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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의 정확한 사격을 위해서는 사격목표 방향과 높이로 포·포탑을 정밀하게 구동, 정렬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서 정밀이란 1밀(1mil) 이내의 정확도를 말한다. 1밀은 360도를 6400으로 나눈 값, 또는 기준점에서 1㎞ 떨어진 곳의 수직 1m 지점까지의 각도로서 0.05625도이다. 다시말해 급속사격을 위해 포탑을 회전시켜 목표 방향으로 향하게 할 때 포는 이 1밀의 각도 내에 위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포·포탑을 정밀하게 구동할 수 있는 기술을 시스템적으로 구성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관련된 최신 기술은 당시 영국 빅커스사(社)가 개발, AS-90 자주포에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탑실 김동현 박사는 1990년 9월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는 부분적 기술협력 교환을 제의했으나 빅커스사의 부사장에게 자주포 전체를 사라는 말만 듣고 황망히 문을 나서야 했다.
김 박사는 다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마르코니사를 방문했다. 이 회사는 엄청난 기술 이전료를 요구했다. 공장 설비 소개도 하지 않으면서 단지 도면만 보여주고 200만 달러를 주면 시뮬레이터를 개발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치 않은 태도지요. 물론 우리 기술이 취약하니까 감수할 수밖에 없긴 한데… 차를 내주겠다는 말을 뿌리치고 그 길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죠. 저도 한 오기 하는지라 죽는 한이 있어도 이 구동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마음 먹었지요."(김동현 박사)
안태영 박사를 비롯한 포탑실은 개발회의를 통해 전차의 포·포탑 구동장치를 개발했던 경험을 살려 전기·유압방식의 구동시스템을 독자 개발키로 하고 유웅재 박사 등으로 특별개발팀을 구성했다. 모두가 독한 마음을 먹은 것인데, 이것은 큰 모험이었다. 실패할 경우 개발사업 전체가 입는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개발팀은 곧 구동장치의 실험모델(시뮬레이터)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포·포탑의 중량과 관성량을 계산해 이를 기준으로 구동속도와 정밀도 규격을 산출해야 했다. 신형 자주포의 형상과 운용조건이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 많은 어려움 속에 각종 기술자료를 수집하는 등 설계 데이터를 작성, 이를 토대로 1991년 구동 시뮬레이터를 제작했다.
1992년부터 본격적인 시험에 들어간 연구진은 곧 난관에 봉착했다. 52구경장의 무장이 갖는 불균형 모멘트(포신 구동에 따른 하중 변화량)가 K55 자주포 무장의 2배에 달했던 것이다. 기존 유압평형기의 용량을 증대시킨 평형기는 무장의 위치 변화에 따른 불균형 모멘트 값을 충분히 보상하지 못했고 구동하는 각도에 따라 구동력도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이 문제는 당시 한창 개발 중이던 독일의 PzH2000 자주포에서도 나타났던 것이다.
안 박사의 제안에 따라 서울공대의 이교일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평형기·실린더·포로 조합한 메커니즘의 정확한 이론 모델을 산출하고 이를 모사실험에 이용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큰 설계 변경 없이 평형기에 대한 효과적인 유압 설정으로 시스템 구성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포·포탑의 구동, 탄 장전 및 이송에 긴요한 유압에너지를 만들어 주는 유압발생장치에서 생기는 소음도 문제였다. 난청의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소음이 컸던 것이다. 이대옥·김동현 박사, 그리고 동명중공업 안동문 부장과 엔지니어 등은 며칠 밤을 새워 그 원인이 유압의 과도한 출렁거림(맥동현상)에서 오는 것임을 밝혀냈다.
"자동차 머플러에 쓰이는 헬름홀츠 감쇠기의 원리를 이용해 실험장치를 만들었어요. 소음을 줄이기 위한 감쇠기 조건을 변경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시끄럽던 장비가 갑자기 조용해지고 유압 맥동현상도 확연히 줄어든 겁니다. 이후 발명특허 및 실용신안으로 등록했는데, 내내 자랑거리로 남아 있었습니다."(김동현 박사)
또한 사격 명중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포·포탑 정밀제어를 위해서는 보다 발달한 제어 방법이 요구됐다. 고정호 박사와 최준성 선임연구원이 이때 디지털 제어기술로 개발한 마찰보상 제어방식은 국내에서는 선구자적인 것으로 선진국 기술과 비교해 손색이 없었다.
이렇듯 순수 국내기술로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포·포탑 구동장치는 신형 자주포의 주요 핵심기술로서 구동 정밀도가 기준오차 범위 ‘1밀 이하’라는 탁월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국방일보 국산 무기체계 개발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12> 포·포탑 구동시스템 독자개발 2002년 10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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