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R&D이야기 K9 자주포

K9 눈덮인 북유럽에서도 질주하는 까닭

신인호

입력 2022. 02. 23   15:39
업데이트 2022. 02. 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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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노르웨이의 설원에 우뚝 선 K9자주포. 사진=노르웨이 육군
북유럽 노르웨이의 설원에 우뚝 선 K9자주포. 사진=노르웨이 육군

최근 K9 자주포가 호주와 이집트에 잇달아 수출이 성사되면서 성능에 대한 궁금증도 많아지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어떻게 눈 덮인 북유럽에서,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 산악의 인도에서 가뿐히 내달리는 이유는 뭘까? 묻는 이들이 많습니다.

무기를 개발할 때에는 그것을 운용하고자 하는 군에서 어떻게 만들어달라 요구하는 사항이 다양하게 많은데요, 작전운용능력(ROC)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날씨와 지형, 기온, 심지어 모래 굵기까지, 그런 환경적 요소까지 모두 포함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하는 무기체계는 한반도의 기후와 지형을 당연히 완전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하고 수출을 생각한다면 그 이상이 되어야겠지요.

미 육군 규정 AR70-38에 제시된 세계 기후 분류의 intermediated hot-dry와 intermediated cold 항목을 참고하면 우리나라 무기체계에 적용되는 기후 범위를 알 수 있어요. 대략 운용온도는 -32~43도, 저장온도는 -34.4~62.8도 됩니다. 물론 이집트와 같은 중·근동지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덥고 북유럽은 눈도 더 많고 더 추우니까 그에 필요한 부품을 추가하거나 기존 부품이 그 환경에 적합하도록 부분적인 수정 보완이 이뤄지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확인할까요? 그 발전 사례를 볼까요?

우리나라가 국산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 초부터, 아직 산업화 초기 단계였던 시기니까 무기개발 수준도 이를 시험하고 평가할 시설도, 데이터도 그리 없었어요. K9 개발의 기반을 마련했던 KH-179 155mm 견인곡사포를 개발할 때입니다. 아마도 환경과 관련된 규모 있는 시험은 이게 처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 KH-179 견인포 개발 당시 저온 테스트

1982년 1월, 당시 국방과학연구소 안흥 종합시험장에는 극저온 시험시설이 있었지만 4.2인치 박격포 사격에도 설비가 깨져나갈 정도여서 포신 길이만도 6m가 넘는 구경 155㎜ KH-179 견인 곡사포 시험에는 적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경기도 연천의 다락대 시험장에 KH-179를 방렬한 상태에서 베니어판·절연제로 집을 지었죠. 실내에 드라이아이스·알코올을 잔뜩 넣고 10개의 선풍기로 공기를 순환시키며 실내 온도를 영하 44도로 끌어내리면서 화포를 냉각시켰어요. 이렇게 20시간이 지난 뒤, 포탄을 넣는 포미, 포탄이 날아가는 포구 쪽 벽만 허물고 최대 장약의 115% 압력으로 5발을 사격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이때 드라이아이스와 알코올은 2.5톤 트럭으로 각각 3대, 1대분이 사용되었답니다.

겨울철 혹한의 날씨를 포함한 우리나라 한반도 전역의 기후와 지형에서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는 이 장비를 운용하는 부대와 지휘관, 장병 모두에게 지대한 관심이 되고 ‘내가 믿고 쓸 수 있는 물건이냐’하는 신뢰의 기본이 됩니다. 그래서 기동/화력장비의 경우 개발단계에서 연구진들은 ‘기동성’에 화력 이상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폭약으로 깬 뒤 도섭하는 K200A1전차. 국방일보DB
얼어붙은 강의 얼음을 폭약으로 깬 뒤 도섭하는 K200A1전차. 국방일보DB


#K200장갑차의 혹한기 테스트

최초의 국산 장갑차로 말레이시아에도 수출되었던 K200장갑차는 1984년 육군20사단(임무종료)에 첫 배치되자마자 한겨울에도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해 기능하는가를 확인하는 시험이 있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하 35도, 당시 군에서 제시하는 장비운용 최저온도 기준이라는 그 온도에서 시동을 걸어 운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1984년 실용 기술시험 때 영하 20도까지 온도를 낮춰 장갑차 엔진의 시동상태와 히터의 점화상태를 점검한 바 있어요. 결과는 매우 양호하게 나타났지만 시험시설이 부족해 영하 32도까지 끌어내리지는 못했답니다.

