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정재민 천년지대군 교수실에서] 시대를 통찰하는 리더의 혜안과 시대정신

입력 2021. 06. 21   16:22
업데이트 2021. 06. 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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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 민 육군사관학교 국어교수·대령
정 재 민 육군사관학교 국어교수·대령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견인하는 핵심가치가 존재한다. 당대의 삶을 공유하는 대다수가 지향하는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정신의 농축 같은 것이다. 이를 시대정신이라 한다. 시대정신은 그 시대와 사회를 지배하고, 이끌고, 행동하게 만든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 사회를 발전시킨다.

6세기를 살았던 사다함은 가야를 합병했다. 왕이 공로를 높이 평가해 포로 300명을 노비로 하사하자, ‘이제 가야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하면서 모두 풀어주었다. 왕이 땅을 내려주려 하자, 비옥한 밭이 아니라 거친 황무지를 달라고 했다. 황무지는 포로들에게 나눠주어 논밭으로 개간하게 했다. 출신 지역 간의 차별을 없애 사람들을 화합시켰으며, 부족했던 농토를 늘리고자 했던 것이다.

고려의 명장 윤관은 여진을 정벌하고 9성을 쌓았다. 당시 신료들은 험악한 산 사이의 좁은 길목만 틀어막으면 오랑캐를 방어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윤관은 그들을 소탕하자고 주청했다. 별무반을 설치하고 신기군을 편성해 북방 지역을 평정했다. 결과적으로 고려의 기상을 드높이고 강역을 넓혔다.

임진왜란 직전, 유성룡은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을 수군절도사에 천거했다. 종6품에서 정3품으로, 단번에 일곱 직급을 건너뛴, 파격적인 승진이었다.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충무공은 귀선(龜船)을 건조해 왜군을 격파했다. 서애의 발탁이 옳았음을 증명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사다함, 윤관, 이순신! 세 무인이 보여준 행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당대의 사람들과 다른 차원의 인식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포로를 풀어준 행위, 불모지를 개간한 행위, 여진을 평정한 행위, 거북선을 건조한 행위는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이다. 이런 행위의 기저에는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염원을 담보하는 시대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세 사람은 단지 군사적 식견이 뛰어난 무인이 아니라, 시대적 문제를 꿰뚫는 ‘지혜의 눈’을 지닌 리더였다.

어느 시대나 변화와 혁신의 물결이 일렁인다. 변화가 없는 시대는 죽은 시대고, 약동하지 않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사다함과 윤관과 이순신이 살았던 시대에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도 이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면 혁신의 주역은 누구인가? 리더 그룹이다. 리더 그룹이 먼저 변해야 조직이 변한다. 위계를 중시하는 군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장교와 부사관이 먼저 혁신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무작정 뛰어들면 안 된다. 뛰어들기 전에 ‘지금 나의 동료와 부하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를 탐색해 봐야 한다.

사회가 변하면 군대도 변해야 한다. 따라서 군의 리더는 군사적 안목과 함께 시대를 통찰하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한쪽 눈은 군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 눈은 사회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두 개의 눈으로 양쪽을 균형되게 바라봐야 한다. 군 내부만 바라보는 졸목(拙目)의 소유자가 되면 안 된다.

주역의 64괘 중에 ‘복괘(復卦)’가 있다. 곤괘(坤卦)와 진괘(震卦)가 위아래로 놓인 모양의 괘다. 복괘는 동지(冬至)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때부터 서서히 양의 기운이 싹트는 절기로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동지는 일 년 중 가장 추울 때다. 그러나 또한 새봄이 움트는 절기다. 시대를 혁신하는 군의 리더가 되고 싶다면, 지표면 아래 꿈틀대는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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