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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32회] K9자주포, 터키와 첫 수출 성사

신인호

입력 2022. 06. 1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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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해군사관학교 46기 순항훈련분대는 한국 해군 사상 처음 인도양·홍해·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들어가 유럽 대륙에 발을 디뎠다.


유럽 첫 기항지가 바로 터키 이스탄불. 보스포루스 해협으로 들어설 때 한국 해군을 환영하는 예포가 울려 퍼졌다. 폭넓은 강 같은 해협의 한 가운데 함정을 투묘(投錨)한 채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해사 생도들이 선착장에 상륙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 터키인 누군가 발음은 부정확하지만 우리 민요 ‘아리랑’을 애절히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조그마한 도시에서 택시기사를 하는 이 터키인은 TV방송에서 한국해군이 방문한다는 뉴스를 듣고 무려 500㎞가 넘는 거리를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다. 살아 있는 동안 한국의 함정이 터키를 방문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는 그는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만이 아니라 사실 터키의 참전군인들은 자신들이 피로써 지킨 대한민국이 세계의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데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1999년 터키인들은 이제 한국에 우정과 보은의 정을 피부로 느꼈다. 엄청난 지진의 재앙이 터키의 한 도시를 강타했을 때 먼 형제의 나라 한국에서 따스한 위문의 손길이 전해온 것이다. 그리고 한국이 독자개발한 155㎜ 자주포 K9이 터키에 기술 이전 등 좋은 조건으로 수출되자 터키인들은 이 또한 자신들에 대한 한국의 보답으로 여겼다.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중해변의 교통·전략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는 터키는 14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600여 년 동안 중동지역·동유럽을 지배한 오스만 제국의 후예로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다. 언어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하며 산악지형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국가라는 점 등이 우리와 유사하다.


이러한 터키에 K9 자주포체계가 우리나라 방위산업 사상 단일 품목으로 최대 규모인 10억 달러의 수출 계약이 체결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은 국방부·육군·국방과학연구소·삼성테크윈이 공동으로 이룩한, 개발 과정 못지않은 또 하나의 작품이자 드라마였다.


무기체계 수출이란 성능과 가격뿐만 아니라 정치·외교 등 여러 면에서 고려되는 요소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K9 연구개발진으로서는 초기에 사실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문일섭 전 국방부차관.
문일섭 전 국방부차관.


K9의 대(對)터키 수출이 최초 제기된 것은 국내 전력화 생산계약이 체결된 직후인 1999년 3월19일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 개최된 제3차 한국·터키 방산협력공동위원회에 참석한 문일섭(文一燮·육사23기·전 국방부차관·소장 예편) 국방부 획득실장에 의해서였다.


회의에서 터키 측에 기술이전 공동생산을 제의한 문실장은 곧바로 주(駐)터키 국방무관 고현수(高賢秀·육사33기·준장 예편)대령에게 4월 중 K9에 대한 대(對)터키 설명회를 할 수 있도록 성사시키라고 지시하는 한편 삼성테크윈 측에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 터키 국방무관을 지내며 K9의 터키 수출에 크게 기여한 고현수(준장 예편) 대령.
주 터키 국방무관을 지내며 K9의 터키 수출에 크게 기여한 고현수(준장 예편) 대령.


고현수 대령. 그는 우리 군 장교로는 최초로 1985년 터키 지휘참모대학에서 2년 동안 수학하며 터키의 군사학과 언어·문화를 익히며 두터운 휴먼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시 그와 함께 수학한 동기생들이 당시 대령에서 소장에 이르는 고급 장교층을 형성하고 있고 교관들은 대부분 터키군의 영향력 있는 장군들로 포진해 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됐을 때 터키 지원반장으로 활동했고, 한국을 방문하는 터키 주요 인사들의 통역을 도맡는 등 터키의 언어·문화에 정통한 능력을 발휘했다. 육군노도부대 대대장으로 재임 중이던 1991년 팀스피리트 한미연합훈련에는 대대를 이끌고 미2사단 배속부대로 참가, 탁월한 지휘력으로 미군을 감탄케 해 미국이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국군 및 외국군에게 수여하는 공로훈장(Legion of Merit)을 받은 바 있다. 


