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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집] 군은 인생의 터닝포인트

노성수

입력 2021. 12. 31   16:52
업데이트 2022. 01. 0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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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1월. 각양각색의 신년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때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1월은 한 해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전환점)로 여겨진다. 1월처럼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군(軍)일 것이다. 짧게는 1년6개월 동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곤 한다. 국방일보는 2022년 새해를 맞아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군에서 찾은 장병 2명을 만났다. 사연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의지와 열정을 북돋운 전우들이 곁에 있었다는 점이다. 혼자가 아닌 전우와 함께, 인생의 변화를 일궈낸 두 장병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국군체육부대 장진 일병

끈기를 배우다 

“메달 후보” 압박감에 슬럼프
상무 거쳐간 선배들 권유에 입대
최고의 시설에서 훈련에 집중
지난 11월 세계선수권 은메달
“태극기 부끄럽지 않은 선수 될 것”


금빛 스매싱에 도전장


지난해 11월 지구촌 탁구 최고수들이 모인 세계선수권에서는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겁없는 공격을 퍼붓는 ‘이병’의 활약이 화제였다. 국군체육부대(상무) 탁구팀 장우진(세계랭킹 12위) 일병이 주인공이다. 그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복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대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 성적을 거둔 그는 군 입대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금빛 스매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목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입니다. 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해 ‘세계 최강’ 중국을 넘어보겠습니다.”

장 일병은 임인년 새해 목표를 오는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정상 등극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입대한 장 일병은 올해 이병에서 일병으로 진급했다. 낯선 군대에 적응하며 첫 진급의 기쁨을 맛본 장 일병은 군대가 자신의 탁구 인생을 꽃피울 기회라고 단언했다.

“국내 남자 탁구선수들 사이에서는 ‘상무에 가면 전성기가 찾아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 탁구를 평정한 남자 선수 중 군에 복무하며 기량이 상승해 세계 무대에서 깜짝 메달을 따내고, 전역 후에는 확고한 입지를 굳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주세혁(렛츠런파크·2003년 세계탁구선수권 단식 준우승), 이상수(삼성생명·2017년 세계선수권 단·복식 3위), 정영식(미래에셋증권·2019년 세계군인체육대회 단식 준우승) 등 쟁쟁한 국가대표 선배들이 모두 군 복무 중 세계대회에 입상한 뒤 국내 최강자로 거듭났죠. 저 역시 군에서 몸과 마음을 단련해 탁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상무 거친 선배의 입대 조언


사실 지난해는 장 일병에게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최근 세계선수권에서 복식 은메달을 따냈지만,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3~4위전에서 홈팀 일본에 패해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것. 국내 선수 중 가장 높은 세계랭킹(12위)에 올라 에이스로 나섰던 그였기에 실망감이 컸다. 메달을 놓치고 목표를 잃자 몸도 마음도 지쳐 훈련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부터 매스컴에서 남자탁구는 확실한 메달 후보라고 주목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승부의 순간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렸고, 결국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메달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후 시합장에 가도 스스로 기가 죽어 경기를 그르치기 일쑤였죠. 방황하던 그때 먼저 상무를 거쳐 간 이상수·정영식 선배가 입대를 권했습니다. 두 선배는 군 복무를 통해 선수이기 전에 인격체로 성숙해질 뿐만 아니라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함을 깨닫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입대 이후 장 일병은 탁구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장 일병은 오른손 셰이크핸드 전형으로 상대 허를 찌르는 공격이 장기다. 영리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폭발적인 공격력과 노련한 경기 운영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네트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펼쳐지는 랠리에는 다소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장 일병은 규칙적인 군 생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부족했던 끈기를 길렀다. 이는 경기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동료들보다 나이(27)도, 경험도 많지만 제 계급에 맞게 행동하고 솔선수범하면서 충실히 군 생활에 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 상황에서도 최고의 시설에서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지금 인내의 과정이 제가 더 큰 선수가 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상무 탁구팀의 임종만 지도관은 “강력한 드라이브를 갖춘 장 일병은 공격력에선 흠잡을 데 없는 선수”라며 “훈련 중에는 전우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 기량 향상을 도모하고, 병영생활도 모범적으로 적응해 국가와 군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이 기대된다”고 칭찬했다.


