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육군

시나리오는 없다… 승리 향한 막강 전투력만 있을 뿐

맹수열

입력 2022. 03. 28   17:19
업데이트 2022. 03. 2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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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KCTC 여단급 쌍방훈련 현장에 가다

6사단 용문산여단 vs 15사단 을지여단
적지종심부대 침투·통합화력 운용 등
두 전투단 갈고닦은 훈련 성과 발휘
총기 착용한 채 요리하는 조리병도 눈길
 
적막한 고지, 총성·전차포 소리 가득
악천후 이겨내고 밤낮 없는 공세 펼쳐
승패 무관하게 전진…전투력 극대화

 

용문산여단 전투단의 대공 발칸포가 주요 거점을 방어하고 있다.
용문산여단 전투단의 대공 발칸포가 주요 거점을 방어하고 있다.
 육군6보병사단 용문산여단 전투단 K1E1 전차가 27일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장에서 상대 병력의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육군6보병사단 용문산여단 전투단 K1E1 전차가 27일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장에서 상대 병력의 진출을 견제하고 있다.
 용문산여단 전투단 장병이 K1E1 전차에 탑승해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용문산여단 전투단 장병이 K1E1 전차에 탑승해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열세에 몰린 전장 한가운데서 숨죽이며 교전을 지켜보는데 섬광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굉음이 들려왔다. 찰나의 순간, 가슴에 달린 마일즈 장비에서 들려오는 경보음.

“사망.” 그제야 생각났다. 전장에서는 기자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27일 기자는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열린 올해 첫 여단급 쌍방훈련 현장을 함께했다. 지난 21일부터 진행된 훈련에서 육군6보병사단 용문산여단과 육군15보병사단 을지여단은 부대의 명예를 걸고, 그동안 갈고닦은 전시 임무 수행능력을 펼쳐 보였다. 기자는 방어부대인 용문산여단과 동행하며 이들의 전술적 움직임을 확인했다. 한 번의 실수가 곧 부대의 궤멸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평소와 같은 취재지원은 불가능했다. 기자는 마치 종군기자처럼 작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들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다녔다. 글=맹수열/사진=조종원 기자


 
‘결정적 작전’을 막아라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박경원(소령) KCTC 공보정훈실장에게 실제 교전을 벌이는 양쪽에 절대 누설하지 않는 조건으로 지금까지의 전황 설명을 들었다. 훈련장 북쪽에 있는 공격부대 을지여단은 지난 25일 오전 9시를 기점으로 공격을 시작해 적지종심작전부대를 전방에 투입했다. 주요 적 부대를 관측해 적절한 화력지원을 하기 위함이었다. 용문산여단 역시 철조망·지뢰 등 장애물을 구축하는 한편 적지종심부대를 침투시켰다. 다음 날 을지여단은 첫 목표인 2개의 고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 더 밀고 내려올 수 있었지만 도로 위주의 기동을 파악한 용문산여단이 전차·장애물을 적절히 활용해 이를 저지했다.

기자가 방문한 27일 새벽 4시쯤 을지여단은 다시 기계화보병대대 태스크포스(TF)를 동원해 공세에 나서며 ‘결정적 작전’에 돌입했다. 용문산여단은 근접항공지원(CAS)과 곡사화기, 포병 살포식 지뢰(FASCAM) 등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는 통합화력 운용으로 맞섰다. 박 실장 차에 올라탄 기자는 용문산여단의 최전선으로 향했다. 특히 실전과 가장 근접한 훈련이라는 취지에 맞게 기자 역시 마일즈 장비가 달린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했다.


전차·보병 전력 총동원 주요 지점 사수 총력

용문산여단을 향해 이동하던 중 을지여단의 전차 모습이 보였다. KCTC 관찰통제관(OC) 차량임을 확인한 을지여단 장병들은 다시 분주히 움직였다. 앞서 돌파에 실패한 기계화부대들이 재공세를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400m쯤 지났을까. 고지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문산여단 K1E1 전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미 다리는 폭파된 상황이지만 고지를 넘어올 수 있는 상대 보병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여러 대의 전차가 늘어선 모습은 이곳이 주요 전장임을 방증했다. 다리 주변으로 모의 폭파 처리된 채 늘어선 트럭과 소형 전술차량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었다.

