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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한 종교와 삶] 참는다는 것

입력 2022. 01. 18   16:19
업데이트 2022. 01. 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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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한 해군본부 군종실 법사·대령
이경한 해군본부 군종실 법사·대령

불가(佛家)에 전해지는 고승(高僧) 한산과 습득은 각각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과 실천의 상징인 보현보살의 화현이라고 하는데, 이 두 도인이 서로 나눈 대화들은 세상사에 초연한 듯 보이면서도 현실을 사는 우리의 삶을 다시금 비추어 보게 하는 내용인지라 일찍부터 널리 회자되며 전해 오고 있다.

어느날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괴롭히고, 모욕하고, 웃기고,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고, 모질게 대하고, 속이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습득이 웃으며 답했다. “참고, 양보하고, 따르고, 피하고, 버티고, 공경하고, 신경 쓰지 말고, 몇 년 뒤에 보게.” 습득의 답은 한마디로 인욕(忍辱)을 하라는 말이다.

주로 불교에서는 인내(忍耐)라는 단어보다 인욕(忍辱)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많은 사람은 욕망이나 욕구를 참으라는 말로 알고 있지만 바른 뜻은 모욕을 참으라는 의미다.

예기(禮記)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일곱 가지 감정으로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을 이야기하면서, 이것과 차별돼 수양과 노력을 통해 발현시켜야 하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네 가지 마음으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제시한다. 이것은 각각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고 겸손하려는 마음,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회적 인간의 덕목을 구비하려는 수행의 근간은 모욕을 참아 내려는 마음, 즉 인욕(忍辱)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관계로 점철돼 연속되어지고, 그 관계 속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건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각자의 의지와 욕구, 감정이 상충하는 세상사에서 모욕은 당연히 그리고 빈번히 발생한다. 대승불교 관점에서 모욕 발생의 원인은 물론 타인이겠지만 결국 감정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기에, 모욕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타인을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인욕(忍辱)은 지혜로움이며 용기이고 희생이다. 부정적인 상황 속에 처해지는 것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고 시험이며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굴복하고 분노하며 좌절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서는 안된다. 요즘 항간에는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호구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나 능사가 아니라는 이야기이겠지만 멀리 내다보고 큰 성공을 기약하는 이에게는 그저 웃고 넘겨야 할 말이다. 시인 소동파는 “이른바 영웅호걸들에게는 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능가하는 절개가 있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불교에서는 다양한 수행법을 제시하지만 그중에 으뜸은 단연코 인욕(忍辱)하는 것이다. 금강경에는 부처님이 자신의 과거 생에 수행하던 시절, 악인에게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성내거나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이야기하시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부처님이 아니기에 그만큼 참을 수도 참을 필요도 없다고 이야기하면 곤란하다. 그렇게 참는 마음이 한 평범한 인간을 부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모욕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금쪽같은 내 삶의 일부를 낭비하고 복덕을 소진할 필요는 없다. 지혜롭고 용감한 마음으로 지금의 모욕을 참고 견디며 장차 다가올 내 삶의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그려보자. 멋지고 지혜로운 그대여. 지금의 모욕을 참고 웃어 버려라. 그래도 분이 안 풀리거든 눈 질끈 감고 몇 년 뒤에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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