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최주영 교수실에서] ‘호모 루덴스’처럼 생각하기

입력 2021. 09. 06   16:09
업데이트 2021. 09. 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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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영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학 교수·소령
최주영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학 교수·소령

최근 은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노는 방법도 젊었을 때 배워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여가를 충분히 즐길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스치듯 지나간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놀아본 적이 있는지?’, ‘노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복잡한 감정을 다스리는 여정에서 만난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는 책은 전공 서적에만 파묻혀 살던 나를 숨 쉬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새로운 관점을 주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학자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을 찾아 인간을 표현하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인간의 사유하는 능력을 표현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현명한 인간)’가 그 대표적인 예다. 요한 하위징아는 산업혁명 이후 노동과 생산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보던 19세기 ‘호모 파베르(Homo Faber, 만드는 인간)’ 인간관을 비판하며, 미래에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인간관으로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를 제시했다.

20세기까지 이어진 노동 중심의 인간관은 일하지 않고 ‘노는 것’을 매우 가볍고 소비적인 행동으로 여기며 놀이문화를 격하시켰다. 하지만 요한 하위징아가 말하는 ‘호모 루덴스’의 ‘놀이’는 매우 진지하며, 창의적 산물을 낳는 생산적 행위다. ‘놀이’는 자발적이며, 고차원적인 욕구 만족(예를 들면 자아실현)과 놀이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

진정한 놀이는 모두가 인정하는 규칙이 존재하며, 물질적인 보상이 아닌 추상적인 명예와 존경을 위해 즐겁고 진지하게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가 몇 가지 제한사항(강제성 등)에 부딪히면 너무나도 쉽게 ‘노동’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놀면서 학습하던 아이들도 학교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 대학입시라는 목적이 생기는 순간, 공부는 재미있는 놀이에서 노동으로 바뀌고 만다. 이런 관점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어려운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너무 비관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관점을 새롭게 바꿔보자. ‘호모 루덴스’처럼 생각하면 ‘노동’은 언제나 즐거운 ‘놀이’로 변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관점의 변화를 ‘호모 루덴스처럼 생각하기’라고 말하고 싶다.

되돌아보면 나는 쉬지 않고 공부했다. 혹자는 나에게 묻는다. 공부만 하는 것이 지치고 지루하지 않냐고. 주변에서 바라본 쉬지 않는 공부 여정은 표면적으로 지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알아가는 즐거움에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열정을 쏟아냈다. 나에게 공부는 놀이였고 나는 열정적인 놀이꾼이었던 것이다. ‘호모 루덴스’처럼 생각하니 내가 걸어온 배움의 길과 앞으로 걸어갈 교육자로서의 길이 너무나도 즐겁고 기대된다.

교단에 선 나는 배움의 열정이 가득한 생도들을 바라본다. 그들 또한 학업을 ‘호모 루덴스’처럼 즐길 수 있도록 오늘도 나는 훌륭한 교육자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호모 루덴스’처럼 생각하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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