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R&D이야기 K9 자주포

[K9 14회] "우리 자주포 우리가 개발한다"며 미측 제안 거부

신인호

입력 2022. 04. 1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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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09A6에 39구경장 포신 대신 52구경장 포신을 장착한 P-52자주포 시제.
M109A6에 39구경장 포신 대신 52구경장 포신을 장착한 P-52자주포 시제.

‘이대로는 안되겠다. 이대로라면 체계개발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다.’ 


사업책임자 문상규 화포체계실장(전 풍산 기술고문)과 함께 신형자주포 개발을 주도해온 안충호 체계팀장은 위기를 느꼈다. 향후 체계개발을 지양하고 핵심기술 위주로 나아간다는 국방과학연구소 내부 분위기도 그랬거니와 탐색개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예산은 ‘우리 자주포를 우리가 개발한다’는 의지를 가진 당시 방산업체의 투자에 힘입어 겨우 해결해 나갈 수 있었지만 체계팀이 7명에 불과한 점 등 부족한 연구인력은 그의 위기의식을 증폭시켰다. 연구원 대부분이 기숙사에서 기거하면서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리는 가운데 한 신입 연구원이 과로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까지 했던 것이다.


안 팀장에게 마침 비상구가 하나 열렸다. 당시 김학옥(金學玉 ·예비역 중장) 연구소장에게 신자포 개발과 관련해 보고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안 팀장은 이를 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성능과 개발계획 등 통상적인 내용에 대한 브리핑은 접어두었다. 대신 크리미아 전쟁 이후 화포로 인해 기병대가 사라진 이야기를 시작으로 근대 화포 개발사와 발달과정, 그리고 선진국들의 자주포 개발 추세를 보고했다.


"신자포가 1998년 전력화되면 신자포는 세계적 수준으로 우리 화포 개발 역사는 물론 세계 화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입니다." 안 팀장은 자신 있게 보고를 이어갔으나 "연구원들은 신명(身命)을 바칠 각오로 연구하고 있다"는 마지막 다짐은 차라리 읍소(泣訴)에 가까웠다.


안 팀장은 김학옥 연구소장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귀가 활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김 연구소장은 배석한 주요 간부들에게 "국과연은 바로 이런 신형자주포를 개발해야 합니다. 이런 세계 수준의 무기체계를 개발,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야 합니다. 장병들은 세계 제일의 무기체계로 국토를 방위함으로써 조국에 무한한 긍지를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신자포 개발사업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체계개발사업 계획도 수립하고 조직도 자주포부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4월 연구진은 팰러딘(paladin)으로 불리는 미국의 M109A6 자주포 출고식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팰러딘 생산회사인 BMY(현재 UDLP) 연구진은 한국의 신자포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미국의 자주포를 한국에 소개하고 싶다고 제의해왔다.


안 팀장에게서 전화로 보고받은 문 자주포부장은 KH179 개발 후 미국측의 지적소유권 주장에 대해 홍역을 치렀던 터라 미국측의 방문을 허락했다. 자칫 나중에 그들이 M109A2의 기술을 도입해 공동 생산하는 K55(KM109A2)를 빌미로 우리가 신자포에 그 기술을 도용했다는 주장을 내세울 것을 우려, 이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다음달, 우리 기술력으로는 신자포를 개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BMY와 체계공학(system engineering) 전문업체인 탈레다인 브라운(Taledyne Brown) 사는 국과연을 방문했다. BMY사는 팰러딘 자주포와 52구경장의 포신을 장착한 자주포(P-52)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신자포를 K55처럼 공동개발하자고 제의했다. 체계공학이 쉽지 않다는 것과 많은 노하우를 가진 자신들의 협력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국과연도 반격을 가했다. 신자포 핵심인 52구경장 포신의 사격 장면과 자동방렬실험 장치의 구동 장면을 비디오로 보여주었다. 신자포를 우리의 계획에 의해 우리가 개발하고 있다고 말하고 앞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때 협의하겠다며 사실상 그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날 저녁 만찬에 미국측 한 인사가 연구진에 "오늘 비디오로 보여준 그 52구경장 포신을 어느 나라에서 구입했느냐"고 물었다. 연구원은 빙긋 웃으며 설계·포신 소재·가공·제작 등 모든 것을 독자 개발했다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질문한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뜻인지, 놀랍다는 뜻인지 알 수는 없었다.


그후 국과연은 미국측과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기술자료교환협정(Data Exchange Agreement) 회의를 통해 신자포의 연구개발 내용을 발표해 주었다. 이는 우리의 신자포 독자 개발을 미국이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신자포의 국내 생산 및 실전 배치, 그리고 해외 수출에 있어 미국은 어떠한 지적소유권 주장도 할 수 없게 되었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국방일보 국산 무기체계 개발 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14> 우리 자주포 우리가 개발 2002년 11월 6일자


신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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