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India)는 6·25전쟁 발발 후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에 부응, 신속하게 의료지원 부대를 대한민국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50년 11월 20일 군의관 14명, 행정관 1명, 보급관 1명, 위생병 329명으로 구성된 제60야전병원(The 60th Parachute Field Ambulance and Surgical Unit)이 부산에 입항했다.
제60야전병원은 10일 동안 부대를 재정비한 후 최초 계획에 따라 영국군 제27여단에 배속돼 영국군을 직접 지원했다. 하지만 얼마 후 병원의 의료지원 능력이 여단 지원 규모를 초과한다는 미 8군사령부의 판단에 따라 2개 제대로 분할 운영되었다. 분견대는 대구에 주둔하면서 한국 육군병원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 민간인을 진료하기도 했다.
1950년 11월 말 당시 영국군 제27여단은 의료지원부대도 없이 한·만 국경선을 향해 진격하는 상황이었다. 60야전병원은 12월 4일 6개월분의 의약품과 장비를 휴대하고 평양으로 이동, 정상적인 의료지원 활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에 따른 유엔군의 후퇴로 인해 병원 역시 하루 뒤인 12월 5일 대동강 철교 폭파 직전에 평양에서 후퇴해야 했다.
60야전병원 본대는 12월 14일 의정부에서 영국군 제27여단과 합류하고, 비로소 전선에서 의료지원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1950년 12월 31일 중공군이 제3차 공세를 시작하자 60야전병원은 의정부 북쪽 10㎞에 추진 배치되었다. 하지만 1951년 1월 4일 유엔군의 철수계획에 따라 영국군 제27여단이 서울에서 철수하게 되자 제60야전병원 역시 수원을 경유, 6일 장호원으로 철수했다.
60야전병원은 1951년 2월 지평리에 고립된 영국군 제23연대를 지원하는 제27여단 작전에 참여해 근접지원을 수행했으며 특히 1951년 3월 하순에는 공수작전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이때 유엔군사령부는 임진강의 도하지점을 포함한 공산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문산 지역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기로 하고 이 임무를 미 제187공수연대전투단에 부여했다.
60야전병원은 이 작전에 지원부대로 포함됐다. 6·25전쟁 참전 이전 전원이 공수낙하 훈련을 받았던 60야전병원은 군의관 5명 등 12명으로 외과반을 편성, 파견했으며 이들은 4,000여 명의 미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C-119 수송기를 타고 문산 지역에 공수낙하했다.
제60야전병원은 5월이 되면서 영국군 제28여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임진강 부근에서 의료지원을 했다. ‘머룬 천사(The Maroon Angels)’로 불리기도 한 제60야전병원은 1953년 8월까지 연인원 627명이 파견되었으며 한국 파견 중 외래수술 2,300여 건과 함께 입원환자 2만여 명을 치료했다.
정전협정 후에도 인도 포로송환관리단(Custodian Force)에 합류해 포로송환 업무를 지원하다가 귀국을 위해 1954년 2월 23일 인천항을 떠났다. 참전 기간 중 아쉽게도 전사 3명, 부상 23명의 피해를 입었다.
■ 참고 자료
『6·25 참전국 현황(의료지원 및 시설파견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
『6·25 25전쟁 의료지원국 참전사』, 통일안보전략연구소, 국가보훈처, 2021.
『6·25전쟁 60주년 UN 참전기념시설물 도감』, 국가보훈처
유엔군사령부(UNC) 홈페이지/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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