그는 문 실장의 지시를 받은 후 K9의 대터키 수출작전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일이 되려면 거기에는 꼭 적합한 인재가 있게 마련인데 바로 그 인재가 고현수 대령이었다"는 국방과학연구소 안충호 책임연구원의 말처럼 그는 K9 자주포의 터키 수출작전에 중요한 교두보(橋頭堡)였다.


고 대령에게 떨어진 첫 번째 과제는 K9 설명회. 당시 형편을 보면, 이는 정상적인 절차와 경로로 개최하려면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일이었다. 이미 외국방산업체들의 설명회가 6월까지 계획돼 있었던 것이다. 


고 대령은 지휘참모대학 동기생·교관 등 인맥의 도움을 받아 설명회가 4월 중에 개최되도록 주선했다. 4월29일 오창석 삼성테크윈 전무를 주축으로 한 해외영업팀이 터키 국방부를 방문해 K9 자주포 설명회를 가졌다. 이때 참석한 터키 측 관계자 20여 명 가운데 샬리 방산차관보를 비롯한 기술국장·대외협력국장 등 고위급은 이례적이었고, 그들은 K9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그러나 후속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당시 터키 지상군사령부 주관으로 독일과 PzH2000 자주포의 기술이전 공동생산을 추진 중이어서 우리의 협력사업 추진은 불투명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터키는 1999년 8월17일 이즈미트 지역에 지진에 의한 대참사가 발생,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김동신(金東信·전 국방부장관) 육군참모총장은 이때(8월27일) 터키를 방문, 외국군 장성으로는 처음 지진 현장을 찾았다. 김 총장은 참혹한 현장에서 우리 군 장병들이 정성껏 모은 성금에 개인 여비를 보태 터키 지상군사령관(우리의 육군참모총장 격) 아틸라 아테쉬 대장에게 전달했다.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


이 모습은 터키 언론매체를 통해 터키 전역에 생방송으로 보도됐다. ‘혈맹’ 한국의 우정이 터키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김 총장은 아테쉬 대장과 가진 공식 회담에서 우리 K9 자주포의 우수성과 함께 터키와의 공동생산 가능성을 설명했다. 우리 국방부도 지진사태와 관련, 터키를 돕기로 결정하고 군·방산업체에서 성금을 모아 전달했다. 국방부 국제협력과 김응천(金應天·해사34기) 해병중령이 말하듯 당시 국방부는 K9을 해외에 수출하기 위해 장관 이하 관계자들이 군사외교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터키의 분위기는 사뭇 긍정적이었다. 국방무관 고 대령은 1999년 10월4일 아테쉬 대장을 면담했다. 무관으로서 지상군사령관을 면담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은 터라 지상군사령관을 역임한 쾌살 장군의 도움을 받았다. 아테쉬 대장은 주(駐)독일무관을 4년 역임하고 동기생 중 가장 빨리 진급해온 인물로 독일 대부라고 일컬어질 만큼 터키에서도 알아주는 독일통이었다. 


고 대령은 한국에서 보내온 K9 설명자료를 일주일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터키어로 번역, 아테쉬 대장에게 제시했다. 고 대령은 K9 자주포에 대한 실사팀을 한국에 보내 그 결과를 보고 받은 후 한국과 방산협력 여부를 판단하면 어떻겠느냐고 건의했다. 


 "면담 시간은 원래 20분이 계획돼 있었는데 질문이 많아 50분이 걸렸습니다. 주로 독일의 MTU 엔진 도입 가능성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분은 이미 어려운 문제의 핵심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조성태(趙成台·2021년 별세)장관의 터키 방문일정을 물은 뒤 그때 보자고 말했을 때 앞이 훤히 트이는 느낌을 받았고, 그때의 성취감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합니다."(고현수 대령)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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