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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산 발전 최적 조건…수준 높이고 몸집 키워야

기사입력 2022. 06. 03   15:53 최종수정 2022. 06. 03   15:59

밀리테크 <하> 일자리의 보고(寶庫)
 
ICT 네트워크·제조 기술 세계 최고
美 글로벌 공급망 구축 핵심 축 구상
국방상호조달협정 협의 등 좋은 기회
국방 관련 연구소·대기업·벤처 연결
전문연구요원 확대 등 인력 양성 필요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올 초 내놓은 ‘2021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 16개국 중 단독 9위를 기록, 국방력 선진국임을 입증했다. 특히 화포(4위)와 지휘통제(6위)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랐다. 사진은 육군5포병여단의 자주포 사격훈련에서 K9과 K9A1이 포탄을 발사하는 모습.  김병문 기자

오는 9월 열릴 대한민국 방위산업전 ‘DX 코리아 2022’ 포스터.  사진 제공=육군협회

국방력을 키우려는 세계 각국이 모델로 삼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공계 인재를 뽑아 연구개발(R&D)을 수행하는 ‘과학기술전문사관’ 제도는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프로그램(Talpiot Program)’을 벤치마킹했다. 국방 R&D 인재 양성의 씨앗은 뿌려졌다. 시행 10년도 채 되지 않아 평가하기 이르나 이스라엘과 달리 방위산업 생태계와의 연계가 느슨한 채 운용되는 것이 다소 아쉽다.

현대전과 미래전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첨단 무기체계다. 국방과학기술력 수준은 곧 그 나라의 국방력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다. 국방기술진흥연구소가 올 초 내놓은 ‘2021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조사서’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 16개국 중 단독 9위다. 2008년 11위로 시작해 3년 조사 때마다 매번 순위가 조금씩 올랐다.

화포(4위)와 지휘통제(6위) 분야에서 세계 최강국 반열에 올랐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앞세워 무기체계 무인화와 지능화를 선도한 덕분이다. 국방 M&S(Modeling & Simulation), 국방 소프트웨어(SW) 분야 상승세도 돋보인다. 다만 레이다(12위) 등 감시정찰 분야와 우주무기체계(10위)를 비롯한 항공우주 분야 등 많은 분야에서 상위권 국가와의 격차가 크다. 그럴지라도 국방과학기술 강국임은 틀림없다. 6위와 7위인 이스라엘과 일본이 바로 눈앞이다.

한국 국방과학기술의 급성장에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역할이 매우 컸다. 1970년, 첫 출발은 초라했다. 나온 지 30여 년이나 된 미군의 카빈총을 베껴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 연구소가 이제 로켓, 미사일과 전투기까지 독자 개발한다. 외국도 벤치마킹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ADD 뒤엔 방위산업기업이 있다. 방산기업들은 총포와 전차, 군함, 항공기, 미사일 등 ADD가 연구하고 설계한 것을 실물로 구현했다. 돈 떼일 염려는 없는 방산사업이다. 그래도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민간 수요만으로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기업들로선 썩 내키지 않았던 사업이다. 반강제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됐다. 2020년 세계 100대 방산업체(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선정)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51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63위), LIG넥스원(73위), ㈜한화(85위) 등 4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물론 1위부터 5위까지 싹쓸이한 미국, 10위권에 포진한 영국·중국 기업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던 ‘맨땅’에서 출발해 이룬 기적 같은 성공이다.

그 역사를 보면 일본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한 전자·ICT 산업 역사가 겹쳐 보인다. 한국의 ICT 기업들은 핵심 기술을 주지 않으려는 미국과 일본, 유럽 기업 연구소의 쓰레기 더미까지 뒤져 가며 정보를 얻고, 밤을 새워 가며 연구해 결국 세계 1위에 올랐다. 어느 것 하나 기밀이 아닌 게 없는 방산기술의 습득은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힘들 것이다. ADD와 방산기업에서 R&D와 생산기술을 개발한 이들의 땀과 열정이 새삼 대단하게 여겨진다.

한국 방산기술산업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갈림길에 섰다. 더 빨리 쫓아가 선진국과 격차를 좁히느냐, 그대로 주저앉느냐가 정해진다. 미·중은 방위산업에서도 양강구도를 형성했다. AI와 빅데이터 최강국이기도 한 두 나라의 방산기술을 우리가 따라잡는 것은 사실상 버겁다. 그런데 두 나라에 절대 뒤지지 않는 것이 있다. ICT 네트워크와 첨단 기술 제조역량에서 오히려 앞선다. 네트워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부터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제조 양산기술도 세계 최고다. 모두 방산기술 인프라다. 한국만큼 방산기술산업이 발전하기에 최적인 나라는 없다.

미·중 세계 패권 경쟁도 호재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국과 안보는 물론 경제동맹을 맺으려 한다.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첨단산업 공급망관리(SCM) 구축에 한국을 핵심 축으로 삼으려 한다. 이른바 ‘경제안보’ 구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방한하자마자 삼성의 반도체공장부터 찾았다. 출국 전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만났다. 일면 미국 내 투자 유치의 일환이지만, 미국 중심으로 새로 짜는 글로벌 SCM에 한국 제조기업을 끌어들이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방산기술은 군사와 경제안보의 교집합이다. 방산기술업체들은 한미동맹 강화를 계기로 미국의 방산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무기 수요가 급증했지만, 미국과 유럽 방산기업들은 경직된 양산 구조로 인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한국 기업 특유의 신속함과 높은 가성비라면 이 부족함을 단번에 채울 수 있다. 대만 TSMC가 반도체 분야에서 그랬듯이 한국 방산기업이 미국과 유럽 거대 방산기업의 ‘파운드리(수탁생산)’업체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한미 정상이 방산 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국방상호조달협정’과 관련해 협의하기로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방위산업은 기술 수준을 한층 발전시키고 몸집도 한껏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다. 업계와 ADD, 국방부의 긴밀한 협력과 세밀한 전략 수립이 절실해졌다.

더욱 절실한 것은 사람이다. 세계시장 개척을 시작하면서 한국 방위산업과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아울러 생산직부터 고급 인재까지 일자리 수요도 늘어난다. 제대로 공급될지 의문이다. 방산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워낙 낮은 데다 왠지 경직되고 통제가 심할 것 같은 선입견까지 작용해 방산업계로 향하는 인재가 드물다. 방산업계와 정부가 취업박람회까지 열어도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특히 AI같이 수요가 급증한 분야의 고급 인재를 방산기업에서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방위산업을 매력 있게 만드는 것이다. 보수와 대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창업 도전, 이직 등 미래에 다양한 옵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면 굳이 모시러 가지 않아도 알아서 잘 찾아온다. 이를 위해서는 ADD 등 국방 관련 연구소,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나아가 벤처투자자까지 연결된 방산 생태계부터 키워야 한다. 연구원 창업 기회를 북돋우고 창업 성공모델을 만든다면 그 생태계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전문연구요원 등 대체복무 인력의 경우 국방 관련 중소·벤처기업만이라도 더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과학기술전문사관은 인재인 만큼 방산기업이 섣불리 하지 못하는 도전적인 연구과제에 몰두하면 좋겠다. 이스라엘처럼 고졸 천재에게도 과학기술전문사관의 문호를 열어 주면 어떨까. 방위산업에 우수한 사람들이 몰리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는 ‘천조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처럼 돈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이왕 실패할 거라면 빨리 실패해 보자’는 그들의 모토만큼은 실천할 수 있다.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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