1985년 1월 경기도 양평의 추위는 실로 역대급으로 기록적인 것이었습니다. TV와 신문에서는 70년 만의 초 강추위가 왔다고 보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은 시각에 20사단장 민병돈(육사15기·예비역 중장·전 육군사관학교장) 장군은 여단장 이유수(육사20기·예비역 중장·전 7군단장)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장갑차 혹한기 시험 여부를 물었고, 여단장은 주둔지에서 실시 중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민 장군다운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당장 남한강가로 끌고 가 시험하라는 것이었다. 그 춥고 늦은 때에.

민 장군은 왜 그런 지시를 했을까요. 민 장군은 그날 수은주가 영하 28도 안팎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K200 장갑차에 탑재된 것과 같은 디젤 엔진은 휘발유보다 추위에 약하고 상대적으로 잘 얼 뿐만 아니라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예가 흔했습니다. 이런 추위에 장갑차의 시동이 걸릴까? 민 장군은 이것이 마음에 걸렸고, 또 의심스러웠습니다. 실제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곤 했었죠.

이유수 여단장은 즉각 장갑차 16대를 강가로 이동시켰습니다. 기온은 더 떨어져 체감온도가 아니라 실제 온도가 영하 30도 아래를 밑도는 듯했습니다. 마치 장갑차 시험을 위해 추위가 온 듯했다. 새벽 4시에 민 장군이 남한강변에 나타났고, 지체 없이 명령했습니다. “시동을 걸어라!” 복명복창에 이어 조종수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부르르릉~’ 이상 없이 시동을 걸었습니다. 사단장은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당시 20사단은 설상(雪上) 지역에서 기동 능력도 시험했습니다. 15~20cm 적설지에서도 좋은 주행 능력을 보였으나 눈이 쌓인 20도 경사지 주행은 곤란하다는 판정을 받아 연구진은 이를 보완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쌓여 K200은 말레이시아로 수출된 뒤 말레이시아 평화유지군(PKF)이 운용하는 장비로 보스니아 내전에 참전, 1994년 2월 섭씨 영하 32도의 기온 아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해발 1700m의 이그만(Igman)산을 넘어 사라예보에 진입했습니다. 그런 차량은 오로지 대한민국의 K200장갑차뿐이었습니다.

# K9 시제의 겨울철 환경 테스트

연구개발도 일종의 치열한 전투입니다. 땡볕을 피할 그늘도 없는 사격장에서, 영하 20도가 넘는 전방 고지에서 개발장비의 운용성과 개선점들을 찾는 모습은 실전, 바로 그것이다. 그곳에 안락한 연구조건이 있을 리 없지만 더 좋은 장비를 개발하려는 연구진은 그같은 악조건을 마다하지는 않습니다.

K9이 극한적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운용 가능한지 시험하기 위해 선행개발 기간 중 전용시험설비를 건설했습니다. 포를 시험설비에 넣고 16곳에 온도계와 난방장치를 설치해 영상 50도까지 높였는데 39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포 전체가 이 온도로 올라가도록 29시간 동안 유지시킨 후 이어 시동을 걸어 시험설비 밖으로 나간 뒤 5발의 사격을 실시했죠. 그리고 질소가스가 팽창하며 기화열로 주위 온도를 내리는 원리를 적용해 온도를 영하 32도까지 내렸습니다. 35시간이 걸렸고 22시간을 유지시켰습니다. 테스트 승무원들은 질소가스로 인한 호흡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산소호흡기를 쓴 후 자주포를 몰고 나와 5발을 사격했습니다. 성에가 하얗게 자주포 전체에 엉켜 붙었지만 사격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 K9 강설기동시험과 대명스키장

1998년 10월 2일 육군은 신형 155㎜ 자주포 XK9의 운용시험평가를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하면서 ‘전투장비 사용가(可)’를 건의했습니다. 10일 후 합참은 무기체계심의회에서 기상여건으로 실시하지 못한 동계 강설기동시험을 실시한 후 결과를 보고할 것을 조건으로 ‘전투장비 사용가’를 의결했습니다.

연구진은 단서 조항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오지 않은 해였는데, 적설량이 충분해야만 실시할 수 있는 동계 강설기동시험을 야전에서 수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듬해 2월까지 기다려도 눈이 충분히 오지 않았죠.

결국 연구진은 스키장을 빌려 시험하기로 계획하고 전국의 스키장을 조사했지만, 스키장들은 50톤에 가까운 중량을 수용하기 곤란하다며 거절했습니다. 연구진은 홍천에 있는 ‘대명비발디’ 스키장을 방문, 국가적 안보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협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대명비발디 측은 3월 2일부터 5일간 오후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스키장의 야간 조명등을 켜고 시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습니다. 스키장 관리인들은 눈을 정리하는 등 연구진과 함께 동참했다고 합니다. 시험은 모든 항목을 만족시켰습니다. 이로써 연구진은 연구개발과 시험평가에 필요한 모든 시험을 완료한 겁니다.

