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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해양질서 위협 말라” 대중정책 기조 재확인

입력 2021. 07. 25   13:26
업데이트 2021. 07. 2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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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중재판결 5주년과 미국의 ‘규칙 기반 해양질서’ 추진


블링컨 국무장관, 판결 5주년 성명 발표
“中, 남중국해 관련 국제법 준수” 강조
필리핀 공격시 상호방위 발동 경고도
바이든 정부, 정권교체에도 기조 유지
아세안·인도-태평양 질서 주도 의지

고무보트에 탄 필리핀 해안경비대원들이 지난 4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휫선 암초 부근에 정박 중인 중국 선박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 당시 필리핀은 이들 선박에 중국 민병대가 승선한 것으로 추정하며 즉각 철수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고무보트에 탄 필리핀 해안경비대원들이 지난 4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휫선 암초 부근에 정박 중인 중국 선박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 당시 필리핀은 이들 선박에 중국 민병대가 승선한 것으로 추정하며 즉각 철수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필리핀 마카티시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국제상설재판소(PCA)의 남중국해 관련 판결 5주년을 기념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필리핀 마카티시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국제상설재판소(PCA)의 남중국해 관련 판결 5주년을 기념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필리핀의 중국 영사관 앞에서 활동가들이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 Islands·중국명 난사군도)는 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6개국이 해양영유권을 주장하는 대립의 공간이면서, 세계 경제 질서의 주요한 해상교통로이기도 하다. 또 미국이 항행의자유작전(FONOP) 실시를 통해 해양영유권을 둘러싼 중국의 주장을 견제하는 경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6년 7월 1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필리핀과 중국 간 남중국해 사건의 판결이 내려졌지만, 현재에도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분쟁은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 3월 필리핀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해당하는 스프래틀리 군도의 휫선(Whitsun) 암초 해역에 중국 국적 선박이 200척 이상이 모여 정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필리핀 해상경비대는 중국 선박이 조업 활동의 흔적도 없고, 어민들 또한 보이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 ‘해상민병대(maritime militia)’일 수 있다는 의심을 높였다. 필리핀은 중국에 즉각적인 철수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거친 바다를 피해 정박한 것이라고 대응할 뿐이었다. 이후에도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근처에서 정체가 불분명한 중국 선박이 자주 발견되면서 중국-필리핀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과 중재판결
냉전 시기부터 남중국해 지역은 중국과 아세안(ASEAN) 국가 간 영유권·관할권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해양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기도 하면서 해상교통로의 주요 거점 항로인 말라카, 순다, 롬복 해협의 관련 구역이기도 하다. 게다가 아세안을 포함 한국·일본·중국 등 대부분의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해상 수송의 90% 이상을 이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남중국해 지역에서 해상영토와 EEZ 권리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공세적인 행보를 보였다는 데 있다. 중국은 2009년 처음으로 유엔의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서 남중국해에 설치한 9개 해양구조물을 잇는 ‘9단선(nine-dash line)’을 공식 등록했다. 남중국해 분쟁이 중요한 안보 이슈로 부각한 계기였다. 또 2012년 남중국해의 세 군도(스프래틀리·파라셀·매클스필드)에 대한 행정적 권리를 강화하고자 산사(三沙)시를 설립하기도 했다. 중국이 자국의 관할권을 주장한 ‘9단선’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필리핀·베트남·말레이시아·브루나이가 주장하는 EEZ와 중첩됐을 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 ‘9단선’ 내 지역은 섬이 거의 없어 분쟁당사자가 도서·지형지물을 통한 EEZ와 대륙붕 확보가 불가능한 지역이기도 했다.

그러한 와중에 2012년 중국이 필리핀과 대치를 벌이면서 필리핀의 EEZ 내에 있는 스카보러 암초(Scarborough Shoal)를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점거 후 중국은 인근 수역에서 조업 중이던 필리핀 어선을 나포했고 이에 분쟁이 격화됐다. 게다가 필리핀은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주장과 함께 인공섬 건설로 인한 영향력 강화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됐다. 결국 2013년 1월 22일 필리핀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중국을 상대로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중국은 중재재판을 거부하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재판 참여뿐만 아니라 재판 결과도 이행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중재재판소는 궐석재판을 인정하는 부속서 내용에 따라 중국의 재판소 불참과 관계없이 유럽 국가 4인과 아프리카 국가 1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중재재판을 진행했다. 2015년 10월 29일 중재재판소는 재판관할권 결정을 발표했고, 이어 중국 외교부는 그러한 결정이 중국에 구속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2016년 7월 12일 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 중재재판의 본안을 판결하고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확정했다. 첫째, 9단선을 포함한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가 효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둘째, 중국이 점유하거나 인공섬을 건설하는 해양 지형이 해양법상 섬으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해양법상 섬은 12해리의 영해, 200해리의 EEZ, 대륙붕을 가질 수 있는 반면 암석은 12해리의 영해만 가질 수 있고 간조노출지는 영해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중-필 간 어업갈등을 빚었던 스카보러 암초는 ‘섬’이 아닌 ‘암석’으로 12해리 바깥의 해역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 행사는 근거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셋째, 중국의 대규모 간척, 인공섬 등의 건설이 주변 해양생태계에 심각하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야기했으며, 스카보러 암초 주변 수역에서의 필리핀의 전통적인 어업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중재재판의 결과는 중국이 남중국해에 자의적으로 그은 U자 형태의 ‘9단선’에 대한 관할권 및 ‘9단선’ 내의 암초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남중국해 해상권 판결 준수” 강조

2021년 7월 12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중재 판결 5주년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국제사회가 해양법에 관한 유엔 협약(UNCLOS)에 반영된 해양에서의 모든 활동에 대한 법적 틀을 설정하는 규칙 기반의 해양질서에 오랫동안 혜택을 받아왔다”고 언급하면서 국제법 체계는 해양에서 국가의 행동 및 협력의 기초, 그리고 글로벌 무역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중국해는 규칙에 기반한 해양질서가 가장 크게 위협을 받는 지역이고, 그러한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 중국이라고 지적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5년 전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의한 남중국해 문제 판결이 준수돼야 하며, 2020년 7월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성명과 동일한 맥락에서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상에 대한 관할권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결정을 재차 강조했다. 블링컨 국무장관의 이와 같은 발언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중정책이 정권교체와는 무관하게 연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군대·선박·항공기에 대한 무력 공격이 발생하면 이는 미-필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미국이 관여할 것임을 확인하면서, 미국의 정책 표명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미국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관여가 미-필 방위조약 상의 문제를 넘어 미국의 대(對) 아세안 관여, 나아가 인도-태평양이라는 핵심적인 지정학적 공간에서 규칙 기반 해양질서를 주도하고자 하는 미국의 의지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동중국해부터 대만해협, 그리고 남중국해에 이르는 해양공간을 주도하는 질서 만들기에 미국이 어떻게 행동하고 관여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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