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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33회] 터키型 자주포 공동 개발

신인호

입력 2022. 06. 20   07:35
업데이트 2022. 06.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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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터키 지상군사령부 사이에 진행되던 독일의 PzH2000 자주포 공동생산 계획이 1999년 독일 국내 문제로 중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물실호기(勿失好機). 국방부는 K9의 터키 수출에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군사외교 역량을 더욱 강화했다. 조성태(육군대장 예편·2021년 별세) 국방부 장관의 터키 방문이 그해 11월17일에 이뤄졌다. 19일까지의 방문 중 양국 국방장관회담이 터키 군부 고위층이 배석한 가운데 열렸다. 


조 장관은 군사·교육협력에 관한 협정과 함께 방산협력 및 방산품 품질보증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 양국 간 방산협력의 토대를 다졌다. 참석자들이 K9 자주포를 소개하는 비디오를 시청하는 가운데 조 장관은 K9 자주포의 공동생산이 이뤄질 경우 한국 국방부의 공식적 보증을 약속했다. 


터키 지상군사령부는 12월1일 K9 자주포의 성능과 방산 능력을 실제 확인할 실사단을 한국에 파견할 의향이 있다고 전해온 데 이어 12월12일 기술기획부장(아크차이 준장)을 단장으로 한 실사단이 내한했다. 아크차이 준장 등 터키 실사단은 방한 때까지만해도 한국의 K9 자주포 개발을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주일 간 토의와 국방과학연구소 종합시험장에서의 K9 사격시범,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위아·풍산 등의 생산시설 견학을 마친 후 성능 신뢰는 물론 우리의 기술력과 방산 기반에 놀라고 부러워했다.


특히 K9 사격시범 관람 후 상호 인사 및 소개하는 자리에서 아크차이 준장은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에 연방 "한국의 세계적 성능의 자주포 개발을 축하한다"며 K9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간접적으로 표시했다. 


실사단은 터키로 돌아가 터키 지상군사령부에 한국과 기술협력할 것을 건의했다. 이로 인해 당시 터키 실사단은 그들의 자주포 사업과 관련, 이스라엘을 방문키로 한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2000년 2월 K9의 기술이전 공동생산 추진과 관련, 기술평가단을 파견해줄 것을 한국 측에 요청했다. 이에 국방부는 국방과학연구소 자주포체계팀장 김동수(육군대령 예편·작고)박사를 단장으로 국방부·업체 등 11명의 기술평가단을 구성, 2월19일 파견했다. 


기술평가단은 터키의 1010창(한국의 종합정비창에 해당하지만 정비뿐만 아니라 개발도 함)을 시작으로 MKEK(터키의 국영 방산 그룹)·ASELSAN(전자회사) 등을 방문, 자주포 관련 터키의 방산 수준을 조사하고 양국의 관심사항 및 터키형 자주포 공동개발에 대한 기본 방안을 협의했다.


"향후 계획 수립을 위한 일정·협력 방법 등 협의된 기본 내용과 방향은 터키가 한국의 K9 자주포 주요 구성품을 도입하고 한국의 기술지원으로 터키형 자주포를 공동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김동수 기술평가단장)


2월16일 기본방안을 터키 측과 합의한 기술평가단은 이튿날 이스탄불을 문화탐방하면서 과거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키던 오스만제국의 토푸카푸 성에 올랐다. 그곳에는 마침 당시 사용하던 대포가 놓여 있었는데, 토푸카푸란 대포와 문이라는 터키어의 합성어. 


김동수 대령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우리는 토푸카푸 회원이다. 우리가 희생과 협조로 노력하면 K9 수출은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앞으로 인사할 때는 토푸하고 카푸로 받자"고 제안했다. 김응천 중령은 "이것이 기술평가단장으로서 사업의 성공을 위해 책임·단결을 유도하는 결정적 리더십이었다"고 술회했다.


기술평가단이 귀국 후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국방부는 한국 측의 양해각서안을 작성해 터키에 보내고 터키 측은 수정안을 작성, 보내오는 등 국방부와 터키 지상군사령부는 3차에 걸친 협상을 가진 뒤 5월 양해각서 체결을 눈앞에 두게 됐다.


마침내 5월4일. 터키 지상군사령관 아테쉬 육군대장이 한국을 방문, 박용옥 국방부차관과 터키 자주포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8일)했다.


주요 내용은 한국이 K9 자주포 구성품을 국방부가 지정하는 주계약업체(삼성테크윈)를 통해 터키에 공급하고 정부 기술자료를 무상 지원하는 조건으로 터키 측으로부터 2011년까지 350문 이상의 물량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터키 지상군사령부와 K9 자주포 수출 협상은 우리와 혈맹국이면서 상호 방산협력이 체결된 우방국이었기 때문에 항상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습니다. 양해각서에도 터키 자국용 자주포 획득에는 한국 내 획득과 같은 수준을 적용했고 터키가 해외로 수출할 경우 기술료를 한국에 지불키로 했습니다."(당시 국방부 우국석 국제협력과장)


그런데 바로 그날 뜻밖의 통고가 날아와 K9 관계자들을 당혹케 했다. 독일 정부가 K9 자주포용인 독일의 MTU 엔진에 대한 대터키 수출을 승인할 수 없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한국·터키 양해각서가 체결되기 전 독일의 MTU사(社)는 터키 수출용으로 한국 삼성테크윈에 엔진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독일 정부의 수출 불승인에 그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독자개발 자주포를 최초로 수출하려는 우리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


K9 수출은 이제 엔진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당면과제를 안게 됐고 이것은 심각한 위기였다. 국방부는 MTU 엔진의 수출허가 획득을 위해 청와대·총리실·외교통상부·산업자원부·국가정보원 등 지원 가능한 모든 기관·부서의 협조를 강구했다.


방산업체는 업체대로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했다. 2000년 말까지 터키 자주포 시제 1문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독일 MTU 엔진의 대터키 수출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 어느 누구도 그때 K9의 수출 성공을 보장할 수 없었다.


여기서 국방과학연구소·삼성테크윈의 연구개발진은 기술적 자신감 속에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MTU 엔진을 대체키로 하고 실용개발시 검토했던 영국 퍼킨스 사의 엔진을 탑재할 것을 결심한 것이다.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터키는 우리가 전력화하는 자주포에 퍼킨스 엔진을 탑재한다면 터키 자주포에도 적용하겠다고 하면서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독일 MTU 사에도 통보했지요. 하지만 이럴 경우 약 6개월의 수출 지연과 K9 자주포에 퍼킨스 엔진 탑재에 따른 설계변경을 해야 했습니다."(김동수 박사)


국방부는 마지막으로 독일 국방부에 터키 자주포용으로 쓰일 MTU 엔진의 한국 수출을 금지할 경우 K9 자주포·터키 자주포에 타 엔진을 사용할 것임은 물론 한국·독일이 진행할 각종 협력 사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을 내용으로 한 최후 서한을 보냈다. 


2000년 6월 조성태국방부장관과 사바하틴 차크마콜루 터키 국방장관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방일보DB
2000년 6월 조성태국방부장관과 사바하틴 차크마콜루 터키 국방장관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방일보DB


한국과 터키의 협력은 이같은 장애에도 멈추지 않았다. 터키는 2000년 6월20일 한국과 시제 1문용으로 K9 자주포 구성품을 도입하는 계약(335만 달러)을 체결했다. 이어 터키 기술연수생 10여 명이 삼성테크윈에서 기술연수를 받기 시작했으며 7~8월 중 공급할 구성품들이 터키로 보내졌다.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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