5일간의 시험을 마친 뒤 연구진은 조명등을 사용한 전기세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사례했지만 대명비발디 측은 “국가안보를 위해 썼다고 생각하겠다”며 극구 사양했습니다. 비발디 스키장에는 그 후 국방과학연구소장이 국방연구개발사업의 헌신적 지원에 답하는 뜻으로 감사장을 전달했습니다.

# 터키의 강설 기동 요구


2000년 12월 30일, 6개월 만에 터키형 자주포 시제품이 완성됐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K-9 자주포의 시험평가 기준과 절차서를 영문화해 터키에 제공했고, 이어 동계·사격·하계시험이 한국 측의 기술지원 아래 터키포병학교 주관으로 실시토록 계획돼 1월 말부터 2월 초순까지 동계시험이 추진됐습니다.

동계시험 장소인 사르카므쉬는 터키 동부 산악지역. 해발 약 2100m에 한겨울에는 영하 40도 이하까지 떨어지고 겨우내 눈으로 덮이는 곳입니다. 당시 테스트에 참여한 삼성테크윈 전진모 차장은 “터키 측은 눈 위에서의 기동시험을 가장 중요하고 어렵게 생각했습니다. 터키군의 경험과 지형상 그랬던 것인데 우리는 한국 스키장에서 시험을 거쳤기 때문에 자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시제품의 기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고 회고했습니다.

터키 동부 산악지형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는 터키형 K9.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터키 동부 산악지형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는 터키형 K9.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 K2 전차의 저온시험

지상전의 왕자로 세계 정상급의 성능을 자랑하는 K2전차를 한번 볼 까요. 아래 사진은 보면 차체를 녹색과 흰색으로 도장한 듯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사실은 K2전차 개발 당시의 K2 화력시험용차량(FTR)이 저온시험시설에서 ‘온몸’을 얼린 뒤 나와서 냉기로 생긴 성에가 차체에 하얗게 낀 모습입니다. 저렇게 극한 온도까지 올리거나 내려서 엔진을 비롯한 각종 구성품들이 정상적으로 가동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기동하는 테스트를 합니다.


# 이번에는 항공기를 보겠습니다.

최초의 국산 항공기는 KT-1 기본훈련기이고, 이 기체를 무장형으로 개발한 것이 KA-1전술통제기입니다. 한 겨울에 물을 잔뜩 뿌려서 72시간 동안 얼린 뒤 가동 여부를 확인했는데요. 형 뻘인 KT-1도 같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1998년 겨울에, 그때는 영하의 새벽에 시험조종사 2명이 탑승한 채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4시간 동안 얼린 후 테스트를 했습니다. 물론 시동은 잘 걸렸지만 시험조종사 한 분은 감기로 고생 좀 했다죠?

XKO-1(KA-1의 개발당시 명칭)의 동계 결빙 시험 모습.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XKO-1(KA-1의 개발당시 명칭)의 동계 결빙 시험 모습. 사진 = 국방과학연구소

# 현재는 환경시험은 어떻게

그런데 환경시험을 장비 개발할 때마다 이렇게 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날로 첨단화하는 과학기술 발전에 맞춰 전문 시험시설을 갖추고자 했어요. 시험 능력이 곧 개발 능력이거든요. 


2000년 들어 국방과학연구소는 항공시험장을 착공하고 필요시설을 순서에 따라 준공했는데, 고온과 저온 시험, 결빙시험 등 극한 환경에서의 무기체계 성능을 점검하는 환경시험동은 환경시험장은 2008년에 완공됐어요. 실제 작전에서 예상되는 극한 상황에서의 성능을 미리 지상에서 시험해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는 최첨단 시험시설입니다. 당시 이 시설을 갖춘 나라는 미국 뿐이었습니다. 


전투기와 전차, 장갑차 같은 장비들을 대상으로 영하 54℃에서 영상 54℃까지 극한 상황에서 차 등이 정상 작동하는지를 테스트합니다. 결빙시험, 강설시험, 태양열 복사 시험, 강우시험, 습도시험 등도 다 포함됩니다.

2008년 항공시험장 준공 시 공개된 F-4E전투기의 결빙시험 모습.
2008년 항공시험장 준공 시 공개된 F-4E전투기의 결빙시험 모습.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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