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몰입해 토해내는 감정… 실수조차 아름다워 보였다

노성수

입력 2022. 05. 12   17:05
업데이트 2022. 05. 13   08:30
0 댓글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 연극동아리 ‘평지’
 
‘평등 지킴이’의 준말 ‘평지’
평등문화 정착 도모하자는 뜻
이름·계급 대신 별칭 사용
 
배우 경력 강미연 군무주무관 지도
감정·신체훈련 등 표현 연습
“연기하면 응어리 풀리는 기분”
 
사이버 성폭력 예방 영상 제작
교육 활용하며 선진해군문화 기여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 연극동아리 ‘평지’ 단원들이 첫 정기공연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부대 제공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 연극동아리 ‘평지’ 단원들이 첫 정기공연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다. 부대 제공

모든 인류는 인종·성별·종교 등을 이유로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는 평등한 사회를 꿈꾼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때때로 보이지 않는 차별과 편견으로 좌절을 선사하곤 한다. 그렇다면 모두가 바라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러한 의문에 해군 장병들이 동아리 활동으로 해결책을 모색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인방사) 연극동아리 ‘평지’가 그 주인공이다. 동아리명 ‘평지’는 ‘평등 지킴이’의 줄임말이다. 장병들 스스로 우리 사회의 평등문화 정착을 도모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연극을 통해 평등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전하는 ‘평지’를 소개한다.

노성수 기자


“아버지 따라 군인이 되려고 해요. 부사관 모집공고가 났던데….”(아들)

“(버럭 화를 내며) 내가 군인은 안 된다고 했지! 다른 것은 다 너 원하는 대로 해! 군인은 안 돼!”(아버지)

“아빠도 군인이면서 도대체 왜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아들)

“아빠 살아온 모습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네 엄마 죽고 나서 맨날 훈련이다 뭐다 하면서 너를 살뜰히 보살펴 준 적이 있냐? 너 학교 적응할 만하면 이사하고, 훈련 나간다고 혼자 집에 있게 하고. 심지어 너 맹장수술 한다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훈련이라고…. 이 녀석아! 그때 얼마나 가슴이 쓰렸는지 알아?”(아버지)


사이버 성폭력 예방을 위해 제작한 UCC ‘이상한 나라의 김 일병’의 한 장면.  부대 제공
사이버 성폭력 예방을 위해 제작한 UCC ‘이상한 나라의 김 일병’의 한 장면. 부대 제공


연기를 통한 공감으로 평등사회 ‘한뜻’

인방사 연극동아리 ‘평지’ 단원들의 리딩 연습이 한창이던 양성평등상담실. 인방사 장병들이 뮤지컬 ‘늙은 군인의 노래’ 대본을 서로 맞춰 보며 연기에 한창이었다.

지난해 ‘평지’ 첫 정기공연 때 초연된 이 작품은 자신과 같은 군인이었던 아내를 훈련 중 잃은 정 상사와 군인이 되고자 하는 아들과의 갈등을 다룬 창작극이다. 개인은 물론 가족 역시 국가와 군을 위해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군인의 삶을 진지하게 접근해 장병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작품이다.

상대 배역과 쉼 없이 대본을 읽던 중 몇몇 단원의 발음이 살짝 꼬였다. 하지만 배역에 완전히 몰입해 감정을 토해 내는 장병들의 모습은 실수조차 아름답게 보였다.

군인 아버지로 분해 열연을 펼치던 박덕희 상병은 “연기를 하고 나면 내 안의 답답하고 갇혀 있던 것이 풀리는 기분”이라며 “잘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 평등사회 정착을 위한 노력을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평지’ 단원들이 부대 내 서해관 무대 위에서 신체표현 수업을 받고 있다.  노성수 기자
‘평지’ 단원들이 부대 내 서해관 무대 위에서 신체표현 수업을 받고 있다. 노성수 기자


‘계급’ 대신 ‘별칭’ 부르며 평등문화 체험


동아리 ‘평지’는 계급사회인 군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장병들이 평등한 문화를 조성하고자 2020년 9월 창단했다. 인사참모실 양성평등담당관 강미연 군무주무관은 장병들에게 딱딱한 말보다는 일상 속 경험을 통해 양성평등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확산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연극동아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장병들만의 연극 무대를 올리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장병들은 감정훈련, 신체훈련 등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에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연기 경험도 없고, 남들 앞에 서기도 쑥스러워하던 ‘아마추어’ 배우들은 연극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장병들의 연기 지도는 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단장’ 강 주무관이 맡았다.

강 주무관은 장병들이 내면의 감정을 무대 위로 표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평등 지킴이’답게 동아리 활동 시간만큼은 단원들이 각자 이름과 계급 대신 ‘별칭’을 사용토록 해 친밀감을 높였다. 강 주무관은 ‘난나’, 참수리 375호정 정순용 상사는 ‘정박’, 정보통신대 김강욱 병장은 ‘욱강’, 인사참모실 임태훈 상병은 ‘후니’, 군종실 박덕희 상병은 ‘삼촌’ 등으로 별칭을 정했다.

강 주무관은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장병들이기에 ‘별칭’으로 호칭하는 것을 다소 낯설어했다”며 “하지만 계급에 상관없이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을 비난 없이 인정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평등을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유로운 몸짓으로 자아 표현


리딩 연습을 마친 장병들은 서해관으로 이동해 무대 위에서 신체표현 수업을 이어 갔다. 이 과정은 무대에서 보다 과감히 자신을 표현하고, 진정성 있게 연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수업에서는 ‘작은 씨앗에서 울창한 나무로 성장하기까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미션이 제시됐다.

“겨우내 잠들었던 작은 씨앗이 한 뼘씩 자라나고 있어요.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장병들은 강 주무관이 제시하는 상황에 따라 자유로운 몸짓으로 내면의 자아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드디어 봄이 왔어요. 날씨가 따뜻해지고 화사한 꽃이 피어났죠. 이제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가 될 거예요.”

땅속에서 잠든 씨앗처럼 숨죽이던 장병들은 활짝 기지개를 켜며 희망이 가득 찬 미소로 무대를 가득 채웠다. 김강욱 병장은 “연극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군에서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다양한 캐릭터로 분해 나를 표현하면서 다른 생각을 존중하고, 평등한 사회의 일원에게 요구되는 편견 없는 시선이 생겼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지’는 평등문화 확산뿐만 아니라 사용자창작콘텐츠(UCC) 등 연기를 통한 선진해군문화 정착에도 기여하고 있다. 사이버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이상한 나라의 김 일병’과 2차 가해 예방을 위한 ‘슬기로운 인방사 생활: 2차 가해란 무엇인가’ 등 동영상을 만든 것. 이 자료는 전입 수병의 성폭력 예방교육 등에 활용되고 있다.

강 주무관은 “장병들이 연극을 통해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이를 디딤돌 삼아 평등 저해요소가 사라지도록 작은 힘을 보태고, 선진화된 필승해군 구현에 일조하겠다”고 다짐했다.


노성수 기자 < nss1234@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