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세계 전사적지를 찾아서Ⅱ

식민지서 가져온 금은보화로 풍요 누린 황금 도시

입력 2021. 06. 09   16:04
업데이트 2021. 06. 0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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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스페인 세비야 ①
 
예전부터 해상무역 중요 거점 번성
콜럼버스 신대륙 탐험대도 출발
광대한 스페인 광장 난간 채운 벽화
이슬람 지배 대항한 800년 역사 묘사

 

세비아 도심에 있는 스페인 광장 난간 벽면은 이교도가 지배한 국토를 되찾기 위한 지역별 800년 투쟁역사를 묘사한 벽화로 채워져 있다. 사진은 1492년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앞에서 이슬람군이 가톨릭군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 타일 벽화.  
 필자 제공
세비아 도심에 있는 스페인 광장 난간 벽면은 이교도가 지배한 국토를 되찾기 위한 지역별 800년 투쟁역사를 묘사한 벽화로 채워져 있다. 사진은 1492년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 앞에서 이슬람군이 가톨릭군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 타일 벽화. 필자 제공
1929년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 개최장소로 건립한 스페인광장 전경. 2층 난간에 군사역사박물관이 있다.  필자 제공
1929년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 개최장소로 건립한 스페인광장 전경. 2층 난간에 군사역사박물관이 있다. 필자 제공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팔로스 항구에 정박한 스페인해군 군함. 대서양과 연결된 이 항구에서 콜럼버스 탐험대가 출항했다.  필자 제공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 팔로스 항구에 정박한 스페인해군 군함. 대서양과 연결된 이 항구에서 콜럼버스 탐험대가 출항했다. 필자 제공

세비야(Sevilla)는 이베리아반도 남부 안달루시아주의 주도로서 인구 70만을 가진 스페인 제4의 도시다. 도심을 가로질러 가까운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과달키비르강 덕분에 예전부터 해상무역의 중요 거점으로 번성해 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대도 이 도시에서 출발했다. 훗날 식민지의 엄청난 재물까지 이 항구로 되돌아와 스페인제국은 물질적 풍요를 마음껏 누렸다. 세계문화유산인 알카사르성, 세비야 대성당이 있으며 플라밍고와 투우의 본고장도 이곳 세비야다.


동양적 문화를 가진 유럽 서쪽 끝의 스페인

711년 이베리아반도를 침공한 아랍인은 프랑스까지 진출을 시도했으나 피레네산맥을 넘지 못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800년 이슬람 지배로 유럽 서쪽에 있으면서도 동양적인 냄새를 풍기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 문명은 빈약했던 스페인 경쟁력을 상승시켜준 장본인이다. 아랍인들의 천문학·수학·의학·정치사상은 스페인을 살찌웠고, 척박한 땅에 관개 기술을 전파했다. 스페인어 열 단어 중 하나는 아랍 어원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스페인 대륙에서는 718년부터 이교도를 몰아내고 잃어버린 땅을 되찾겠다는 레콩키스타(Reconquista·국토회복운동)가 시작됐다. 이베리아 북단에는 레온, 카스티야, 아라곤과 같은 기독교 왕국들이 자리 잡았고, 이슬람교와의 끝없는 전쟁이 계속됐다. 가톨릭 신앙심은 투쟁의 근본 동력이었고 스페인을 한마음으로 묶었다. 1492년 이슬람의 그라나다 왕국이 최후로 항복하면서 아랍인은 아프리카로 쫓겨났다. 뒤이어 스페인 내에서는 무슬림과 유대인을 추방하는 종교재판이 이어졌다. 세계역사는 이처럼 ‘도전과 응전’ ‘정복과 지배’ ‘보복과 화해’가 뒤엉켜 수레바퀴 돌 듯이 굴러왔다.


모자이크 타일 벽화로 꾸민 스페인 역사

세비야 도심에 있는 광대한 규모의 스페인 광장은 작은 호수까지 있어 보트 놀이도 가능하다. 1929년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 장소로 건설된 이곳은 세비야의 대표적 관광명소다. 반원 형태의 거대한 건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으며, 난간 벽면에는 각 주의 특징과 역사를 담은 타일 그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벽화 대부분은 이교도가 지배한 국토를 되찾기 위한 지역별 800년 투쟁역사를 묘사한 그림이다. ‘인증샷’ 인기 장소는 단연코 1492년 아라곤·카스티야 공동왕국의 군대가 이슬람 최후의 거점 알함브라 궁전에 입성하는 벽화 앞이다. 주정부 청사가 자리 잡고 있는 타원형 건물 2층에는 스페인 근현대 전쟁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군사박물관도 있다.

