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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학 기고] 인식표에 대한 단상

기사입력 2021. 05. 12   15:09 최종수정 2021. 05. 12   15:12

최운학 육군39사단 용남면대장

인식표. 군인의 소속 군, 성명, 군번 혈액형이 새겨져 있는 얇은 금속판을 말한다. 군번줄로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일부는 구속을 의미하는 ‘개목걸이’라고도 한다.

인식표도 세월의 변화를 거쳐 갔는데 필자가 어릴 때 보았던 사촌 형의 것은 글자를 찍어 누르는 방식이었고 필자가 임관할 때는 음각으로 새기는 방식이었다. 모양 또한 직사각형에 각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하되 한쪽은 움푹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부분이 사라졌다.

사용처도 과거에는 군인만의 전유물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물건에 대한 표식이나 반려동물에게도 활용하고, 가운데 하트 문양과 그 좌우에는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어 변치 않을 사랑의 징표로 활용하는 것도 보았다. 아마도 자신이 누구인지 나타내는 것에서 시작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확장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인식표가 대중의 인식에 강하게 자리 잡을 때가 있는데 상의를 탈의하고 뜀걸음을 하는 군인의 모습에서는 강인함을,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에서 전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식표를 발견했을 때는 숙연함을 느낀다.

군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 인식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현역 시절 집을 나설 때 지갑이나 휴대전화를 두고 온 것을 알고서 다시 집으로 향하는 경우는 있었을지 몰라도 인식표를 두고 왔다고 다시 집으로 향한 경우는 내 기억에는 없다. 또한 축구를 할 때는 안전을 위해서 벗어놔야 했고 여름에는 땀에 젖어 끈적끈적하고 겨울에는 차가웠던 존재. 과거 필자도 그랬듯이 아마 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인식표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인식표에는 내 소속 군과 군번, 이름, 혈액형이 있다. 이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진급 여부에 따라 변하는 계급은 표시되지 않는다. 즉 나의 변하지 않는 것을 나타낸 표식인데 필자는 여기에 약속이란 의미를 더하고 싶다.

인식표에 새겨진 혈액형은 그 주인의 것이지만 이는 생사가 함께하는 전장에서 혈액이 필요한 전우를 살리겠다는 약속이며 혹여 전우의 시신을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지고 오는 하나의 인식표. 즉, 전우의 이름과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는 훗날 꼭 찾으러 오겠다는 만남의 약속일 것이다. 앞서 말한 유해발굴 현장에서 그 인식표가 발견될 때가 바로 그 만남의 약속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닐까!

이쯤 되면 목에 걸린 인식표는 나의 변함없는 정보로 내가 누구인지 나타내는 표시를 넘어 언제 어디서든 나를 살리고 찾아내겠다는 전우들의 약속이 담긴 증표가 아닐까 싶다. 오로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용도라고 생각했던 인식표를 내 전우가 말없이 건네는 약속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에 닿는 인식표의 차가움이 사라지는 듯하다.

지금 우리의 병영문화는 많은 변화를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선해야 할 것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군은 다양한 성향의 장병을 포용하면서도 이들을 강한 전사로 키워내야 한다. 장병들 역시 자신의 발전이 군의 발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인식표는 오롯이 나만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나를 향한 전우들의 약속을 상징하는 것’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면, 인식표가 전우애의 상징을 넘어 전우가 내게 보내는 변하지 않을 약속이라는 의미가 더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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