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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조명탄] 꿀 떨어집니다

기사입력 2021. 05. 07   14:55 최종수정 2021. 05. 09   09:41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작가


참기름과 꿀, 식재료 중에서 가장 귀한 축이다. 설탕을 벌에게 먹여 얻은 사양꿀이 아닌, 벌들이 모아온 벌꿀과 국산 참깨를 짜서 얻은 참기름은 여전히 음식에 ‘팍팍’ 쓰기 어렵다. 꿀이나 참기름을 따르고 병에 묻은 것을 손가락으로 쓰윽 닦아 빨아 먹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대물림한다. 지금처럼 양봉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을 때 꿀은 더욱 귀해서 집안 어른들 기력이 떨어지거나 해장을 할 일이 있어야 찬장 꼭대기에서 꿀단지가 내려왔다.

어릴 때 입술이 부르트고 버짐이 필 때면 잠들기 전에 엄마가 꿀을 발라주곤 했다. 낮에 발라주면 쪽 빨아 먹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율면’, 밤골이라 할 정도로 밤나무가 많았던 외가에서 얻어온 밤꿀 병을 중학생이 돼서도 봤으니 꿀은 약이었지 식재료가 아니었다. 그 단맛이 좋아 추운 겨울 입술에 침을 발라 입술을 터지게 한 뒤 엄마에게 꿀을 발라 달라 매달리기까지 했다.

야생꿀이 아니라면 꿀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이 벌을 길러야 한다. 벌을 기른다는 뜻에서 ‘양봉’이고 축산업이다. 벌의 생태를 이해하고 꽃이 많은 곳에 벌통을 두어 꿀을 모으게 하는 일이다. 꿀을 많이 품는 밀원 식물을 벌통 주변에 직접 심기도 한다. 먹이(화분떡)를 주어 벌을 돌보고 번식을 돕는다, 벌의 질병 치료와 예방도 필수다. 물론 꿀벌 수의사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꿀은 ‘아카시아꿀’로 전체 꿀 생산량의 70% 정도다. 아카시아의 정식 명칭은 ‘아까시나무’다. 꿀을 많이 품고 있는 한국의 대표 밀원식물이고 이맘때가 제철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고 사람도 산도 헐벗고 굶주릴 때 아까시나무는 산을 푸르게 했고 꿀과 목재를 내주었다. 아까시꽃이 피기 시작하면 양봉 농가는 아까시꽃 군락을 찾아 남에서 북으로 옮겨 가며 이동양봉을 한다. 50사단이 있는 경북 칠곡군에는 아까시나무가 많아 꿀도 유명하다.

한 장소에 벌통을 계속 두고 양봉을 하는 고정양봉도 있다. 고정양봉을 하면 벌이 봄에 피는 다양한 꽃에서 꿀을 모아와 ‘잡화꿀’이 생산된다. 동양종인 토종벌을 길러 꿀을 모으는 농가를 ‘한봉농가’라고도 하는데 이 꿀을 보통 ‘토종꿀’이라고 한다. 어느 꽃을 주요 밀원으로 삼았느냐에 따라 ‘메밀꿀’ ‘피나무꿀’ ‘밤꿀’ 등 맛과 향도 다채롭다. 벌들이 어떻게 한 종류의 꿀만 모아오는지 신기한 일이다. 벌들의 질서는 철저하다. 자기가 정한 꽃에서 꿀을 모아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한다.

인간에게 벌은 꿀을 가져다주는 경제동물이자 인류의 파수꾼이다. 전체 식물의 약 65%가 화분수정을 통해 열매를 맺는데, 수분시키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벌이 맡고 있다.

벌이 줄어들면 열매를 직접 따서 먹는 인간의 먹거리가 취약해지고, 열매를 먹고 사는 작은 동물의 생존도 위험해진다. 그러면 작은 동물을 잡아먹고 살아야 하는 큰 동물도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거나 죽는다.

올해도 일찍 더워져 봄꽃이 빨리 피었다 졌다. 남부와 북부의 온도 차가 크지 않아 아까시꽃도 한꺼번에 피고 져 꿀을 모을 기회가 줄어든다. 갑자기 추워져 꽃이 얼기도 한다. 벌들도 혼란스럽다. 버들강아지가 올라오면 그때 벌을 깨우곤 했다던데, 점점 시기가 빨라지면서 해충과 전염병에도 취약해져 농가의 시름이 깊다. 꿀은 달콤하나 벌의 사정은 쓰디쓰고, 인간의 형편도 그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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