용문산여단이 전차를 활용해 요충지를 틀어막는 성과를 거둔 데에는 포병 관측장교의 활약이 컸다고 한다. 상대의 움직임을 확인해 정확한 좌표를 여단 지휘소로 보내 화력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핵심인 ‘정보와 화력’의 힘이 발휘된 것이다.

전차들의 행렬을 지나자 참호에 몸을 숨긴 보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은 각자 자리에서 숨죽이며 총구를 내밀고 있었다. 한 무리의 장교들은 회의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현재 이곳을 지키는 흑룡대대를 향해 상대 병력이 밀려올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여단 지휘부가 기보대대 1개 중대를 추가 투입했다. 회의는 이에 따른 병력 추가 배치에 관한 내용이었다.

잠시 후 김광염(중령) 흑룡대대장이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대대장은 현재 대대가 책임지는 지역으로 증원 병력이 더 올 것이라 설명한 뒤 “폭파된 교량을 복구해 기계화부대를 진입시키기 위한 상대 움직임이 있을 수 있으니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후방도 ‘소리 없는 전쟁’ 작전지속지원

대치가 이어지는 동안 흑룡대대 지휘소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대대의 전체적인 작전 지휘는 물론 의무·취사 등 작전지속지원도 이뤄졌다. 대대 지휘소와 지원 지역은 고지 아래 후사면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대의 포격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다. 가장 먼저 밥 짓는 연기가 눈길을 끌었다.

취사장은 요리를 위한 2개의 큰솥과 밥을 짓기 위한 취사 트레일러로 구성됐다. 솥 앞에 선 2명의 취사병은 김치볶음과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느라 정신없이 삽을 휘저었다. 이날 식사는 달걀을 곁들인 김치볶음 주먹밥. 전장에서 먹을 수 있는 최선의 식단으로 보였다. 조리병들 역시 총기를 착용한 채 요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대대 급양관리부사관인 이희성 상사는 총기 착용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경계를 설 여유가 있다면 잠시 총기를 옆에 내려놓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죠. 원래 11명이던 조리병 가운데 8명도 전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취사장의 화력은 유류가 책임졌다. 가스는 전시 보급이 어렵고, 피격으로 폭파되면 큰 위험을 불러오기 때문에 전시에는 유류를 사용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여단 역시 실전적인 훈련을 위해 유류를 사용한 동력·무동력 버너와 취사 트레일러로 조리하도록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먹밥은 곧 대대 행정보급관을 통해 전장의 전우들에게 전해질 예정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김 대대장은 아직 대대 지휘소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끊임없이 전장을 돌며 현장 지휘를 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무너진 석벽 사이에 지어진 지휘소에서는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 등 전장 파악과 보고·지휘를 위한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지휘소 안 장병들은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으며 전장을 가시화하고 있었다.

지휘소에서 만난 주광철 주임원사는 취사병들까지 전선에 동원할 정도로 전황이 녹록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3일째 전선을 사수하는 것은 장병들의 투혼이 대단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익숙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며 “용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훈련을 마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능선의 사투…긴박한 전장의 연속

다시 최전선으로 향하는 길. 전시 공보정훈활동을 하다 파괴된 여단 방송차량을 지나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늘어선 능선 사이로 을지여단 장병들의 진격이 시작됐다. 흑룡대대 장병들은 정해진 위치에서 교전에 나섰지만 양옆으로 돌아오는 추가 병력에 결국 피해를 입고 뒤로 물러났다. 퇴각하는 병력과 함께 중대 지휘소까지 밀려나던 중 다시 김 대대장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지시한 김 대대장은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 대대장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소형 전술차량이 시동을 걸자마자 시야에서 사라졌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가늠할 수 있었다.

