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생략하고 현장서 서민과 상담
기존 대면 위주 상담 시스템부터 손질
앱 150만 건 다운로드…만족도 4.8점
부임 3년 만에 실적 300% 이상 증가
소대장 복무하며 ‘책임감’ 처음 느껴
전역 후 행시 합격해 공직 입문
국방예산과장으로 군과 다시 인연
군부대 수없이 찾아 다니며 정책 개발
국방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고시 출신’ ‘삼성맨’….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학군 22기)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이 원장은 군(軍)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군 복무 대신 공부가 하고 싶어 병역 대체 프로그램이 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 과정 진학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군과 함께였다. 이 원장은 경기도 가평군 군부대 근처에 살아 어렸을 때부터 군인들을 보고 자랐다. 학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기획재정부에서 국방예산과장으로 있을 땐 장교 시절보다 많은 군부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현재는 군 장병을 대상으로 금융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취약계층을 돕는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리더인 이 원장이 이번 인터뷰 주인공이다. 글=김해령 기자/사진=서민금융진흥원 제공
어려운 가정환경 경험…맞춤형 정책 발굴 이 원장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열여덟 살 많은 큰형이 가장 역할을 대신했다.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수확한 나물을 장에 내다 팔았다. 온 가족이 농사를 도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재 이 원장이 이끄는 서금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우치게 했다. 서금원은 저신용·저소득 등을 이유로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돼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이나 고금리대출에 빠지지 않도록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준정부기관이다. 지난해 기준 신용 8등급 이하(신용점수 하위 6%) 서민은 228만4000명, 이 중 약 95%인 216만5000명이 연체 중이거나 최근 연체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신복위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신복위는 코로나19 등 예기치 못한 위기로 대출을 갚지 못하는 서민을 위해 연체이자 또는 경우에 따라 원금까지 탕감해서 빚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이 원장은 “서금원과 신복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취약계층을 돕는 ‘금융 주치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서민 출신인 그가 서민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된 셈이다.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맞춤형 정책과 지원 방책을 발굴할 수 있었다. 서금원의 올해 실적(1조620억 원)이 그가 처음 부임한 2018년(2883억 원)보다 300% 이상 증가한 것도 어린 시절 어려웠던 배경 덕분이라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찾아가는 상담 이 원장은 취임 당시 취임식을 생략하고 현장으로 갔다. 서금원 관악상담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50개 센터 중 48개 센터와 전국 31개 전통시장을 찾아 125명의 서민을 만나 금융 상담을 했다. 현장에서 이 원장은 서금원이 고객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이 말만 ‘서민’이지, 여전히 문턱이 높고 공급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었다”며 “상담한 분들 대부분이 서민금융이나 복지제도를 몰라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 원장은 서금원의 변화를 이끌었다. 먼저 불편했던 대면 위주 상담 시스템부터 손봤다. 당시 서민금융 상담은 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대면 위주로 운영됐다. 전화 상담도 자동 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이용하기 불편했다. 상담 시간 역시 오후 8시까지만 운영됐다. 이에 서 원장은 생업에 바쁜 서민들이 24시간 언제·어디서나 상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고령층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콜센터 상담을 ARS가 아닌 상담사와 직접 통화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콜센터 고객상담 실적은 올해(1~11월) 1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상담 때 불필요한 서류 작성도 없앴다. 이용자들이 상담센터 방문 때 필수적으로 작성했던 신청 서류를 없애고, 신분증만 있으면 상담이 가능하도록 했다.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상담받을 수 있도록 ‘챗봇 상담 애플리케이션(앱)’을 도입해 고객 편의성도 높였다. 맞춤 대출을 받으려면 개인 정보 33개를 입력하던 것이 앱 도입 후 13개로 줄었다. 덕분에 맞춤 대출 이용률은 2018년 대비 4.6배 확대됐다. 무엇보다 지점에 따라 최대 6주 걸리던 상담이 비대면으로 가속도가 붙으면서 이제 전국 모든 지점에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상담·신청이 가능하게 됐다. 서금원 앱은 현재 14곳의 공공기관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공공부문 앱 가운데 300개가 다운로드 1000건이 안 되는데 서금원의 앱 다운로드는 약 150만 건에 달한다. 고객만족도 역시 5.0 만점에 4.8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과가 이어지자 세계가 주목했다. 지난해 8월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SDGs협회는 ‘2020 글로벌 지속가능 100’ 리스트에 서금원과 신복위를 나란히 올렸다. 10월에는 ‘UN 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SDGBI)’에 애플·아마존 등과 함께 최우수그룹으로 선정했다. 이 원장의 리더십도 조명됐다. 지난 8월 30일 이 원장이 ‘2021 글로벌지속가능리더100’ 리스트에 선정된 것. 이 원장은 여기서 팀 쿡 애플 CEO,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방탄소년단(BTS), 구광모 LG 회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서금원 조직도 눈에 띄게 성장해 3년 전 100여 명이던 직원 수가 400여 명까지 늘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군과의 인연 동국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공부를 더 하라’는 지도교수 조언에 따라 카이스트에 진학하려고 했다.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면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끌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ROTC 장교가 됐다. 그의 큰형이 ‘취직이 잘 된다’며 ROTC 복무를 권유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당시 이 원장은 이미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한 후였기 때문이다.
