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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이름의 브랜드가 '한글'을 이야기 하는 법

기사입력 2021. 10. 18   16:25 최종수정 2021. 10. 18   16:28

<101> 한글 덕분에
 
가히화장품 ‘한글날’ 편 광고
자음·모음 조합 브랜드 네이밍
누구나 익히기 쉬운 한글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기업 철학 표현

 


코리아테크 가히화장품의 광고 ‘한글날’ 편(2021).

 필자 제공

광고의 장점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는 데 있다. 같은 내용을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시 내보내는 뉴스란 없다. 같은 내용도 사건의 전개 양상에 따라 다음 뉴스에서는 추가 정보를 제공한다. 광고는 다르다. 한번 만든 광고는 카피를 바꾸지 않고 처음 그대로 반복한다. 짧게는 한 달, 보통은 6개월, 길게는 3년도 반복한다. 노출 빈도가 늘수록 브랜드 인지도나 회상도가 높아지는 원리를 따르는 것. 같은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이유는 광고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기억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다.

한글날이 지나가니 한글에 관련된 모든 뉴스가 썰물 빠지듯 사라졌다. 한글 관련 행사가 10월 9일에 집중된 탓에, 이때만 지나면 조용해진다. 당연하다. 다시 한 해가 지나 10월이 오면 또다시 한글이 집중 조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광고는 다르다. 한글날 이전부터 시작해서 끝난 다음에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계속 노출되는 광고가 있다. 광고가 한글문화연대에 참여해 운동가로서 활동하는 것 같다.

코리아테크 가히화장품의 광고 ‘한글날’ 편(2021)을 보자. 광고가 시작되면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소리가 들린다. 단아한 옷매무새가 고와 보이는 한 여성이 차분하게 마루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광고 모델은 서예가 이정화 씨다. 연적을 들어 방울방울 물을 떨어뜨리고 벼루에 먹을 간다. 여성은 다소곳이 붓을 들더니 한지에 또박또박 한글을 써 내려 간다. 유리창에도 붓으로 한글을 써 본다. 잠시 쉬는 동안에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그윽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다본다. 대청마루에 걸린 한지가 바람결에 한들거린다.

“그대의 자질은 아름답다/그런 사실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해도/내 뭐라 할 수 없지만/그대가 만약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노력한다면/무슨 일이든 해내지 못하겠느냐/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길.” 한지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두루마리 족자를 만들기 전에 대청마루에 걸어 두었다. 붓글씨가 바람에 마르고 있는 것 같다.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배우 윤여정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카피를 읽어 내려간다.

“누구나 쉽게 익히고 쉽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한글. 덕분에 우리의 문화도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배우며 누구나 쉽게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아(ㅏ)부터 이(ㅣ)까지. 가히. 오늘 한글을 다시 바라봅니다.” 윤여정 씨의 내레이션에 맞춰 한글 자모음이 등장하고, 기역과 히읗 부분과 아와 이 부분을 진하게 강조하니 ‘가히’가 된다. 마지막에 “바르는 뷰티 가히”라는 자막이 나오며 광고가 끝난다. ‘뷰티’라는 영어를 붓글씨로 쓰니 마치 방각본(坊刻本: 조선시대에 민간 출판업자가 영리를 위해 목판으로 간행한 책) 한글소설에 등장하는 글씨처럼 고풍스러운 느낌이 든다.

광고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일까? 한글 자음인 기역(ㄱ)부터 히읗(ㅎ)까지, 모음인 아(ㅏ)부터 이(ㅣ)까지 한 화면에 보여주고, 다시 기역과 히읗 부분과 아와 이 부분을 진하게 강조해 ‘가히’라는 브랜드 이름이 저절로 만들어지게 표현한 대목이다. 가히는 2020년 출시된 스킨케어 브랜드 이름이다. 가히는 처음부터 한글 자모음의 시작과 끝의 음운을 생각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가희’가 아니라, 명사에 잘 쓰지 않는 ‘히’를 썼다. 세종대왕께서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을 만들었듯이, 누구나 쉽게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가히의 기업 철학을 담았다.

은은한 풍경소리로 시작되는 광고는 시종일관 고요한 평화를 전달했다. 여느 화장품 광고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하지도 않다. 슬로건을 “바르는 뷰티”라고 하지 않고, “바르는 아름다움”이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디지털 융합 시대에 외래어 남용은 심각한 문제지만, 그렇다고 한글 전용만 강제하기도 어렵다. 광고효과 조사를 해서 7음절인 “바르는 아름다움”이 5음절인 “바르는 뷰티”보다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효과를 중시하는 광고업계의 관행상 쉽지 않을 듯하다.

말(언어)과 글(문자)은 그 쓰임에 차이가 있지만, 이 대목에서도 한글 카피만 써야 한다는 주장과 외래어 카피를 혼용해야 한다는 주장의 무게를 가늠하게 된다. 어차피 광고 카피는 사회 언어학의 맥락이 강하기 때문에 한글 전용을 주장하는 관점에만 무조건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어쨌든 방탄소년단의 ‘뷔’가 한글 가사 노래로 글로벌 팬들에게 호응을 얻어 세계에 한글을 알리는 한글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듯이, 가히 광고 역시 가(可)히 한글 전도사라 할 만하다.

K팝 열풍으로 인해 터키 2500명과 러시아 800명 등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대기자가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지원하는 세종학당에서 우리말을 배우겠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다. ‘치맥(chimaek)’과 ‘언니(unni)’ 같은 단어 26개가 영국의 옥스퍼드영어사전(OED)에 2021년 영어 표제어로 등재됐다. 우리말의 가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근거라 자랑스럽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글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학과 이름을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어문학과’로 바꾸는 추세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을 위해 그렇게 바꾼다. 우리말을 국어라 하지 않고 한국어라는 객관화된 표현으로 바꾸다니, 어느 나라 국어 교육인가? 우리 대학생들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에서 우리말을 배운다. 한국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하면 외국의 세종학당 등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 학생들의 국어 실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에서 정녕 그것만이 해법일까 싶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우리의 국어 교육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자 김병희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광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PR학회장, 한국광고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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