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카피 수정테이프 광고의 재치
철자 한두 개만 가려도 정반대 의미
실언 잘못보다 이후 대처 중요성 강조
간단명료하게 효과적 제품 기능 홍보
말을 내뱉자마자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이미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난감해질 때도 많다. 글을 쓸 때도 딱 그 표현만 안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이미 발표된 글을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도 없다. “귀는 열고 입은 닫아라.” 탁월한 명언이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한 번 뱉은 말이나 이미 발표된 글을 주워 담을 수는 없어도, 수정해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광고가 있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글자 수정’ 시리즈(2016)에서는 처음에 나쁜 뜻으로 쓰인 글자를 수정해 좋은 의미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며 수정테이프의 가치를 느끼게 했다. 브라질에서 집행된 6편의 시리즈 광고에서는 회색 바탕에 헤드라인 하나를 써서 간단명료한 광고를 만들었다. 헤드라인 알파벳 글자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지만, 자세히 보면 지워버린 알파벳을 눈치채도록 표현했다. 처음의 알파벳대로 읽으면 부정적인 뜻이지만, 테이프를 붙여 수정하니 긍정적인 뜻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지면 오른쪽 하단 3M 로고에는 멋진 슬로건을 붙였다. “수정할 수 없는 것을 수정한다(Repair the irreparable).”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랩’ 편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넌 힙합이라지만 난 랩이라고 할게(You call it hip-hop, I call it rap).” 마지막의 ‘랩’ 부분이 원래는 트랩(trap)이었는데, 티(t)를 수정테이프로 가려버렸다. 트랩은 덫이란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재즈 밴드 타악기란 뜻도 있다. 처음 카피대로라면 상대방이 부른 노래가 힙합과 거리가 먼 느린 음악이라는 뜻이다. 트랩이라고 말했다면 듣는 사람이 불편해했으리라. 테이프를 붙여 수정하니 비트 있는 랩으로 승화됐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핏’ 편에서도 테이프 수정 기능이 돋보인다. “너 건강해 보인다(You look fit).” 이런 헤드라인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마지막 ‘핏’ 부분이 조금 이상하다. 광고 창작자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 팻(fat)으로 썼음을 알 수 있도록 처리했다. 에이(a) 자의 왼쪽 부분을 테이프로 가려 약간은 불완전한 아이(i) 자를 만들어냈지만, 누가 보더라도 아이(i)로 읽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너 뚱뚱해 보인다”가 결국 “너 건강해 보인다”로 바뀌게 됐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신발’ 편 헤드라인에서는 동사를 수정함으로써 테이프 기능을 설명했다. “여성 신발을 판매합니다(I sell women’s footwear).” 이 헤드라인에서 처음에 쓴 동사는 ‘냄새를 맡다(smell)’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엠(m) 자에 테이프를 붙였는데, 그렇게 처리하니 ‘판매하다’라는 동사로 바뀌었고 의미가 전혀 달라졌다. 여성용 신발을 판매한다고 하지 않고, 킁킁거리며 여성 신발의 냄새를 맡거나 탐지한다고 했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아이’ 편 헤드라인에서는 영어의 소유격을 수정했다. “애들은 우리의 문제야(The kids are our problem).” 이 헤드라인에서 처음에는 ‘너의(your)’라고 표현했다. 와이(y) 자에 테이프를 붙이니 앞글자가 사라지고 소유격이 ‘우리의’로 바뀌게 됐다. 아이 돌봄이 아이 부모만 관여할 문제라는 이기적인 입장이 공동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게 됐다. 테이프 수정 기능을 알리는데 이처럼 유쾌한 방법도 없을 것 같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연인’ 편에서는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꿔 의미를 부여했다. “자기, 첫눈에 반했어(Honey, it was love at first sight).” 헤드라인에 있는 비(Be) 동사 ‘워스(was)’와 달리 ‘워슨트(wasn’t)’가 처음의 카피였다.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꾸려고 테이프를 넓게 붙였다. 결코 첫눈에 반하지 않았지만 사귀다 보니 정이 쌓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는 걸 굳이 강조하기보다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하면, 연인 사이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신곡’ 편 헤드라인을 보자. “네 신곡 대박이야(Your new song is an absolute hit)!” 정말 기분 좋게 들리는 말이지만 처음에 쓴 대로 상대방에게 말했다가는 멱살잡이를 당했을 것 같다. 마지막의 ‘힛’ 부분이 원래는 쉿(shit)이었지만 에스(s) 부분을 테이프로 가려 버렸다. 쉿은 똥이나 ‘젠장’이란 뜻이니, 수정하기 전 헤드라인은 이런 말이다. “네 신곡 엿 같아!” 수정테이프의 놀라운 마력을 설명하기 위해 엿 같은 음악도 대박 음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시리즈 광고에서는 영어 스펠링 하나를 수정해 부정적인 뜻을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는 카피의 신공을 보여줬다. 광고 창작자들은 부정과 긍정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카피를 조합하기 위해 심사숙고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수정테이프의 기능 제시 위주로 광고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을 그렇게 단조롭게 표현하지 않았다. 간단명료한 표현이지만 수정테이프 기능을 흥미롭게 풀어낸 스토리의 힘이 돋보인다.
