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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 철포대 3열 배치… 가쓰요리 기병 대파

기사입력 2021. 05. 12   15:47 최종수정 2021. 05. 12   15:49

18 천하포무와 풍림화산 맞대결

 
天下布武
하늘 천 아래 하 펼 포 호반 무
천하를 무력으로 아우르다

 
저돌적인 노부나가 ‘천하포무’에 밀려
신겐의 ‘풍림화산’ 유지 받든 가쓰요리
공격할 틈 찾지 못해 비참하게 패배
전장 상황에 맞는 전술 중요성 일깨워


일본 무사 대결 전반전은 천하포무와 풍림화산의 맞대결이었다.  필자 제공 (일러스트 한가영)

5월 산하는 온갖 꽃과 푸르름이 가득하다. 그런데 1592년 봄은 왜군에 짓밟히고 피로 물들여졌다. 일본은 이웃인가, 원수인가? 그들과 함께 멀리 갈 동반자가 되려면 알아야 한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임진왜란 관련 사자성어를 살펴본다.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라

16세기 중엽 일본은 권력 다툼 전투가 한창이었다. 무로마치 막부는 무능과 폭정으로 가득 찼다. 여러 다이묘(大名·지방 우두머리) 중에서 4명만 준결승에 올랐다. 사각의 결전장 링은 중남부 해안 나가노 주변이었다. 전초전은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와 다케다 신겐의 ‘풍림화산’이었다. 최후 승자의 칼끝은 조선을 향했다.

무사 결투 선두는 오다 노부나가였다. 그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저돌적인 성격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성격을 비교해 보여주는 이 일화에서 울지 않는 두견새에 대해 히데요시는 ‘울지 않으면 울게 하라’,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리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이라고 답할 정도로 저돌적인 추진력을 가진 노부나가는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가 벌어지자 약소국 오와리 3000 병력으로 강대한 스루가국의 요시모토군 2만5000명에 맞섰다. 노부나가 부하들은 병력이 열세하므로 오타카성에서 장기 지연전을 펼치자고 했지만, 그는 한판 승부를 걸었다. 소수 결사대 야간 기습작전으로 요시모토군을 격퇴했다.

1562년 노부나가는 미카와의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어 배후 안전을 확보했다. 곧장 서쪽으로 진군했다. 이 전략은 ‘인교원계(隣交遠計·가까운 나라와 친교를 맺고 먼 나라를 공격한다)’로 원교근공과 대비된다. 다음 해 그는 일왕이 있는 교토로 가는 길목 미노성을 함락했다. 성 이름을 기후(岐阜)성으로 고쳐 패권 장악 의지를 담았다. ‘기후’는 중국 주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기산(岐山)이라는 고사에서 따온 명칭이었다. 노부나가는 천하를 무력으로 제압한다는 ‘천하포무(天下布武)’ 깃발과 ‘기린 린(麟)’자 인장을 쓰기 시작했다. 기린은 평화로운 세상에 출현한다는 상상 속 동물이다.


풍림화산과 다케다 신겐

오다 노부나가에 ‘가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맞섰다. 신겐은 ‘풍림화산(風林火山)’ 깃발을 들었다. 풍림화산은 『손자병법』의 ‘군쟁편’ 집중과 분산에 나온다. ‘빠르기는 바람 같고(其疾如風·기질여풍) 고요하기는 숲 같으며(其徐如林·기서여림) 공격은 불처럼(侵掠如火·침략여화) 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과 같음(不動如山·부동여산)’의 끝 글자 모음이다. 전장에서는 4개 깃발이 펄럭였다. 아군에게는 용기를, 적군에게는 공포심을 주었다.

신겐의 기병은 긴 창으로 무장된 최강 전투력이었다. 그는 라이벌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과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이겨 시나노를 평정했다. 천하를 품는 뜻을 이루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그다음 노부나가의 천하포무 세력이 강대해지자 잠시 때를 기다렸다.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시대 흐름을 주시했다. 노부나가 아들과 자신의 딸을 정략결혼시켜 겉으로는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1573년 신겐은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연합군을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중원을 장악하려던 그의 꿈은 지병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는 홀연히 세상을 떠나며 “3년 동안 내 죽음을 숨기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이 함부로 공격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자신이 미리 서명한 명령서도 3년 분량을 준비했다. 그의 넷째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는 신겐과 닮은 동생을 진짜 신겐으로 만들어 노부나가에 맞서 싸웠다. 카게무샤 전술이다.


카게무샤와 천하포무 대결

카게무샤(影武者)는 그림자 무사로 대역을 말한다. 적 기만과 아군 장악을 위해 자신과 닮은 생김새와 옷차림의 인물을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 1575년 천하무적 가쓰요리 기병대 1만5000명과 노부나가와 이에야스 연합군 보병대 3만8000명이 ‘나가시노·시다라가하라’에서 맞붙었다. 가쓰요리군은 도하작전과 땅굴 및 공성전 등 다양한 공격작전을 펼쳤다.

노부나가 연합군은 진흙의 야지에 3만 개 말뚝을 박아 목책 방어선을 구축했다. 결정적으로 아시가루(足經·조총병) 사격 전술을 바꿨다. 당시 철포는 한 번 쏘고 나면 다음 발사까지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면 탄약이 젖어 사격이 불가했다. 따라서 3000정 철포대를 3열로 배치했다. 그리고 창 부대는 목책 곳곳에 출구를 만들었다. 가쓰요리군이 돌격해 오면 재빠르게 달려나가 측면 공격을 했다. 사냥터에 함정을 파놓고 사냥한 셈이었다. 첫 번째 1000명 철포대가 총을 쏘고 재빨리 좌우로 길을 트면 두 번째 철포대가 철포를 쐈다. 그들이 다시 양옆으로 벌리면 세 번째 철포대가 앞으로 나가 사격했다. 가쓰요리군에게 좀처럼 공격할 틈을 주지 않았다.

가쓰요리군은 기병 기동력만 앞세웠다. 무모한 돌격은 만용에 가까웠다. 그들이 자랑하는 기마군단이 철포를 사용한 노부나가 군대에 진 것은 ‘전쟁 패러다임 전환’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전장 상황에 맞는 사격 전술을 적용했음에도 기존 전술만 고집해 비참하게 패배했다. 노부나가 연합군은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1582년 여름 노부나가는 부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뒤를 이었다.


필자 오홍국 국제정치학박사는 역사안보·전략전술·재난안전 등 다양한 분야 집필과 기고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손자와 클라우제비츠에게 길을 묻다』·『간접접근코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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