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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통합사관학교 들어서니 6·25전쟁 기념탑 ‘우뚝’

기사입력 2022. 06. 24   16:22 최종수정 2022. 06. 26   13:32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
74. 필리핀 ⑤
 
제복·명예규정 등 미국식 제도 닮아
사회적 지위 보장…최고 인재만 모여
엄격한 교육과정 250명 정도만 임관
 
태평양전쟁과 함께한 도시 ‘바기오’
역사박물관, 치열한 전쟁 흔적 전시
총탄 자국 남은 건물, 카페로 운영도


필리핀 사관학교 영내 도로 옆에 세워진 6·25전쟁 참전기념탑.
바기오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태평양전쟁 유물.
미국 웨스트포인트 예복과 비슷한 필리핀 사관생도 예복.

“한 국가의 국방력을 보려면 그 나라 사관생도들을 보라”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군 간부 선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전쟁 역사에서 뛰어난 장수 한 명이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례는 너무나 흔하다. 민족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도 최악의 조건에서 23전 23승이라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면서 조국을 수호했다. 오늘날 선진 군사강국은 유능한 국방인력 양성을 위해 국가 자원을 최우선으로 투자하고 있다. 필리핀 역시 우수한 장교단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서민들의 발 ‘지프니’ 차장이 되다

필리핀 바기오의 한인 식당 사장 K씨는 삼겹살·해산물을 무한 리필하는 뷔페식당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저렴한 가격과 풍부한 먹거리에 손님들이 몰려왔고, 종업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의 사업 경험담을 듣던 중 선교사 J씨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에 사관학교 정문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 당일, 현장에 이미 가 본 경험이 있어 택시 대신 마을버스 지프니를 탔다. 소형 트럭 같은 지프니는 튼튼했고, 경사길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승객은 안쪽부터 차곡차곡 자리를 잡되 내릴 곳이 다가오면 천장을 ‘꽝꽝’ 친다. 정해진 정류소도 없으며, 도로에서 누구든지 손을 들면 멈춘다. 요금 16페소(약 380원)를 운전석 뒤편 승객에게 전달하면 기사에게 건네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좌석이 안쪽으로 밀려 필자가 자연스럽게 차장(?)을 맡게 됐다. 중차대한 소임을 맡은 부담에 혹시 무임승차 승객이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살폈으나 모두 정확하게 요금을 낸다. 사관학교 근처에 다다를 무렵, 출입구의 승객이 10페소만 전달해 준다. 그 사람에게 눈을 흘기면서 “저 승객이 이 요금밖에 내지 않았다”고 이실직고(以實直告)했다. 운전사가 힐끔 뒤로 보더니만 “학생 할인 대상”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최고 인재들이 모이는 필리핀 사관학교

22년째 바기오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는 J씨는 지난 4월 23일 영내 행사인 필리핀군의 6·25전쟁 ‘율동전투’ 기념식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정문을 통과한 뒤 2차로를 따라 들어가면 학교 창설탑, 6·25전쟁 기념탑 등 다양한 역사 상징물이 보인다. 필리핀은 1936년 12월 21일 미국 지원으로 4년제 육군사관학교를 창설했다.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사관학교는 생도 제복, 명예규정 등이 미국식 제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1993년에는 육·해·공군사관학교를 합쳐 통합사관학교로 재출범했다. 매년 350명의 생도가 선발된다.

그러나 엄격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평균 30%가 낙오해 250명 정도 임관한다. 거짓말·술·마약을 하거나 매음클럽 출입 즉시 퇴교당한다. 2018년에는 2만9601명이 사관학교에 응시해 85 대 1의 높은 입시경쟁률을 보였다. 무료 대학교육과 급여 및 별도 수당이 제공되며, 졸업 후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는 장교가 되는 이 학교는 고교생들의 선망 대상이다.