군인정신 무장

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그는 올해 더 큰 목표를 향해 뛴다. 당장 지난해 연기돼 이달 중 열리는 전국남녀 탁구종합선수권 단식우승이 1차 목표다. 탁구종합선수권은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총출동해 ‘계급장을 떼고’ 맞대결하는 국내 최대 탁구대회다. 이 대회에서 장 일병은 코로나19로 열리지 않은 2020년을 제외하고, 2018·2019년 연속 우승을 따냈다. 만약 이번 대회에서도 우승한다면 ‘탁구 전설’ 김택수(미래에셋증권 감독)에 이어 3연패 위업을 달성하게 된다.

또 태극마크를 달고 오는 4월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단체전과 9월 아시안게임에서 탁구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에 도전한다. “탁구경기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국의 벽을 넘어야만 합니다. 강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로 거듭난 만큼 가슴에 태극기가 부끄럽지 않도록 국가와 군을 대표하는 선수로 후회 없는 경기를 하겠습니다. 충성!” 글·사진=노성수 기자



육군2포병여단 천룡대대 부렁 상병


특별한 이름표

베트남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 말씀따라 귀화
부대 특별 제작한 명찰 달고
지난해 군 검역지원단 파견
통역병 임무 수행
“대한민국에 헌신한 값진 경험”
 


군대서 받은 두번째 이름 

육군2포병여단 천룡대대에 근무하는 부탕렁(22) 상병은 이름이 두 개다.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부탕렁’과 부대에서 전우들이 부르는 ‘김재원’이 그것이다. 그가 두 개의 이름을 가지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부탕렁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베트남 이름이고, 김재원은 새로운 조국 대한민국 이름이다.

본명은 부탕렁이지만, 전우들은 그를 김재원이라고 부른다. 부탕렁보다는 김재원이라는 한국 이름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는 ‘김재원’ 세 글자가 적힌 명찰이 달려 있다. 부대가 김 상병을 위해 특별히 제작해준 명찰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부탕렁 상병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는 한국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아버지 말씀을 따라 그는 학교를 다니며 귀화 절차를 밟았다.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처음엔 언어가 서툴렀지만, 지금은 어려운 군대 용어도 척척 알아들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부탕렁, 아니 김재원 상병은 군(軍)이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나침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입대 전에는 베트남과 너무 다른 한국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며 이방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군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동고동락하며 전우애를 다지고 있습니다. 활동적이지 않은 성격 때문에 친구들도 별로 없었지만 군에서는 전우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달라졌습니다. 원래는 낯을 많이 가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지금은 생활관에서 제 생각을 전우들과 스스럼 없이 공유하며 활발하게 지냅니다.”


군 검역지원단 통역병 임무 수행도 완수

김 상병은 천룡대대에서 정비병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형 다연장로켓 ‘천무’를 주로 정비한다. 군 생활 초기에는 한국말도 서투른데 어려운 정비 용어까지 배우다 보니 애로사항도 많았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전우와 간부들이 곁에서 세심히 가르쳐주고 응원해줬다.

“생활관 동기들로부터 ‘군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등 군대 문화와 예절을 많이 배웠어요. 특히 정비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는데 정비관 한정균 상사님이 성심성의껏 지도해주시고, 병영생활 안팎으로 많이 챙겨주신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김 상병은 지난해 8~9월 인천국제공항 군 검역지원단에 파견돼 베트남어 통역병으로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베트남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베트남어는 모국어다. 그럼에도 국군 대표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인천국제공항 파견 전 한국어와 베트남어 회화공부를 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체력을 키웠다.

“제 역할은 제1터미널로 입국하는 외국인에게 방역 애플리케이션(앱) 설치를 안내하는 일이었습니다. 입국자들은 상황에 따라 자가격리, 시설격리, 면제 등으로 분류됩니다.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납득하지 못하는 얼굴을 보면 저 역시 답답한 마음이 컸죠. 그때마다 조끼에 적힌 ‘국군검역지원단’이라는 글자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그 단어는 제가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는 군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한 달 동안의 값진 경험을 통해 앞으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김 상병은 얼마 전 입대 1주년을 맞았다. 베트남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방황하던 예전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성실히 병역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당당함이 있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군에서, 또 군을 통해 자신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대에서 전우와 함께 임무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고, 육군의 일원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글=이원준/사진=조종원 기자


노성수 기자 < nss1234@dema.mil.kr >
이원준 기자 < wonjun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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