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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요 종교와 삶] 외양간을 고치는 일

입력 2021. 07. 06   15:14
업데이트 2021. 07. 06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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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고(故) 박완서님의 칼럼 글귀를 되새겨 봅니다.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조운요 대위·목사 공군20전비 군종실장
조운요 대위·목사 공군20전비 군종실장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보통은 “때늦은 뉘우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어감으로 쓰이지만, 해마다 6월이 되면 재해석되는 중의적인 구절이기도 합니다. 1995년 6월 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의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사회 각처에서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해 6월은 그 목소리가 무색하고 무의미했습니다. 밝은 햇살 아래서 누더기에 덮여 감춰져 있던 외양간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지난달 9일 낮 광주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 붕괴된 건물이 일상을 달리던 시내버스를 덮쳤고, 같은 달 17일 아침 이천의 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마는 일상을 두고 달려온 소방관을 건물과 함께 집어삼켰습니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또 일어났고, 잃지 않아야 할 생명을 또 잃고 말았습니다.

근래에 비슷한 사고들이 있었던 터라 더욱 참담하기만 합니다. 이번 화재 사고는 불과 1년 전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이유로 발생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냈던 화재 사고와 똑 닮아있습니다. 오죽하면 쌍둥이 사고라고 불릴까요? 작년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딸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순간순간마다 아버지가 생각난다”고 울먹이며 말합니다. 누군가에게는 한순간도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자리가 한 해가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방치된 것입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유명한 통계학적 규칙이 있습니다. 흔히 ‘1:29:300의 법칙’이라고 불리는데, 한 건의 큰 사고가 있기 전에는 동일한 이유로 발생하는 29건의 작은 사고와 300번의 잠재적 징후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법칙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는 반드시 전조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이 멸망해 포로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결과를 신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이 땅의 백성은 폭력을 휘두르고 강탈을 일삼는다. 그들은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을 압제하며 나그네를 부당하게 학대했다. 그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지키려고 성벽을 쌓고, 무너진 성벽의 틈에 서서 이 땅을 멸망시키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는가 찾아보았으나, 나는 찾지 못하였다(새 번역, 에스겔서 22장 29~30절).” 나라가 망하는 거대한 사고 이전에 작고 힘없는 이들이 당한 수많은 전조가 있었지만, 그중 단 하나라도 막아준 사람이 없었다는 지적입니다.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거대한 사고를 직접 막아내는 일이 아닙니다. 한 번의 징후를 발견하고, 한 건의 사고를 예방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당하는 아픔을 공감하고,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외양간을 고치는 일은 국민과 전우의 생명을 지켜야 할 군인의 본분이기도 한 것입니다.

소설가 고(故) 박완서님의 칼럼 글귀를 되새겨 봅니다.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랴?’에 동의해선 안 된다. 그건 나쁜 속담이다.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더군다나 우리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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