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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 확보·불가결성 강화 포괄하는 ‘전략서’ 발간

입력 2021. 06. 25   16:45
업데이트 2021. 06. 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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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경제안보를 추진하는가

미·중 경쟁 장기화 속 정책 대안 골몰
지난해 4월 국가안보국에 경제팀 신설
외국 자본 겨냥 토지 이용 규제법 통과
내각부엔 경제안보 조사연구기관 설치
기술 유출 막고 첨단 군사기술 연구


최근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경제안보(economic security)’ 만큼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없다. 경제적 수단을 활용해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지경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제안보는 일본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EU 등 주요국 대외정책의 핵심적인 과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미국은 첨단기술산업에 기반한 기술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안보에 경제문제를 연계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의 국방 관련 연구를 검토하기 위해 2018년 3월 의회에 설치된 인공지능 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지난 3월 약 7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중국이 미국과의 AI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술력과 자원을 대대적으로 동원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지난 8일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배터리, 핵심광물, 의약품 등 4대 핵심품목의 공급망을 검토한 보고서를 발간한 배경에도 ‘다른 수단에 의한(by other means)’ 중국과의 전략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주시하면서 일본은 2020년 4월 대외통상, 첨단기술, 사이버안보, 보건안보 등을 포괄하는 경제안보를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국가안보국(NSC)에 경제팀(經濟班)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 전략에 집중해 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도쿄를 포함한 9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 발효 중인 코로나19 긴급사태 해제를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경제안보 전략에 집중해 대외정책의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사진은 지난 17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도쿄를 포함한 9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 발효 중인 코로나19 긴급사태 해제를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의 경제안보 동향
AI 등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하는 흐름 속에서 일본은 무역, 기술, 안보를 통합적 관점에서 접근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게다가 중국이 첨단기술 발전을 접목한 군 현대화 추진을 위한 군민융합정책(Military-Civil Fusion)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일본은 미래국가전략의 차원에서 경제안보를 다룰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반영하듯 관련 부처에 차례로 경제안보를 다루는 조직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경제산업성 내에 ‘경제안보실’을 설치했고, 10월 외무성 내에 ‘신안보과제정책실’을 설치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국에 경제안보 담당 부서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2020년 4월 경제, 외교, 산업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관료 20여 명으로 구성된 경제팀을 설치했다. 11월 방위성은 군용 기술 등을 다루는 ‘경제안보정보기획관’을 차년도에 설치할 예정임을 밝혔다. 이렇게 일본은 경제, 외교, 안보, 방위 분야에서 각각 경제안보를 다루는 조직을 설치했다.

그리고 12월 여당인 자민당 내 정무조사회는 ‘경제안보전략 책정을 위해’라는 정책제언을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게 제출하고 조속히 일본 나름의 경제안보전략을 구체화하도록 주문했다. 국가안보전략으로서 경제안보전략은 첫째,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 통신, 식량, 의료, 물류 등 전략기반산업에 집중해서 산업별 취약성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전략적 불가결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불가결’이라는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사회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민간 영역의 노력을 국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포괄하는 『경제안보전략서』를 신속하게 발간하는 한편, 부처별 관련 제도를 통합하는 ‘경제안보일괄추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경제안보 전반에 관한 정책결정기구를 총리실에 설치해 민간기술을 군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도쿄 신바시역 인근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30일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시계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경제안보 전반에 관한 정책결정기구를 총리실에 설치해 민간기술을 군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3일 도쿄 신바시역 인근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30일 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리는 카운트다운 시계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외국자본 유입을 제한하는 안보토지법
경제안보전략을 구체화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로 해양개발, 금융 인프라/정보통신 인프라 정비, 우주개발, 공급망 다원화, 과학기술혁신, 대규모 감염병 대책 등이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안보’와 ‘토지 규제’를 연계하는 토지거래에 관한 경제안보전략이다. 일본 국회는 6월 16일 외국자본이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중요한 지역의 토지를 구입, 부적절한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 토지 이용 규제법’을 통과시켰다. 외국인 투자 등 외국자본 규제 방안을 경제안보 이슈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보토지법(安保土地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제정치경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의 안보토지법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서비스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에 예외규정을 적용한 사례다. WTO 가입국은 국제규범상 외국기업과 국내기업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 ‘내국민 대우’의 의무를 진다. 그러나 공공질서 유지, 생명보호 그리고 가입국의 안보상 중대한 이익 보호를 위해서라면 내국민대우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다만 대다수의 WTO 가입국과 다르게 미국은 외국자본의 투자에 관한 유보조항을 두면서 외국자본의 토지 취득 등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해왔다. 중국과의 무역 대립이 두드러졌던 2018년 미 의회는 외국인 투자 규제 현대화법(FIRRMA)을 초당적으로 지지했고, 이후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이 법안에 따라 국가안보 개념을 포괄적으로 적용하여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미국 기업에 대한 외국의 통제를 강화하는 투자뿐만 아니라 핵심기술, 민감한 개인정보, 공항/항구/군 시설 등 부동산 거래 관련 미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를 광범위하게 검열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와 유사하게 일본 내 군사적 중요시설이나 전략적 요충지,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핵심기반시설 인근의 토지 취득에 엄격한 제한을 두자는 논리 아래 제정된 것이 ‘중요 토지 이용 규제법’인 것이다. 현재까지 외국자본이 일본 내 자위대 부대 주변 토지를 구입해서 국가안보상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 자본에 의해 홋카이도의 치토세 공군기지 주변 산림이 매수되거나, 한국 자본에 의해 대마도의 해군기지 주변 토지가 매수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에 대한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은 중요 토지 지역을 ‘주시 구역(注視區域)’과 ‘특별 주시 구역(特別注視區域)’으로 구분해서 안보상 중요한 지역의 토지에 대한 감시 및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자위대 부대나 원자력 발전소 주변 1km 내외 그리고 국경에 접해 있는 도서 지역을 주시 구역으로, 자위대 사령부 등 전략적으로 중요한 시설 주변은 특별 주시 구역으로 설정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내각부(內閣府·국무총리실에 해당) 내 ‘경제안보 조사연구기관’을 설치해서 경제안보 전반에 관한 정책 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방지하며, 일본의 민간기술을 군사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이 중심이 되어 첨단기술 분야의 공급망을 재구축하려는 동맹국 간 협력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미·일 간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 그리고 기술동맹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다.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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