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호
일반적으로 자주포라고 하면 운용·발사체계가 모두 자동화돼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기존 자주포는 일단 기동이 가능한 차체에 포를 탑재한 것만 말할 뿐 자동화와는 관계없다. K55만 해도 모든 사격준비 절차를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자체 동력(유압)을 이용해 포신을 돌리고 올리는 수고로움을 덜어줄 뿐이다.
K9 자주포에 신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기존 견인포·자주포와 달리 화포의 완전 자동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화포 자동화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기존 견인포·자주포의 운용·발사체계를 살펴보자.
이 화포들은 사격을 위해 먼저 사격하고자 하는 장소를 측지한 뒤 화포를 그곳으로 이동시키고 땅을 파 가신(架身·스페이드)을 고정시킨다.
사격 제원이 하달되면 화포로부터 50m 이상 떨어진 위치에 나침반이 들어 있는 방향틀을 설치, 수포(level vial)·웜 기어가 있는 방향포경과 상호 정렬을 한 뒤 사격 방위각을 장입하고 방향 손잡이를 돌려 포신을 사격 방향으로 구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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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겨냥틀 ·겨눔대를 화포 밖에 설치, 사격 방향을 고정한다. 이어 고저상한의에 사격 고각을 장입하고 포신을 사격 고각으로 들어올린다. 그 다음 포신의 폐쇄기를 열고 포탄과 추진장약을 장전, 폐쇄기를 닫고 뇌관을 삽입한 뒤 사격하게 된다.
사격 뒤에는 탄이 발사되면서 발생하는 충격으로 화포가 밀려나게 되고, 재차 사격하기 위해서는 다시 화포의 방향과 고각을 사격 위치로 보정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절차는 수동으로 이뤄짐으로써 초탄 발사에 2~11분의 시간이 소요되고 최대 발사속도도 분당 4발 이상은 곤란하다.
그러므로 화포 자동화가 이루어지면 적은 포반원의 인원으로 사격 임무를 신속히(초탄 발사 소요시간 30초 이내) 진행시키고 대량 화력을 투발(급속사격 15초 동안 3발과 최대발사속도 분당 6발)한 뒤 신속히 진지변환해 다음 사격을 준비하는 슛 앤 스쿠트(shoot & scoot) 작전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국방과학연구소의 화포 자동화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1980년대 초부터 안충호 체계팀장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했다. 사격 방향과 고각을 바로잡는 수포의 역할을 대신할 전기적 센서, 이동 중 또는 정지상태에서도 신속히 포·포탑을 자동으로 정렬할 수 있는 구동 시스템 등을 연구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안 팀장은 우선 포의 자세를 알 수 있는 수포의 역할을 전기적 센서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그런데 연구는 오래 가지 못했다. 1년을 더 연구한 후 연구과제로서 승인받지 못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 팀장은 장차 신개념의 자주포 개발을 염두에 두고 자료 수집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군사저널’(IDR·International defense review)에서 화포의 사격 충격력을 견딜 수 있는 링 레이저 자이로 시스템(Ring laser gyroscope system)이 미국 허니웰 사(社)가 개발했다는 기사를 읽게 됐어요. 너무도 반갑고 흥분되는 뉴스였습니다. 지금 K9 자주포의 핵심 장치 중 하나입니다." (안충호 팀장)
링 레이저 자이로 시스템은 도대체 무엇일까.
위치확인장치로 이해되는 이 장치는 지구 회전 각속도의 1만분의 1까지 감지 가능한 링 레이저 자이로, 지구 중력 가속도의 10만분의 1까지 감지할 수 있는 가속도계, 그리고 이들 센서가 감지한 관성정보를 이용해 항법계산을 수행하는 항법 컴퓨터와 함께 한 몸을 구성한다.
이 위치확인장치는 주행하는 자주포의 위치, 화포의 진북(眞北)에 대한 방위각 및 지구 수평면에 대한 고각·경사각을 자체적으로 계산해준다. 계산된 항법정보·자세정보는 사격 통제장치에 제공되는데 10m 이내의 위치 정확도와 0.7밀(mil) 이내의 방위각 정확도, 0.35밀 이내의 고각·경사각 정확도를 갖는다.
이 장치가 자주포에 적용되면 포의 위치·상태를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수동으로 이뤄지던 일련의 사격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일반 화포처럼 사격을 위해 사전에 측지한 위치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고 방향·고각을 잡기 위해 방향틀·겨냥틀·겨눔대 등의 부수 장비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화포 자동화, 궁극적으로는 신형 자주포의 핵심 장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 팀장은 신자주포 개발사업이 정식으로 시작되면서 즉각 이 링 레이저 자이로 시스템의 신자포 적용을 결정했다. 연구·개발하자면 이 시스템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 못할 것도 없겠지만 소요될 개발 기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국방일보 국산 무기체계 개발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11> ‘링 레이저 자이로’ 신자포 적용 2002년 10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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