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학생군사교육단(ROTC)중앙회 박승섭(학군 21기·60) 헌혈분과위원장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봉사’, 그중에서도 ‘헌혈’이다. 박 위원장의 헌혈 횟수는 580회에 이른다. 1986년 7월부터 35년간, 많게는 1년에 20회 이상 헌혈을 해온 결과다. 그의 이름은 대한적십자사 명예의 전당 ‘헌혈 횟수 최다 12위’에 올라 있다. 박 위원장의 바람은 현역 장병들에게 ‘헌혈하는 바보(헌치·獻痴)’ 선배로 기억되는 것. 그는 “우리가 건강할 때 헌혈에 참여해 다른 이들의 생명을 구하면서 자신의 건강도 챙길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며 “헌혈이야말로 가장 순수하며, 고귀한 방식의 봉사다. 후배들이 적극 동참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한영 기자
헌혈 유공 국민포장 등 ‘선한 영향력’
경북대학교 통계학과 79학번인 박 위원장은 과 동기 두 명과 함께 ROTC 길을 택했다.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형수님이 ‘ROTC를 거쳐 장교로 생활하면 전역 후 취직이 잘 된다더라’면서 권한 게 시발점이었다.
박 위원장은 1983년 임관 후 육군보병학교 초등군사반을 수료하고, 육군53보병사단 해안경계부대 소대장으로 군 생활의 첫발을 뗐다. 이듬해 1월 있었던 ‘오발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소대 야간사격 훈련 중 갓 전입한 신병이 오발 사격을 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 박 위원장의 삶엔 감사함이 깃들었다.
당시 경험은 박 위원장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1년을 근무한 후 이듬해 6월부터 1987년 6월까지는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수부에서 수학 교관을 했다. 육사 근무 중이던 1986년 7월은 박 위원장이 ‘헌혈 인생’을 시작한 때다. 서울 청량리역 앞을 지나는 데 우연히 발견한 헌혈 버스에 자신도 모르게 올랐다. 그날의 헌혈은 12년 전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1974년 8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엑스플로(Explo) 74’ 선교대회에 참여했을 때 수많은 기독교인이 헌혈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첫 헌혈을 하며 12년 전 기억이 눈앞을 스쳤습니다.”
정기적인 헌혈은 1991년부터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친구 조카를 돕기 위해서였다. 이후 관련 기관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헌혈증을 기부하고, 헌혈 수필 공모전에 참여하는 등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30년을 근무한 KB국민은행에서 2002년 ‘최다 헌혈자’로 선정됐다. 2005년에는 헌혈 유공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17년에는 국민 포장을 받았다.
헌혈분과위원장 맡아 사랑 나눔 앞장
박 위원장은 2018년 ROTC중앙회 ‘자랑스러운 ROTCian’ 상을 받았고, 이듬해부터 헌혈분과위원장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임 진철훈 회장님 재임 당시 중앙회 회원 중 헌혈을 가장 많이 해서 상을 받았습니다. 진 회장님이 ‘보다 체계적인 봉사를 해보자’고 제안하셔서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ROTC중앙회는 헌혈분과위원회, 중앙회 봉사단과 헌혈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생명 나눔을 실천하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새 생명의 희망을 전하고자 매년 ‘ROTC 헌혈 봉사의 날’도 개최한다.
올해 4월 22일에는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ROTC중앙회관과 전국 헌혈의 집, 헌혈 카페에서 헌혈 봉사의 날 행사를 열었다. 매년 모은 헌혈증은 6월 1일 ‘ROTC의 날’ 행사에서 대한적십자사·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기증하고 있다.
“ROTC 출신 동문 중 100회 이상 헌혈자, 대학·기수·지역별 회장단이 참여하는 모바일 메신저 대화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동문이나 가족 중 위급한 사람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헌혈하고, 도움을 드리는 일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집짓기 등 봉사의 삶 이어가
박 위원장은 헌혈 외에도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해왔다. 전역 4일 후 주택은행(현 KB국민은행)에 입행한 박 위원장은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은행 업무 외에 해외 봉사단 활동을 하며 나중에는 단장까지 맡았다. 단원들과 함께 조립한 자전거 1500대를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기증하기도 했다.
“단장 자격으로 캄보디아를 찾았을 때 초등학교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만큼 환경이 열악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전거를 받은 어린이들이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박 위원장은 봉사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직장 봉사단뿐만 아니라 여러 단체를 통한 사랑의 집짓기, 호스피스 병원 봉사도 펼치고 있다. 은행을 퇴직한 지난해부터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보호센터에서 치매 노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버지는 작고하셨지만, 올해 100세이신 어머니는 매일 7남매의 건강을 기도하십니다. 봉사라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보살피며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습니다.”
“후배 장병들 헌혈의 기쁨 함께 누리길…”
‘봉사의 달인’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박 위원장에게 ‘군인에게 봉사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ROTC 헌혈 봉사의 날 행사에서 만났던 현역 군인들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부대원들과 함께 모은 헌혈증을 보내온 지휘관이 ‘헌혈을 하며 장병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집단생활의 어려움을 나눌 수 있게 됐다’며 도리어 감사 인사를 전해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군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봉사가 헌혈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는 경험은 전역 후에도 큰 자산으로 남을 것입니다. 보다 많은 후배 장병들이 그 기쁨을 함께 누렸으면 합니다.”
박 위원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여된 임무 완수에 매진하는 후배 장병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예전보다는 군 생활이 쉬워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려울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볼 때 군 생활은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기에 어려운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여유를 찾으면 보다 성공적인 군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의 군대, 강한 군대’ 일원으로서 건강하고 행복한 군 생활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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