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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행 희망’ 난민 눈물로 지워지는 ‘과거의 영광’

기사입력 2021. 05. 04   16:13 최종수정 2021. 05. 04   16:37

17 스페인 세우타 ①
 
모로코와 국경 맞댄 지중해 항구도시
카르타고·로마·아랍 등 ‘정복 역사’
삼엄한 국경, 우리 DMZ 흡사 ‘깜짝’
해체부대 유물 보존 군사박물관 ‘눈길’

 

세우타 외곽 산정에서 내려다본 시내 전경. 멀리 보이는 반도 끝부분에도 견고한 성채가 있다. 필자 제공
스페인 군사박물관 입구의 행진하는 병사 동상. 왼편에는 모로코산 산양 한 마리가 따르고 있다. 필자 제공

세우타(Ceuta)는 아프리카 북단 지중해의 작은 항구도시로 모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페인 자치령이다. 영국령 지브롤터가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이 도시의 인구는 8만 명이며, 면적은 18.5㎢로 여의도 4배 크기다. 수천 년 전 카르타고인들이 최초로 항구를 건설했지만, 로마제국 지배를 거쳐 AD 771년 아랍인들이 정복했다. 이후 1415년 포르투갈의 항해 왕자 엔히크 군대가 세우타를 점령하면서 세계 역사에서 ‘대항해 시대’의 신호탄이 올랐다. 세우타 도심과 외곽에는 거대한 성채들이 곳곳에 있으며, 상당수의 스페인군이 현재도 이런 요새지에 주둔하고 있다.


한국 DMZ의 판박이 세우타 국경지대

탕헤르를 출발한 지 1시간 정도 지나 세우타가 가까워지자 의외의 전경에 깜짝 놀랐다. 세우타 국경 지역이 한국 비무장지대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산 능선의 넓은 불모지, 이중 철책선, 경계 망루가 눈앞에 펼쳐졌다. 국경초소 뒤편 주요 고지에는 1800년대에 축성한 조기경보용 작은 성채들도 뚜렷이 보인다. 국내 언론에서 가끔 보도되던 스페인 국경선에서의 경찰·난민 간 충돌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국경 주변 산악은 군데군데 하얀 바윗돌과 잡목들로 우거져 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야산 곳곳에 난민들이 은거하고 있단다. 알제리, 리비아와 아프리카 중서부 국가에서 수천㎞를 이동해온 사람들이다. 2016년 12월에는 여행용 가방 속에 몸을 숨겨 세관 검색대를 통과하려다 발견된 가봉 출신 남성이 질식사하기 직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내전, 가난, 굶주림을 벗어나 신천지로 탈출하고자 하는 난민들의 애절한 호소도 물질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는 유럽인들에게는 골치 아픈 사회문제일 뿐이다.


목숨 걸고 유럽으로 탈출하는 아프리카 난민

2018년 여름, 세우타 국경 근처 야산에 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밀입국 알선조직에 상당량의 자금을 내고 이곳에 도착했다. 알선책 두목 ‘나 잘남’은 난민 입회금으로 철책 돌파에 필요한 특수 장비들을 사전 확보했다.

또 신속한 국경 통과를 위해 집결 난민들을 3개 그룹으로 편성했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재빠른 인원들에게 ‘통로 개척조’ 임무와 함께 절단기를 주었고, 체격 좋고 인상이 험악한 20대들은 경찰에 대항하는 ‘엄호조’로 편성했다. 본대는 가족 단위로 팀을 이루어 철책을 통과하면 무조건 분산해서 도주하도록 예행연습까지 시켰다.

2018년 7월 26일 06시 35분, 주·야간근무 교대를 막 마친 국경수비대원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난민들의 기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러 곳의 철책이 동시에 뚫렸고, 침입자들은 사방으로 훑어졌다. 경찰이 몽둥이로 제압하며 난민들을 체포하면, 오물통이 날아들고 화염 스프레이 불꽃이 날름거렸다. 순식간에 800여 명의 난민이 순찰도로를 거쳐 세우타 시내로 내달렸다. 결국, 602명이 체포되어 세우타 임시수용소에 갇혔고 난민 16명, 경찰 15명이 부상했다(출처 2018년 07월 27일 자 문화일보). 멀리서 이 작전을 지켜보던 ‘나 잘남’은 두둑이 쌓인 밀입국 알선비를 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기상천외한 다음의 해상·공중침투 작전까지 구상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지중해의 난민 해난사고


세우타 난민수용소 인원은 심사를 통해 일부는 이주 희망 국가로 건너갈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모로코로 다시 추방되기도 한다.

난민들은 비교적 우호적인 대우를 해주는 스페인 정부에 절박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면서 유럽 국가 이주를 꿈꾼다.

그나마 이들은 낡은 배로 무모하게 지중해를 직접 건너는 난민들보다는 안전하다. 2016년 지중해를 직접 건너려다 익사한 난민은 최소 5000여 명. 특히 유럽 해안에 도착한 난민의 16%가 아동이었고, 그중 88%는 보호자가 없었다고 한다.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입국하는 세관은 혼란스러운 시장통 분위기와 비슷하다. 매일 국경 넘어 세우타로 출퇴근하는 모로코인이 수천 명에 달한다. 대한민국 여권을 내밀자 세관원은 얼굴 확인도 없이 스탬프를 ‘꽝!’ 내려찍는다. 한국인이 스페인으로 밀입국하려는 경우는 없다는 것을 확신하는 태도다.


세계 제국 스페인을 능가한 한국인의 저력

모로코의 연 국민소득은 스페인의 10분의 1 수준. 세우타에 온 모로코인 대부분은 허드렛일이나 일용잡역을 도맡아 한다. 똑같은 직종의 스페인인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지만, 모로코보다는 더 높은 급여에 감사할 따름이다.

1960년대 초 한국 역시 개인소득이 1년에 100달러 이하인 최빈국이었지만, 오늘날 스페인을 능가한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적인 역사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신천지가 전개되었다.

세우타는 외곽 산악지역을 제외하고는 분위기가 서울의 명동거리와 똑같다. 깔끔한 식당에서 여유 있게 외식을 즐기는 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으며, 화폐도 유로화를 사용한다.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페인이지만, 선조들이 물려준 국가유산은 엄청나다. 또한, 스페인 사람들은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도 강하다. 과거 군사 강국답게 세우타에는 다양한 전쟁유적들이 산재해 있었다.


해체부대 역사를 보존하는 세우타 군사박물관

스페인은 1900년대 초부터 모로코 북부 지역을 지배했다. 많은 스페인 부대들이 1920년대 리프 전쟁을 포함하여 원주민과 숱한 전투를 치렀다. 1956년 모로코가 독립하자, 스페인은 세우타에 군사박물관(Spanish Legion Museum)을 건립하여 식민지에 주둔했던 해체부대의 역사 유물을 옮겨왔다.

박물관 입구의 개인화기를 어깨에 메고 모로코산 산양 1마리와 당당하게 행진하는 병사 동상이 인상적이다. 지상·지하 각 1층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다양한 부대의 군기(軍旗), 옛 부대 막사 모형, 전쟁영웅 흉상, 최고훈장 수상자 무용담으로 꽉 차 있다. 스페인이 세계 제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군인들의 희생이 오롯이 느껴졌다. 한국 역시 국방개혁의 하나로 숱한 부대들이 해체되고 있다. 조국을 위한 선배 장병들의 피땀 어린 헌신을 후세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해체부대 역사관이 존속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신종태 전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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