육군1기갑여단 전차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이 원장은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꼈다. 집에서 막내로 자라 공부만 했던 그가 한 소대를 이끄는 리더가 되면서부터다. 이 원장은 “리더 역할을 한다는 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라며 “ROTC 장교 복무는 삶의 큰 자산이 됐다”고 회상했다.
전역 후에도 군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전역 후 행정고시에 도전해 1990년 행정고시 34회에 합격한 그는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으로 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2008년에는 국방예산과장으로 발령돼 군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국방예산과장으로 일하며 군부대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이 원장은 “생일 장병에게 쌀 케이크 선물, 젖은 전투화를 말리는 건조기 보급 등이 과장 재직 때 시작된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이 원장의 임기는 예정상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는 “운명처럼 ROTC 장교가 된 것 같다”며 “군과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장병과 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임식 생략하고 현장서 서민과 상담
기존 대면 위주 상담 시스템부터 손질
앱 150만 건 다운로드…만족도 4.8점
부임 3년 만에 실적 300% 이상 증가
소대장 복무하며 ‘책임감’ 처음 느껴
전역 후 행시 합격해 공직 입문
국방예산과장으로 군과 다시 인연
군부대 수없이 찾아 다니며 정책 개발
국방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고시 출신’ ‘삼성맨’….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학군 22기)을 지칭하는 말들이다. 이 원장은 군(軍)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군 복무 대신 공부가 하고 싶어 병역 대체 프로그램이 있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사 과정 진학을 고민했었다. 그러나 그의 일대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군과 함께였다. 이 원장은 경기도 가평군 군부대 근처에 살아 어렸을 때부터 군인들을 보고 자랐다. 학군장교로 군 복무를 마치고, 기획재정부에서 국방예산과장으로 있을 땐 장교 시절보다 많은 군부대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현재는 군 장병을 대상으로 금융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취약계층을 돕는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 리더인 이 원장이 이번 인터뷰 주인공이다. 글=김해령 기자/사진=서민금융진흥원 제공
어려운 가정환경 경험…맞춤형 정책 발굴 이 원장은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열여덟 살 많은 큰형이 가장 역할을 대신했다. 어머니는 농사를 지어 수확한 나물을 장에 내다 팔았다. 온 가족이 농사를 도와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현재 이 원장이 이끄는 서금원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우치게 했다. 서금원은 저신용·저소득 등을 이유로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돼 어려움을 겪는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이나 고금리대출에 빠지지 않도록 낮은 금리로 대출을 지원하는 준정부기관이다. 지난해 기준 신용 8등급 이하(신용점수 하위 6%) 서민은 228만4000명, 이 중 약 95%인 216만5000명이 연체 중이거나 최근 연체 기록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신복위 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신복위는 코로나19 등 예기치 못한 위기로 대출을 갚지 못하는 서민을 위해 연체이자 또는 경우에 따라 원금까지 탕감해서 빚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한다. 이 원장은 “서금원과 신복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취약계층을 돕는 ‘금융 주치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서민 출신인 그가 서민을 돌보는 일을 맡게 된 셈이다. 서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기에 맞춤형 정책과 지원 방책을 발굴할 수 있었다. 서금원의 올해 실적(1조620억 원)이 그가 처음 부임한 2018년(2883억 원)보다 300% 이상 증가한 것도 어린 시절 어려웠던 배경 덕분이라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답은 언제나 현장에… 찾아가는 상담 이 원장은 취임 당시 취임식을 생략하고 현장으로 갔다. 