 여성을, 의자 밑에 떨어진 장갑은 남녀의 은밀한 만남을 묘사한다. 리베라는 가장 눈에 잘 띄는 화면 정면에 금고를 그려 넣어 금융 만능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리베라는 미국에서 원했던 것을 이루지 못한다. 록펠러 재단에서 의뢰한 벽화를 제작하는 동안 록펠러가 싫어했던 공산주의 인물들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결국 록펠러는 벽화 제작을 중단시켰고 이로 인해 리베라는 미국에서의 원하던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멕시코로 돌아간다.

리베라는 멕시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이자 현대 라틴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정치적으로 깨어 있으면서도 사고는 자유로우며 비종교적이었다. 리베라는 농민과 노동자같이 억압받는 계층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통의상이나 민속풍습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이미지=필자 제공


필자 박희숙 작가는 동덕여대 미술대학,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 『클림트』,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을 저술했다.
필자 박희숙 작가는 동덕여대 미술대학, 성신여대 조형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 『클림트』,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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