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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무기의 화력과 사거리를 강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총열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화약의 에너지를 더욱 강하게 오랫동안 탄환에 전달할 수 있는 이 방식은 화약이 크게 개선된 오늘날까지도 많은 화약 기반 무기의 길이를 유지하는 결정적 이유인데, 한편에서는 그 에너지를 포기하면서까지 극단적으로 길이를 줄인 총기 또한 특유의 의미를 남기며 살아남고 있다. 바로, 권총이다.
보조무기의 지위
무기의 화력을 키우기 위해 긴 총열을 유지하던 초기 머스킷총 시대부터도 짧은 총열에 대한 요구는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적용된 쪽은 기병용 총기였는데, 대열을 이루어 화망으로 사격하는 보병과 달리 기병은 기동력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길고 무겁지만 한 발 사격 이후에 긴 재장전이 필요한 머스킷총으로 지속적인 사격을 할 상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 발 쏘는 정도의 의미라면 오히려 휴대가 간편하고 걸리적거리지 않는 편이 훨씬 유용했고, 기병총은 보병총에 비해 훨씬 짧은 길이로 만들어졌다.
작고 짧은 화약무기가 갖는 높은 휴대성은 기병총의 시대를 지나 권총의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길고 무거운 소총에 비해 휴대가 훨씬 간편했고, 화약기술이 발전하면서 화력 또한 소총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근거리에서는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게 되었다.
소총보다는 화력과 저지력이 떨어지지만, 휴대가 쉽다는 특성은 많은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권총을 보조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을 만들어냈다. 두 자루의 소총을 휴대하는 것은 기동성 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권총 한 정을 허리춤에 추가하는 정도는 큰 부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대규모 전투가 아닌 암살, 대테러와 같은 특수작전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근접전이나 실내 같은 상황에서 소총의 긴 총열은 진입 시 걸리적거릴 수 있고 좁은 틈이나 엄폐물 사이에서 불편한 반면, 권총은 좁은 공간에서 좀 더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총에 비해 떨어지는 화력 문제는 근접전에서도 권총을 완전히 주력 무기를 대체할 수 있기는 어렵게 만든다. 이 때문에 많은 특수부대는 주무장으로 단축총열 기반의 소총이나 기관단총을 들고, 기능 고장이나 탄약 소진과 같은 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용도로 권총을 부무장으로 채용한다.
특수부대가 아닌 경우에도 권총을 주무장으로 채용하는 경우는 대체로 개인화기가 아닌 무기로 전투에 참여하는 보직들이다. 전차 승무원과 같은 경우가 대표적으로, 실제로 소총을 들고 싸우는 경우보다 원래 보직의 화력 발휘가 더 우선시되어야 하는 경우 장비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소총 대신 권총이 최소한의 기본무장으로 활용된다.
야전에서의 전면전보다 도시에서의 소규모 치안유지 활동에 특화된 경찰의 경우에는 권총의 의미가 좀 더 커진다. 살상보다는 무력화에 초점을 두고 범죄자들이 방탄복을 갖춰 입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권총은 야전보다 훨씬 더 유의미한 무기로 채택되는 편이다.
스타일리시한 활용
군용으로는 주로 부무장의 형태가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다 보니 군사 분야를 다루는 많은 게임에서 권총은 실제로 주무장 + 부무장이라는 시스템을 통한 두 번째 무기로 자주 등장한다. 주무기를 1, 2번 두 개로 활용하는 게임들에서도 3번째 보조무기는 언제나 권총의 자리다. ‘배틀그라운드’,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 온라인’ 등 상당수의 밀리터리 기반 액션 게임에서 권총은 필수는 아니지만 일단 장비하고 있으면 긴박한 상황에 요긴할 수 있는 부무장으로 등장한다.
부무장으로서 권총이 갖는 의미가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나는 게임은 분대 기반 턴제 전술 액션 게임인 ‘엑스컴’ 시리즈다. 보직마다 소총, 샷건, 기관총, 저격소총과 같은 다양한 주무기를 활용하는 분대원들은 모두 부무장으로 권총을 기본 장비하게 되는데, ‘엑스컴’ 시리즈는 이 권총이 갖는 부무장으로서의 의미를 매우 잘 드러내는 게임이다.
게임 내에서 주무장은 정해진 탄약수가 있고 탄을 다 소진하면 행동포인트를 사용해 별도의 재장전 액션을 취해야 하는데, 1턴에 주어지는 행동포인트가 2개뿐이라 이동, 사격에 써야 할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탄이 떨어진 상황에서 적의 사선에 노출될 경우, 이동 후 재장전이라는 행동을 취하면 반격이 불가능한데, 이럴 때 권총이 큰 의미를 발휘한다. 별도의 재장전 행동포인트 소모가 없어 즉시 사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신 주무장에 비해 화력이 약하다는 점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모든 상황에 100% 최적인 선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엑스컴’의 권총이 보여주는 포인트다. 빈약한 권총 화력으로도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재장전 대신 이번 턴 안에 적을 끝내고자 할 때 빛나는 권총은 부무장이 활용되는 상황이 어떤 때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무기로 의미 지어진다.
SF 판타지 기반의 슈팅 액션 게임 ‘오버워치’ 시리즈는 온갖 다양한 미래형 무기들이 판을 치는 게임이지만, 아주 전통적인 회전형 탄창 기반의 리볼버 권총을 주무기로 쓰는 캐릭터가 있다. ‘피스키퍼’라는 이름의 6연발 권총을 사용하는 캐서디가 그 주인공이다.
부무장으로 활용되는 다른 게임들에서의 권총과 달리 ‘오버워치’에서 캐서디의 피스키퍼는 주무장으로 등장한다. 서부극에 주로 등장하던 리볼버 권총과 서부의 총잡이라는 콘셉트를 살려낸 캐릭터로, 주무기가 권총인 만큼 캐릭터도 주로 근거리, 중거리에 특화된 형태로 디자인되었지만, 막상 게임 안에서 적으로 만나보면 정말 권총이 근거리 무기인가 싶을 정도로 원거리에서도 상당한 명중률을 보여주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물론 아군 캐서디는 이상하리만치 잘 못 맞히는 경우가 많다.
2020년 큰 화제를 몰고 왔으나 정작 출시 후 게임의 오류가 심해 지탄을 받았던 ‘사이버펑크 2077’에서도 권총은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한다. 게임에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조니 실버핸드는 자신의 상징 같은 무기로 권총을 자주 활용하는데, 해당 캐릭터의 모델로 등장하는 영화배우 키아누 리브스가 ‘존윅’ 시리즈에서 보여준 권총 액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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