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수열
사랑, 세상에 이보다 더 찬란하고 설레는 단어가 또 있을까. 넓디넓은 세상에서, 긴 시간을 살아가면서 만난 수많은 이들 가운데 유일한 한 사람. 사랑은 놀라운 기적이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는 우연이 겹쳐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억겁(億劫)의 세월을 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서로 다른 길을 걷던 두 사람이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 부부라는 필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인간에게만 주어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21일 부부의 날을 앞두고 애틋한 부부애로, 피보다 진한 전우애로 국가안보 수호에 일조하는 조금 특별한 부부 세 쌍의 사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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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중사. 프린터를 고치러 간 교실에서 자신의 농담에 환하게 웃던 여성 교육생을 만났다. 문득 궁금해 이름을 보니 남자 같은 이름의 이 중위였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 이미 이 중사는 사랑에 빠졌다. 그는 매일 그 교실에 들러 먼발치에서 이 중위를 바라보며 짝사랑을 시작했다.
“사실 제가 목사님을 좋아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목회자 가정에서 신학대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까지 다녔던 이 중사지만 목사와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중위는 그런 그의 가치관을 모두 뒤집어 놓은 기적 같은 존재였다. 이 중사는 “아내는 누가 봐도 매력적이고 성품이 좋다”며 “본인보다 주변을 더 잘 챙기며 공감하는 사람”이라고 칭찬을 늘어놨다. 교육생이던 이 중위의 기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만큼 이 중사의 사랑은 점점 깊어져 갔다.
반면 이 중위는 이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연애를 하며 들어 보니 교육 기간에 저에게 호감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저는 군인이라는 사명감과 교육생이라는 긴장이 겹쳐 전혀 알지 못했죠. 물론 신랑이 티를 안 내기도 했고요.”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지난해 6월 이 중위의 임관식이었다. 이 중위는 이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신랑이 임관을 축하한다면서 갑자기 사진을 찍자고 했어요. 사실 당황스러웠지만 사역(기독교 성직자의 교역)하듯(?)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진을 교환하자며 연락처를 물어보더라고요.”
대수롭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을 이 작은 행동에는 이 중사의 많은 용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다가갈까 밤새울 정도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어렵게 얻은 연락처를 만남에 활용하기 위해 그는 여러 방법을 동원했다.
“연락처는 받았지만 먼저 연락이 올 리 없었죠. 결국 아내가 ‘수요 저녁예배’에서 특송하는 영상을 보내고 나서야 답장을 받을 수 있었죠. 아내는 마치 사역을 하듯 저를 대하며 나중에 언제든지 놀러 오라고 말했고, 저는 그 이야기를 꼭 지켜 달라고 했습니다.”
2주 뒤 이 중사는 무작정 이 중위를 만나러 부임지인 부산으로 향했다. 이미 휴가까지 내놓은 상태. 더 이상 뒤는 없었다. 다행히 이뤄진 첫 만남. 이 중위는 오히려 이 중사의 훤칠한 외모보다 깊이 있는 마음 씀씀이에 반했다고 한다.
“사실 저는 같은 성직자를 만나기를 희망했습니다. 신랑이 키도 크고 훈훈한 외모였지만 제 고려사항은 아니었죠. 처음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며 겪은 어려움과 목회자의 애환을 이해하는 마음에 다시 보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서로의 공통적인 가치관에 마음이 열린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연애 초부터 결혼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이 중사는 “내 인생에서 다시는 이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처음 본 순간부터 결혼해야겠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단언했다.
이 중위를 만나며 다시 회복한 신앙심과 행복 역시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이 중사의 확고한 태도 때문이었을까? 이 중위 역시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이어 갔다고 밝혔다. 그는 “착한 성품, 나를 향한 사랑과 헌신을 보며 그동안 기다렸던 반쪽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답했다. 두 사람의 부모님 역시 결혼에 적극 찬성하며 힘을 실어 줬다.
마치 드라마 같은 부사관-장교 커플에 대한 부담은 없었을까? 예상외로 두 사람은 “전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중위는 “장교도 부사관도 모두 같은 사람”이라며 “교관이고 나보다 오래 군 생활을 한 신랑에게 많은 조언을 들어 오히려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중사는 “같은 병과 교관이라는 부분이 조심스러웠지만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며, 기도해 준 게 큰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충북 영동군과 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연애, 코로나19 장기화와 부부의 확진 등 어려움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사랑과 믿음으로 이를 헤쳐 나간 뒤 지난달 23일 결혼에 성공했다. 기적 같은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지금 ‘네버엔딩 스토리’를 준비하는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 두 사람이 보낸 편지의 원문을 그대로 실으며 기사를 마무리한다.
“금방 시간이 지나 지금의 순간이 추억이 될 테지만, 지금처럼 서로 많이 사랑하고 아껴 주고 배려하며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겨 모든 순간을 함께 행복하게 지내며 좋은 추억 많이 남기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모습의 남편으로 항상 사랑하며 살아갈게요. 나와 결혼해 줘서 고맙습니다. 평생 잘할게요.”(이 중사)
“서로 사랑하고 아껴 주고 이 세상에 딱 한 명뿐인 반쪽으로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맡겨 주신 자리에서 사랑을 전하는 부부가 되길 원해요. 부족하지만 서로 도우며 평생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람이 보기에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어 가자용♥”(이 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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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약속 지켜내
돈승호·송현지 하사
결혼 전 부부 군인 꿈꿔…육아로 포기
남편 영향받아 육군부사관학교 입교
“함께 군인이 되자는 약속, 지키고 싶었어요. 남편 때문이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이었어요.”
송 하사는 남편과 결혼 전부터 부부 군인이 되기를 꿈꿨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같이 운동도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출산을 하면서 육아 부담으로 둘 다 군인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송 하사는 결국 군인의 꿈을 포기하게 됐다. 남편 돈 하사는 임관해 성실히 임무 수행을 했다. 송 하사는 그런 그를 보며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또 남편과 소중한 사람들을 같이 지키고 싶었다. 이에 송 하사는 다시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새벽이 돼서야 잠들곤 했어요. 혼자 공부할 수 있는 시간도 그때뿐이었죠. 그래도 군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졸음을 이겨냈죠.”
마침내 송 하사는 육군부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됐다. 송 하사는 부모님과 시부모님, 남편의 아낌없는 지원 덕에 꿈을 이루게 됐다고 말했다. 남편의 군 생활 모습 그대로가 송 하사에게 커다란 조언이 됐다고 한다. 송 하사는 “항상 사명감을 갖고 헌신적으로 생활하는 남편을 보며 많은 걸 배웠다”며 “부사관 후보생 시절에는 단순히 임관을 목표로 하기보다 훈련하면서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가지며 ‘어떤 군인이 될 것인지’ 목표를 정하고 고민하라고 조언해 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 부부는 적에게는 무서운, 우리 국민에게는 편하게 지낼 수 있다는 신뢰감을 선사하는 군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송 하사는 “국민에게는 안정감을, 후임과 병사들에게는 리더십과 전문성을 갖춘 부사관이 되겠다”고 설명했다. 글=맹수열·김해령 기자/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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