“아홉 마디 명언보다 한 마디 실언이 크고, 아홉 가지 공보다 한 가지 실패가 뼈아프다.” 중국 명나라 말기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한마디 말 때문에, 한 줄의 글 때문에, 급격히 추락해버린 유명인들의 사례를 자주 목도해 왔다. 말 한마디와 글 한 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늘 심사숙고해야겠지만, 실수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실언이나 글 실수를 했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아가 그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고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로 수정하지 않으려 하는 고집이나 쓸데없는 자존심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실수했다면 사과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수정하기, 여기에 수정테이프 광고의 참교훈이 있다.
필자 김병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PR학회장, 한국광고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 줄 카피 수정테이프 광고의 재치
철자 한두 개만 가려도 정반대 의미
실언 잘못보다 이후 대처 중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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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내뱉자마자 아차 싶을 때가 있다. 이미 한 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으니 난감해질 때도 많다. 글을 쓸 때도 딱 그 표현만 안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이미 발표된 글을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도 없다. “귀는 열고 입은 닫아라.” 탁월한 명언이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한 번 뱉은 말이나 이미 발표된 글을 주워 담을 수는 없어도, 수정해 보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광고가 있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글자 수정’ 시리즈(2016)에서는 처음에 나쁜 뜻으로 쓰인 글자를 수정해 좋은 의미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주며 수정테이프의 가치를 느끼게 했다. 브라질에서 집행된 6편의 시리즈 광고에서는 회색 바탕에 헤드라인 하나를 써서 간단명료한 광고를 만들었다. 헤드라인 알파벳 글자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지만, 자세히 보면 지워버린 알파벳을 눈치채도록 표현했다. 처음의 알파벳대로 읽으면 부정적인 뜻이지만, 테이프를 붙여 수정하니 긍정적인 뜻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지면 오른쪽 하단 3M 로고에는 멋진 슬로건을 붙였다. “수정할 수 없는 것을 수정한다(Repair the irreparable).”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랩’ 편의 헤드라인은 이렇다. “넌 힙합이라지만 난 랩이라고 할게(You call it hip-hop, I call it rap).” 마지막의 ‘랩’ 부분이 원래는 트랩(trap)이었는데, 티(t)를 수정테이프로 가려버렸다. 트랩은 덫이란 뜻으로 주로 쓰이지만 재즈 밴드 타악기란 뜻도 있다. 처음 카피대로라면 상대방이 부른 노래가 힙합과 거리가 먼 느린 음악이라는 뜻이다. 트랩이라고 말했다면 듣는 사람이 불편해했으리라. 테이프를 붙여 수정하니 비트 있는 랩으로 승화됐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핏’ 편에서도 테이프 수정 기능이 돋보인다. “너 건강해 보인다(You look fit).” 이런 헤드라인은 얼마나 좋은 말인가. 그런데 마지막 ‘핏’ 부분이 조금 이상하다. 광고 창작자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처음에 팻(fat)으로 썼음을 알 수 있도록 처리했다. 에이(a) 자의 왼쪽 부분을 테이프로 가려 약간은 불완전한 아이(i) 자를 만들어냈지만, 누가 보더라도 아이(i)로 읽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너 뚱뚱해 보인다”가 결국 “너 건강해 보인다”로 바뀌게 됐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신발’ 편 헤드라인에서는 동사를 수정함으로써 테이프 기능을 설명했다. “여성 신발을 판매합니다(I sell women’s footwear).” 이 헤드라인에서 처음에 쓴 동사는 ‘냄새를 맡다(smell)’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엠(m) 자에 테이프를 붙였는데, 그렇게 처리하니 ‘판매하다’라는 동사로 바뀌었고 의미가 전혀 달라졌다. 여성용 신발을 판매한다고 하지 않고, 킁킁거리며 여성 신발의 냄새를 맡거나 탐지한다고 했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
