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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10회] 위험 도사린 무장 사격시험

신인호

입력 2022. 03. 07   13:39
업데이트 2022. 03. 0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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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 계열업체 '선투자' 요청 흔쾌히 수락

8인치 포 포가 이용한 다목적시험기  '낭보'

1992년 1월 신자포 무장 첫 사격시험 실시


1990년 늦가을, 신자포 연구진은 화포 관련 방산업체의 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하는 연석회의를 열었다. 연구개발 예산이 부족했던 탓에 무장 개발과 관련된 계획을 설명하고 설비 보강에 먼저 투자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함이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업체에 개발 가능성만 가지고 선(先) 투자를 부탁하기란 대단히 난감한 것이었지만, 참석자 대부분이 KH179 곡사포를 개발할 당시에 참여했던 이들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10여 년이 지나 각 업체의 이사 또는 부장이 된 그들은 연구진의 계획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날 저녁 만찬장에서의 화제는 단연 KH179곡사포였다. 당시 열처리 조건을 잡기 위해 밤을 새운 이야기며, KH179의 운명을 좌우했던 운용시험 이야기 등 화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 건배를 제의하며 이렇게 외쳤다. “한번 화포맨은 영원한 화포맨이다.” 아직 열악한 환경 속에 연구진과 업체의 도전 의지는 그렇게 투합됐다.

업체의 지원으로 포신 제작이 궤도에 오르면서 연구진은 기술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우선 포신을 거치할 시험장치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포신의 최대 외경이 KH179와 동일하기 때문에 KH179의 가신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거리 40㎞를 확인하기 위한 사격 충격력을 견딜 수 있는 거치대는 못되었다.

연구원들은 저마다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포신을 큰 콘크리트 더미에 묶어 사격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더이상 바랄 것 없는 해결책이 우연 아닌 우연히도 찾아왔다. 안흥에 위치한 종합시험장의 손원호 실장이 문상규(전 풍산(주) 기술고문)부장에게 “앞날을 위해 자체적으로 개발해 놓은 다목적 시험기가 있다”고 말해준 것이었다.

8인치포 포가를 이용해 제작한 다목적시험기. 사진=국방과학연구소
8인치포 포가를 이용해 제작한 다목적시험기. 사진=국방과학연구소


“8인치 포가를 이용해 포신 외경에 상관 없이 기술시험이 가능토록 한 시험기였어요. 그것도 설계 단계가 아닌 제작이 완료된 상태로 즉시 기술시험이 가능했습니다. 하늘이 돕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지요.” (홍석균 무장팀장)

최초의 기술시험은 1992년 1월 안흥 종합시험장 3사격장에서 실시되었다. 다목적 시험기에 장착된 포신은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더욱 당당하고 늠름해 보였다. 사격시험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됐고 적어도 이때만은 마음이 넉넉했다. 하지만 시험이란 것이 어디 뜻대로 되는 것이던가. 개발 중에는 많은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다. 연구개발 기간은 특히 그렇다.

1992년 1월에 이뤄진 155mm 52구경장 무장의 최초 사격시험.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1992년 1월에 이뤄진 155mm 52구경장 무장의 최초 사격시험.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엄동설한에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드디어 최초 무장 연구 시제품에 대한 사격시험을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높은 사격압력으로 뇌관이 삽입링에 고착돼 빠지지 않는 예가 가장 먼저 발생했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드라이버와 펜치 등 온갖 공구를 다 동원해 무리하게 빼내려다 보니 손바닥 껍질이 다 벗겨져 나갈 정도였다.

자동장전장치를 사용해 55도 고각에서 M549A1 탄을 장전했는데 약실에 박혀야 할 탄이 잘 올라가더니 그만 ‘뚝’ 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그곳에 서 있던 추증호 연구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제게로 제대로(?) 떨어졌더라면 발등·발가락은 그냥 으스러졌을 겁니다.”

탐색개발이 거의 끝나가던 1993년 여름, 장사정탄 및 추진장약에 대한 기술시험을 지원하던 중 생긴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례.

이날 연구원들은 포 뒤로 20m쯤 떨어져 귀를 막은 채 사격을 지켜보았다. 몇 발은 무리 없이 잘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고막을 찢는 듯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무엇인가 이영현 연구원 머리 바로 위로 ‘휙’ 지나갔다.

사수 요원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달려가 보니 그 두꺼운 포열이 확장돼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주퇴복좌기에 걸쳐져 있었다. 서로가 어이 없어 하는 가운데 이 연구원은 문득 머리 위로 날아간 물체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조사를 해보니 공이 뭉치가 온 데 간 데 없었다. “순간 몸이 경직돼 버렸어요. 키가 조금만 컸더라면 이 자리는커녕 K9 구경도 못하고 이름 석 자만 작은 비석에 남아 있었겠지요.”(이영현 연구원)

누군가는 이 같은 사례의 원인이 안전불감증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다만 사격시험 최일선에 서는 무장팀 연구원에게는 그 많은 위험들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숙명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 연구진은 안흥 종합시험장에서 탐색개발 기간까지 250발의 사격시험을 가졌다. 시험 결과 초속 929m의 포구속도를 얻음으로써 최대사거리 40㎞ 도달 가능성을 확인했다.

■ 국방일보 원문 기사
국방일보 국산 무기체계 개발비화 
『철모에서 미사일까지』 제3화 「K9 155mm 자주포」
<10> 위험 도사린 무장 사격시험 2002년 10월 9일자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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