테라스 한쪽에서는 수많은 관광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플라멩코 공연이 한창이다. 악사의 기타 선율에 맞추어 발을 구르며 가수의 노래가 시작되자, 무용수는 손뼉을 치며 감정을 잡는다. 노래는 한을 토해내는 절규였고, 하늘을 향해 무엇인가 잡으려는 무용수 손끝은 집시들의 허망했던 세월을 한탄하는 듯 보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으로 쏟아낸 격정적인 무용수의 춤사위는 마지막으로 발을 “꽝” 내리찍으며 끝났다.


집시의 열정과 애환이 녹아있는 플라멩코


‘집시(Gipsy)’라는 단어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중세에는 악마나 마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해지거나 생매장까지 당했다. 어떤 사회에도 동화되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고집하는 집시들은 내부적 희생양이 필요한 사회에서 가장 손쉽게 버릴 수 있는 카드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집시를 게으르고 부도덕한, 기생충 같은 존재라며 대학살을 감행했다.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는 집시들은 못 배우다 보니 남의 것을 훔치고 속여야만 살 수 있었고, 그들에 대한 편견은 더더욱 심해졌다. 오늘날 유럽 집시는 거지, 소매치기 등 피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집시들이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들만의 정서를 춤과 노래, 연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플라멩코(Flamenco)’다. 열정적인 집시들은 발을 빠르게 구르고 손뼉을 크게 치고 소리를 지르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예술적 표현방법을 만들었다. 플라멩코는 ‘불꽃’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플라마(Flama)’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화려하고 뜨거운 춤이다.


세계역사의 물길을 바꾸었던 신대륙 발견


1492년 8월 3일 새벽, 세비야의 팔로스 항구에서 콜럼버스의 범선 3척이 신대륙을 찾아 출항했다. 대항해시대는 본격화됐고, 세계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로마나 몽골 제국에 버금갈 정도의 방대한 스페인 해외식민지에서 가져온 금·은·보화로 세비야는 풍요가 흘러넘쳐 ‘황금의 도시’로 불렸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탐험을 출발하기 전, 이사벨 여왕과 산타페(Santa Fe)협정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새로 발견하는 영토를 여왕에게 바치는 대신 자신과 후손들의 귀족 신분 보장, 자신을 식민지 총독으로 임명해 줄 것, 식민지에서 얻은 수입의 10분의 1을 자신이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탐욕은 궁중 대신과 교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자신의 이익에 급급했던 콜럼버스는 신대륙 원주민을 노예로 취급했고, 학살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그는 본국으로 소환되기도 했지만, 여왕의 배려로 네 번째 탐험까지 떠났다. 좌절감과 관절염에 시달리던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쉰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세비야 대성당에 안장됐다.


한국인 부부의 당당한 세계일주 배낭여행


스페인 광장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형 한국식당이 있다. 손님 대부분은 한국인인 반면 종업원은 의외로 스페인 젊은이들이다. 말을 걸어온 옆자리 여행객은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아내와 함께 1년간 세계 일주 배낭 여행 중이라는 J씨 부부였다. 북미·남미·아프리카를 거의 다 돌아본 후, 모로코 탕헤르를 거쳐 오늘 세비야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 후 심야버스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밤새도록 갈 예정이다. 귀국 일자 항공편에 맞추다 보니 막판에 강행군 중이란다. 온갖 난관을 극복해 가면서 최초 계획한 여행 일정을 거의 소화했단다. 더구나 배낭 여행 중 부부가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고 하니 더더욱 놀라웠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무용담(?)을 듣다가 가까운 필자 숙소로 자리를 옮겨 버스출발 전 짧은 시간이나마 편안히 쉬도록 도와주었다.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예비역 육군대령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예비역 육군대령

필자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는 2010년 국내 최초로 군사학 박사학위를 충남대에서 취득했다. 세계 50여 개국의 전쟁유적지를 배낭여행으로 직접 답사해 『세계의 전쟁유적지를 찾아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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