김 대대장이 떠난 뒤 중대 지휘소로 향했지만,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적의 대규모 진격에 따라 거점을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으로 추정됐다. 고지를 넘어 중대 지휘소로 향하는 을지여단 장병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기자 역시 계속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동하던 중 용문산여단이 도로에 도로대화구를 터뜨린 것이 보였다. 전차의 기동을 막겠다는 계산이었다. 여단이 다시 기계화부대를 통해 반격에 나서려면 이곳을 다시 개척해야 하는 난관에 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문산여단 흑룡대대 조리병들이 전방의 전우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용문산여단 흑룡대대 조리병들이 전방의 전우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고된 훈련 달래는 짧은 여유, 진지 속 식사

이번에는 서쪽 측선을 막고 있는 용호대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용호대대는 전차와 보병 전력을 활용해 고지를 선점한 을지여단의 진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도로 옆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가자 진지에 몸을 숨긴 장병들이 보였다. 수풀 곳곳에 자리한 진지에서 장병들은 공세가 사그라든 틈을 타 교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대의 식사 지원을 받지 못한 탓에 장병들은 미리 확보해 둔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웠다. 전날까지 내린 비로 축축해진 몸과 언제 공격이 올지 모른다는 긴박함 속에서도 장병들은 짧은 여유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는 듯했다.

이들이 사수하는 곳은 도로였다. 대대는 미리 깔아둔 윤형 철조망과 대전차 지뢰 등으로 상대의 전차 기동을 막아낼 계획이었다. 진지 속 장병들은 장애물을 걷어내기 위해 투입될 상대 공격부대를 막기 위해 경계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저지대라는 불리한 전장임에도 방어를 위한 장병들의 눈빛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용문산여단 K1E1 전차가 적과 교전하기 위해 야간 기동을 하고 있다.
용문산여단 K1E1 전차가 적과 교전하기 위해 야간 기동을 하고 있다.


‘카운터펀치’를 노리다…어둠 속 사투

다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흑룡대대로 복귀했다. 기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투입된 보병 부대들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고지를 견제하던 전차 덕분에 추가 피해는 막았지만, 여전히 전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보병 피해가 누적되자 여단은 ‘카운터펀치’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차 부대와 일부 보병 전력. 이들의 화력을 총집결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한 재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쿠르릉~.” 전차의 육중한 엔진음이 새벽의 고요함을 깨웠다. 기자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도로대화구를 극복한 을지여단의 기계화 전력과 보병 부대가 몰아쳤다.

반격을 준비하는 용문산여단 장병들의 결의도 만만치 않았다.

“수사불패(雖死不敗·비록 죽을지언정 패하지 않는다) 청성 투혼!” 장병들은 사단 표어를 외치며 마지막 결전에 돌입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장병들은 전차 불빛에 의지해 방아쇠를 당겼다. 적막한 고지에서 들려오는 것은 오직 총성과 전차포 소리뿐. 전장이 어떤 상황인지, 주변 장병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기 쉽지 않았다. 구석에 숨어 메모하던 기자 역시 섬광과 함께 ‘사망’ 처리됐고, 나중에서야 섬광의 정체가 전차포였다는 것을 알았다.

기자는 사망했지만, 전투는 계속됐다. 용문산여단과 을지여단은 밤새 상대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한 사투를 벌였다.


악조건 극복은 승리 향한 자신감으로

어둠 속 전투는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두 부대는 서로 진격하지 못하고 동·서부 전선에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지만, 양쪽 모두 손실이 컸다. 더 이상 공세 행동이 어려운 교착상태로 판단한 KCTC 훈련통제본부는 훈련 종료를 선언했다. 이미 훈련 목적을 달성한 장병들을 향한 정형균(소장) KCTC 단장의 전투훈련 종료 무전을 끝으로 올해 첫 여단급 쌍방훈련은 마무리됐다.

어느 정도 전장의 향방이 갈린 상황에서도 두 부대 모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상황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최선을 다해 그저 전진할 뿐. 사실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악천후와 낯선 환경, 무박 4일의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고 갈고닦은 훈련의 성과를 발휘한 용문산여단·을지여단 장병들의 믿음직한 모습은 실제 전장에서 우리 군이 발휘할 막강한 전투력의 상징이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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