‘아이’ 편 헤드라인에서는 영어의 소유격을 수정했다. “애들은 우리의 문제야(The kids are our problem).” 이 헤드라인에서 처음에는 ‘너의(your)’라고 표현했다. 와이(y) 자에 테이프를 붙이니 앞글자가 사라지고 소유격이 ‘우리의’로 바뀌게 됐다. 아이 돌봄이 아이 부모만 관여할 문제라는 이기적인 입장이 공동체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는 쪽으로 관점이 바뀌게 됐다. 테이프 수정 기능을 알리는데 이처럼 유쾌한 방법도 없을 것 같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연인’ 편에서는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꿔 의미를 부여했다. “자기, 첫눈에 반했어(Honey, it was love at first sight).” 헤드라인에 있는 비(Be) 동사 ‘워스(was)’와 달리 ‘워슨트(wasn’t)’가 처음의 카피였다.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바꾸려고 테이프를 넓게 붙였다. 결코 첫눈에 반하지 않았지만 사귀다 보니 정이 쌓여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첫눈에 반하지 않았다는 걸 굳이 강조하기보다 첫눈에 반했다고 고백하면, 연인 사이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3M 수정테이프 광고. 필자 제공
‘신곡’ 편 헤드라인을 보자. “네 신곡 대박이야(Your new song is an absolute hit)!” 정말 기분 좋게 들리는 말이지만 처음에 쓴 대로 상대방에게 말했다가는 멱살잡이를 당했을 것 같다. 마지막의 ‘힛’ 부분이 원래는 쉿(shit)이었지만 에스(s) 부분을 테이프로 가려 버렸다. 쉿은 똥이나 ‘젠장’이란 뜻이니, 수정하기 전 헤드라인은 이런 말이다. “네 신곡 엿 같아!” 수정테이프의 놀라운 마력을 설명하기 위해 엿 같은 음악도 대박 음악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시리즈 광고에서는 영어 스펠링 하나를 수정해 부정적인 뜻을 긍정적인 의미로 바꾸는 카피의 신공을 보여줬다. 광고 창작자들은 부정과 긍정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카피를 조합하기 위해 심사숙고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수정테이프의 기능 제시 위주로 광고를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을 그렇게 단조롭게 표현하지 않았다. 간단명료한 표현이지만 수정테이프 기능을 흥미롭게 풀어낸 스토리의 힘이 돋보인다.
“아홉 마디 명언보다 한 마디 실언이 크고, 아홉 가지 공보다 한 가지 실패가 뼈아프다.” 중국 명나라 말기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한마디 말 때문에, 한 줄의 글 때문에, 급격히 추락해버린 유명인들의 사례를 자주 목도해 왔다. 말 한마디와 글 한 줄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늘 심사숙고해야겠지만, 실수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실언이나 글 실수를 했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나아가 그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고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테이프를 붙여서라도 수정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로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절대로 수정하지 않으려 하는 고집이나 쓸데없는 자존심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실수했다면 사과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수정하기, 여기에 수정테이프 광고의 참교훈이 있다.
필자 김병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PR학회장, 한국광고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