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미안하고 감사… 나에게 제출하는 반성문입니다”
감정은 0.3초 감동은 하늘까지
미안해보다 고마워.
고마워보다 사랑해.
사랑해보다 널 사랑해.
널 사랑해보다 너만을 사랑해.
너만을 사랑해보다 나부터가 아니라 너부터.
<에세이 중 일부>
“까까머리 중학생 때 그 분 첫 시집이 나왔는데요, 사춘기였던 저한테는 마치 영화나 만화처럼 다가왔어요. 어려운 시나 장편소설로는 해보지도 않은 사랑을 상상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그 책에 실린 시들은 그 감정을 유려하게 그려서 딱 보여주는 게 정말 좋았어요. 작가님께 그 소년의 감사 인사를 전해주세요.”
원태연 시인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기자의 스케줄을 알고 후배가 보내온 카톡이다. 이 후배가 아니더라도 ‘너는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나는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로 대표되는 원태연의 시는 199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친 남녀 모두에게 첫사랑의 기억처럼 아련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많은 시간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감사
“독자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해요. 제가 시를 안 쓴지 이렇게 오래 됐는지도 몰랐고 다시 시를 쓸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분이 저와 저의 시를 기억하고 반가워해주시더라구요.”
그동안 작사가로 영화감독으로 회사원으로 살아온 작가는 지난해 말 이전에 발표한 시 70편과 새로 쓴 시 30편을 엮은 필사시집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출간하며 무려 18년 만에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복귀했고 팬들은 ‘그냥 봐. 원태연이잖아’라는 리뷰를 남기며 열렬히 환영했다.
그에 대한 감사를 보내고 싶었던 걸까? 몇 달 만에 『고맙습니다, 그래서 나도 고마운 사람이고 싶습니다』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책 머리말에도 썼지만 출판사에서 3년 전 노트북을 선물해주셨어요. 그런데 그걸로 시를 써서 시집을 먼저 내게 된 거죠. 사장님을 만나 고백 겸 사과를 하고 나에게 제출하는 나의 하드코어 반성문인 이 책을 썼습니다.”
인터뷰 내내 원 시인은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대상이 자신이든 가족이든 독자든 선생님이든(학창시절 정말 좋아한 선생님에게 실수로 상처를 준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그 마음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패배자된 것 같았지만 부모님 덕에 지금의 나 있어
에세이집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순간들이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로 담겨있는데 그중에 가장 의외였던 건 ‘ADHD’ 판정을 받았고 난독증이 있어 첫 시집을 내기 전까지 읽은 책이 4권 뿐이었다는 것. 떨어지기가 더 힘들다는 연합고사(고입자격시험)를 두 번이나 실패했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인생 패배자가 된 것 같았죠. 그런데 부모님은 등짝을 툭 때리며 ‘사내자식이 뭘 그깟 일로 기운이 빠져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부모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모든 소리가 다 들려서 대중교통을 못 타기도 하고 ADHD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지만 한번 빠지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요. 평소 산만한 모습만 보던 사람들이 제가 사격선수 출신(경희대 체육교육과)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지요.”
첫 시집 내고 바로 입대…군에서 많은 경험
사격을 잘했음에도 원 시인의 군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첫 시집을 내고 바로 입대했기 때문에 군인 신분으로 엄청난 인기를 감당해야 했고 부대로 찾아오는 많은 기자들 그리고 선임들이 일과처럼 시 제목을 매일 물어볼 때 마다 큰 소리로 외쳤다. 자대에서는 그의 이력만 살펴보고 행정병이 아닌 수송병과로 배치하고 체육특기생이 왜 그렇게 축구를 못하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군 생활이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 많이 쓰고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병 여러분 모두 파이팅하시고 절대 아프지 마세요.”
원태연 시인은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시를 쓰고 있다. 11월에 신작을 엮은 시집이 나올 예정이고 내년에 또 한 권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지숙 기자/사진 제공=출판사 자음과 모음
박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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