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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철군 이후 인도-태평양 전략 향방 최대 관심

기사입력 2021. 09. 10   16:08 최종수정 2021. 09. 10   16:28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이후 20년
 
9·11 사태로 무장테러단체 소탕 선포
아프간 공격 새 정부 세웠지만 불안 지속
뒤이어 이라크전…명분 잃어 여론 악화
 
“어제의 위협 아닌 직면한 위협에 집중”
출구 없던 대테러전 끝내고 국익 전환


지난달 1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미국은 어제의 위협이 아니라 2021년에 직면한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그리고 같은 달 31일 “미국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긴 전쟁이었던 20년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종식했다”라고 선언했다. 이로써 2001년 9·11 테러 이후 탈출구 없이 지속했던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 질 여사,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정면 왼쪽부터)이 지난달 29일 델라웨어주 도버 미 공군기지에서 아프가니스탄 테러 전사자들의 운구를 지켜보며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이날 기지에는 같은 달 26일 아프간 카불공항 자살폭탄테러로 숨진 13명의 미군 시신이 도착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이라크전으로

2001년 9월 11일 무장단체 알카에다의 민항기 납치와 세계무역센터 충돌로 미국 내에서 연쇄적인 테러가 발생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테러 직후 “공격은 미국 영토에서 발생했지만, 이것은 문명 세계의 심장과 영혼에 대한 공격이었다”고 언급했고, 9월 20일 의회 연설을 통해 처음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간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 범죄와의 전쟁(War on Crime) 등과 같은 국내 캠페인 용어에 ‘전쟁’을 사용해 왔는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실제 전투를 수반할 수 있는 정책목표를 21세기 들어 처음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알카에다를 포함하는 모든 무장테러단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시사하면서,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로 시작됐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 세계의 모든 테러단체를 찾아내 물리칠 때까지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에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탈레반 정부는 파키스탄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면서 알카에다의 테러집단 양성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위 ‘실패국가(failed state)’에 가까웠다. 탈레반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그해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11월 13일 수도 카불을 빼앗긴 탈레반 정권은 붕괴했다. 이후 선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수립됐지만, 알카에다 세력이 잔존하고, 탈레반도 게릴라 집단으로 변화하면서 불안정은 지속됐다.

2003년 3월 미국은 두 번째 테러와의 전쟁을 하게 된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WMD)를 은닉하고 테러단체를 지원한다는 것이 그 배경에 있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출석해서 녹음테이프·사진 등을 제시하면서 이라크가 WMD를 계속해서 생산하면서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단체와 협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라크에 보유하고 있는 모든 WMD를 포기하고 유엔의 사찰을 받도록 강압했다. 그러한 강압이 실패하자 미국은 미군을 포함한 35개국의 다국적군을 이끌고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으로 이라크전을 시작했다. 전쟁 개시 두 달 만에 전쟁은 종료됐고, 사담 후세인은 도피 끝에 12월 13일 ‘붉은 새벽 작전(Operation Red Dawn)’으로 체포됐다. 이후 이라크에도 선거를 통한 신정부가 들어섰지만, 테러를 통한 내전이 끊이지 않는 상황으로 남았다.

부시 행정부는 위협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preemptive war)으로서 이라크전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전 개시 후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숨겨졌다고 알려진 WMD를 찾는 데 실패했고, 전쟁 개시에 대한 국제적인 반미 여론의 증가로 미국의 전쟁 명분은 손상됐다. 미국이 예방전쟁을 위해 이라크의 WMD에 관한 정보 판단까지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후 미국은 이라크 내 내전 격화 등으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2007년 초 정책 방향을 바꿔 미군을 3만 명 추가 파병하고 이라크군의 자국민 보호가 가능하도록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시작했다.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이라크 내 폭력은 일시적으로 감소했고, 2008년 12월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정부와 2011년 12월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한다는 안보협정을 맺었다.

이를 계승한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8월 “미국이 다시 이라크에 들어가서 전투 작전을 재개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이라크 철군을 공식화했고, 10월 이라크 주둔 미군 철수 시한을 연말로 발표했다. 2011년 12월 14일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의 미래는 이라크 사람들의 손에 달렸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전쟁은 끝났다”라고 이라크전 종식을 선언했다.

2003년 3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약 9년 동안 수행된 이라크전은 13만 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와 4400명 이상의 미군 사망자를 냈고, 27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떠돌게 했다. 미국은 2조1900억 달러의 전쟁 비용을 치렀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불가피한 손실이었는지, 아니면 희생할 가치가 없는 전쟁이었는지 평가는 제각각이었다.

지난 2일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주에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대항하는 저항군 대원들이 소총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라크전 종식에서 아프간전 종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8월 TV 연설을 통해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을 저지하겠다”고 언급하면서 대테러전을 위한 미군 추가 파병 등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재개입을 시사했다. 탈레반은 게릴라전을 지속하면서 세력을 재건해 왔고,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사이 평화협정은 추진되지 못했다. 2018년 12월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탈레반과 협의를 시작했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2020년 2월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 정부가 배제된 채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협정 제목이 ‘미국이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탈레반이라는 아프간 이슬람 에미리트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평화정착 합의’였던 만큼 미국과 탈레반 간 평화협정은 아프가니스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미군을 비롯한 아프가니스탄 주둔 외국군 철수 기한에 합의한 출구전략으로서 의미를 두었다.

2021년 4월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 체결된 미국-탈레반 간 평화협정을 수용하면서 9월 11일까지 미군의 완전 철군을 발표했고, 7월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아프간 미군의 임무는 8월 31일로 종료된다는 선언이 이어졌다. 문제는 탈레반의 급격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대한 장악이었다. 8월 16일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간 정부로부터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받겠다고 선언했다. 아프가니스탄 내 외국인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대규모 탈출이 이어졌고, 카불공항에 ISIS-K의 자폭테러가 발생하는 등 혼란이 점증했다. 그러나 미국은 철수 기한을 변경하지 않았고, 8월 30일을 기해 민간인 후송 작전을 종료하고 완전히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했다.

전쟁은 시작과 동시에 출구전략이 요구된다. 그러나 미국은 어떻게 전쟁을 끝낼 것인지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이번 결정을 바탕으로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핵심적인 국가이익을 식별하고, 그에 맞춰 미군의 글로벌 태세를 전환하고자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이 향후 중국과 경쟁적으로 공존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 재검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


필자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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