서금원 관악상담센터 방문을 시작으로 50개 센터 중 48개 센터와 전국 31개 전통시장을 찾아 125명의 서민을 만나 금융 상담을 했다. 현장에서 이 원장은 서금원이 고객 중심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원장은 “서민금융이 말만 ‘서민’이지, 여전히 문턱이 높고 공급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었다”며 “상담한 분들 대부분이 서민금융이나 복지제도를 몰라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 원장은 서금원의 변화를 이끌었다. 먼저 불편했던 대면 위주 상담 시스템부터 손봤다. 당시 서민금융 상담은 센터를 직접 방문하는 대면 위주로 운영됐다. 전화 상담도 자동 응답시스템(ARS) 방식으로 이용하기 불편했다. 상담 시간 역시 오후 8시까지만 운영됐다. 이에 서 원장은 생업에 바쁜 서민들이 24시간 언제·어디서나 상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 고령층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콜센터 상담을 ARS가 아닌 상담사와 직접 통화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콜센터 고객상담 실적은 올해(1~11월) 1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상담 때 불필요한 서류 작성도 없앴다. 이용자들이 상담센터 방문 때 필수적으로 작성했던 신청 서류를 없애고, 신분증만 있으면 상담이 가능하도록 했다.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상담받을 수 있도록 ‘챗봇 상담 애플리케이션(앱)’을 도입해 고객 편의성도 높였다. 맞춤 대출을 받으려면 개인 정보 33개를 입력하던 것이 앱 도입 후 13개로 줄었다. 덕분에 맞춤 대출 이용률은 2018년 대비 4.6배 확대됐다. 무엇보다 지점에 따라 최대 6주 걸리던 상담이 비대면으로 가속도가 붙으면서 이제 전국 모든 지점에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상담·신청이 가능하게 됐다. 서금원 앱은 현재 14곳의 공공기관이 벤치마킹하고 있다. 공공부문 앱 가운데 300개가 다운로드 1000건이 안 되는데 서금원의 앱 다운로드는 약 150만 건에 달한다. 고객만족도 역시 5.0 만점에 4.8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성과가 이어지자 세계가 주목했다. 지난해 8월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SDGs협회는 ‘2020 글로벌 지속가능 100’ 리스트에 서금원과 신복위를 나란히 올렸다. 10월에는 ‘UN 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SDGBI)’에 애플·아마존 등과 함께 최우수그룹으로 선정했다. 이 원장의 리더십도 조명됐다. 지난 8월 30일 이 원장이 ‘2021 글로벌지속가능리더100’ 리스트에 선정된 것. 이 원장은 여기서 팀 쿡 애플 CEO,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방탄소년단(BTS), 구광모 LG 회장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서금원 조직도 눈에 띄게 성장해 3년 전 100여 명이던 직원 수가 400여 명까지 늘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군과의 인연 동국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한 이 원장은 ‘공부를 더 하라’는 지도교수 조언에 따라 카이스트에 진학하려고 했다. 카이스트 석사 과정을 마치면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끌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ROTC 장교가 됐다. 그의 큰형이 ‘취직이 잘 된다’며 ROTC 복무를 권유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당시 이 원장은 이미 삼성그룹 공채에 합격한 후였기 때문이다.
육군1기갑여단 전차소대장으로 복무하던 이 원장은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꼈다. 집에서 막내로 자라 공부만 했던 그가 한 소대를 이끄는 리더가 되면서부터다. 이 원장은 “리더 역할을 한다는 건 정말 뜻깊은 경험”이라며 “ROTC 장교 복무는 삶의 큰 자산이 됐다”고 회상했다.
전역 후에도 군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전역 후 행정고시에 도전해 1990년 행정고시 34회에 합격한 그는 경제기획원 예산실 사무관으로 공무원의 길에 들어섰다.
2008년에는 국방예산과장으로 발령돼 군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국방예산과장으로 일하며 군부대를 수없이 찾아다녔다. 이 원장은 “생일 장병에게 쌀 케이크 선물, 젖은 전투화를 말리는 건조기 보급 등이 과장 재직 때 시작된 것”이라며 뿌듯해했다.
이 원장의 임기는 예정상 올해가 마지막이다. 그는 “운명처럼 ROTC 장교가 된 것 같다”며 “군과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장병과 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