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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백전불굴 투지의 현장 불암산서 기억과 추모 이어간다

이원준 기사입력 2021. 06. 22   16:55 최종수정 2021. 06. 22   17:28

육군사관학교,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안내간판 제막식 


은거 동굴에 있던 ‘노후 간판’ 교체
안전·접근성 좋은 통로 구축 계획도
애국심 기념 다양한 사업 추진

김정수(중장·왼쪽 넷째) 육군사관학교장, 이홍기(오른쪽 셋째) 육사총동창회장 등 참석자들이 22일 경기도 남양주 불암산 중턱에 있는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제2동굴 앞에서 열린 안내 간판 제막식에서 간판을 덮은 천을 걷고 있다.

71년 전 오늘,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선 1·2기 생도들의 전투 훈련이 한창이었다. 생도 1기는 임관을 20여 일 앞두고 있었고, 생도 2기는 입교한 지 20여 일을 넘어선 시점이었다. 교정 분위기는 이틀 뒤인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 남침으로 180도 뒤바뀌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생도 1기 262명과 2기 277명은 최전방에 배치, 적군에 맞서 싸우다 정황이 불리해지자 한강 이남으로 철수했다. 생도 중 13명은 이동하는 대신 학교와 인접한 불암산(현재의 서울 상계동과 남양주 별내면 경계에 있는 산) 일대에 은거해 3개월 동안 유격작전을 펼쳤다. 이들이 바로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이다. 육군사관학교는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애국심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6·25전쟁 발발 71주년을 앞두고 국방일보는 유격대가 은거지로 활용했던 동굴 등 불암산 현장을 찾았다. 글=이원준/사진=한재호 기자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1950년 6월 말부터 9월 말까지 석 달간 활동하며 서울 인근에서 적의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 활동을 했다. 유격대는 김동원 생도를 비롯한 1기생 10명과 성명 미상의 2기생 3명, 그리고 7사단 9연대 소속 장병 7명 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됐다.

처음 유격 활동을 제안한 김동원 생도가 유격대장을 맡았고, 암호는 ‘호랑이’로 결정됐다. 불암산 인근 주민들은 암호명을 바탕으로 이들을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라 불렀다.

22일 등산로를 30여 분 올라 도착한 제2동굴 현장에선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발자취가 느껴졌다. 거대한 바위 밑으로 형성된 동굴은 성인 10명 이상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 보였다. 이 동굴은 지난 1996년 처음 발견됐다. 유격대는 불암산 일대에서 이와 같은 동굴 은거지를 총 3곳이나 활용했다. 불암산은 종격실 능선이 발달하고, 인근에 수락산과 도봉산이 연결된 구조라 기습에 적합했다.

생도들은 학교와 맞닿은 불암산의 지형지물에 익숙했던 터라 효율적으로 유격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유격대는 적군의 눈을 피해 은거 동굴과 인접한 산 등을 오가며 총 4회의 공격작전을 감행했다.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 제2동굴 앞에서 육군사관학교 심호섭(소령·맨 오른쪽) 군사사학과장이 3학년 생도들에게 유격대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빛나는 전과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1950년 7월 1일 새벽 퇴계원에 위치한 북한군 보급물자 적치장을 기습 공격하며 유격 활동의 신호탄을 쐈다. 보급품을 불태우고, 적군 약 3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7월 31일에는 창동국민학교 및 그 인근에 설치된 북한군 수송부대·보안소를 습격해 전과를 올렸다.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된 세 번째 공격 목표는 생도들의 모교 육사였다.

김동원 유격대장은 적이 의용군 훈련소로 사용하던 육사를 습격하면 무고하게 끌려온 학생들을 탈출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 8월 15일 야간에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이 작전으로 50여 명의 적군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김동원 유격대장을 비롯한 6명의 생도가 희생되고 말았다.

3차례 공격으로 9명으로 줄어든 유격대는 적군의 수색을 피해 수락산 은거지에서 숨어지내다 9월 15일 불암산 기지로 복귀했다. 마침 이날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실시한 날이었다.

유격대는 적군이 유엔군의 서울 진입에 대비해 주민들을 압송해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9월 21일 매복 작전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주민 100여 명이 구출되는 성과를 이뤘지만, 총과 실탄이 부족했던 유격대는 전원 사망했다. 유엔군의 서울 수복을 불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 전투를 끝으로 유격대 활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희생정신 추모·역사 현장 보존 사업 추진

육사는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국가수호의 역사 현장을 보존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남양주시와 함께 불암사 입구에 유격대 활동상을 설명하는 안내 간판을 새로 설치했고, 지난해 6월에는 불암산 입구에 불굴의 군인정신을 기리는 구국충혼비를 건립했다.

육사는 이날 유격대 은거 동굴 세 곳에 있던 노후 안내간판을 교체하는 제막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김정수(중장) 육군사관학교장, 이홍기 육사총동창회장과 재교 생도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김 학교장은 기념사를 통해 “사관생도들이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에서 활약한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과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초일류 육군의 정예장교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매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육사와 남양주시는 추모사업 일환으로 은거 동굴까지 안전하고 접근성이 좋은 통로를 새롭게 구축할 계획이다.

또한 육사는 올해 화랑대 역사교실에 ‘역사 속으로’라는 지역평생시민대학 수업을 개설, 지역 주민에게 역사의식과 호국정신을 함양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육사는 “불암산 호랑이 유격대는 열악한 환경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백전불굴의 투지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애국충정의 표본”이라며 “유격대에 대한 기억과 추모를 계속해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원준 기자 < wonjun44@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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