국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이 캠퍼스에는 필리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다고 한다. 6·25전쟁 참전기념탑을 살펴보던 중 깃발을 들고 뜀걸음 중인 한 무리의 생도들을 만났다. 입학 최소 기준 키는 152.4㎝지만 대부분 한국 청년 평균 체격과 비슷해 보였다. “휴일에 단체운동을 시키면 생도들이 불평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내 장교는 “체력 요망 수준에 미달하는 생도들의 자율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간부 육성 실패가 주는 역사적 교훈

1701년 세계 최초로 덴마크 왕립 해군사관학교가 탄생했다. 항해술과 함포 운용 등 근대적인 군사기술 교육이 설립 목표였다. 뒤이어 1720년에 영국 육군사관학교가, 1748년에는 프랑스에서 병과별 사관학교가 창설됐다. 나폴레옹과 같은 걸출한 군사지도자가 사관학교 교육을 통해 배출되자 모든 유럽 국가가 경쟁적으로 비슷한 군사학교를 설립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 말인 1881년 별기군 창설과 더불어 장교 양성을 목표로 ‘사관생도대’를 설립했지만 임오군란으로 해체됐다. 1893년에는 강화도에 ‘통제영학당’(해군사관학교)을 건립해 해군 장교 육성을 시도했다. 영국 해군 장교와 부사관을 교관단으로 초빙했으나 청일전쟁 여파와 재정 부족으로 1895년 폐교됐다.

1898년 육군무관학교(육군사관학교)가 생기면서 비로소 체계적인 장교 양성이 이뤄지는 듯했다. 200명 내외의 신입생이 1년 6개월의 군사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1907년 군대 해산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무관학교 역시 1909년 해체됐다. 이 학교 졸업생은 280~500명 정도로 추정된다. 1800년대 말, 격동의 시기에 거듭된 군 간부 육성정책의 실패로 결국 조선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다. 강제합병 이후 무관학교 출신 일부가 만주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참여해 독립군을 양성했다. 이처럼 조선의 국방 인재 육성 실패는 뼈아픈 ‘망국의 상흔’을 남기고야 말았다.


전쟁 역사의 산교육장, 카페 ‘폐허에서 부활한 찻집’

흔히 바기오를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도시”라고 한다. 3층 건물의 역사박물관에는 주로 원주민 생활상과 바기오 소개자료들이 많다. 하지만 2층 전시관은 태평양전쟁 유물과 사진류가 집중적으로 비치돼 있다. 전쟁 발발 호외, 시내 폭격, 미군 반격과 일본군 항복 등 치열했던 전쟁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 준다. 또 시청 앞에는 ‘카페 바이 더 루인스(Cafe by the Ruins·폐허에서 부활한 찻집)’라는 관광명소가 있다. 커피, 빵, 간단한 식사류를 파는 이곳은 최소 20~30분 대기해야만 겨우 자리를 얻는다. 전쟁 당시 파괴된 건물을 개조한 독특한 찻집이다. 총탄 자국이 있는 외벽과 무너져 내린 일부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전쟁 잔해가 손님 대화에 오르는 순간, 필리핀 역사현장 수업은 시작될 것 같았다.


‘고난의 행군’ 바탄반도 가는 길

선교사 J씨의 소개로 필리핀 경찰과의 수사 협조를 위해 바기오에 파견된 H경감을 만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필리핀 치안 수준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한국인 사고의 대부분이 유흥가나 술집에서 일어난다고 한다. 바기오에서 다시 남부지방 바탄반도로 가는 시외버스를 탔다. 찬찬히 창밖을 살펴보니 험준한 산정에도 곳곳에 골프장들이 보였다. 거의 5시간이 지난 후 바탄반도행 버스로 갈아타는 다우에 도착했다. 전쟁유적지가 몰려 있는 발랑가까지 또다시 버스로 3시간 정도 가야 한단다. 시간 절약을 위해 과감하게 한 시간 내 목적지 도착이 가능하다는 택시를 계약했다. 그러나 이 선택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진=필자 제공


필자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50여 개국을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쟁유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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