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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이미지 ‘고유 정품 인증’ 시대, 만화도 설렌다

기사입력 2021. 04. 13   16:28 최종수정 2021. 04. 13   16:38

15. NFT, 만화 수익화의 새로운 기회 될까?


300MB 사진 파일 한 개가 785억 원 낙찰
블록체인 기술로 소유권 인증…위·변조 불가
최근 김성모 만화 작품에 국내 첫 NFT 접목
실물 단행본 없는 웹툰도 새 수익 창출 기대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  출처=로이터


최근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한 토큰)’라는 블록체인 기술 이슈가 화제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11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이 6930만 달러(약 785억 원)에 낙찰된 것이 발단이 됐다.

NFT를 채용한 작품이 경매장에 오른 것은 지난해 10월 7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로버트 앨리스 프로젝트(Robert Alice Project)의 벤 젠틸리라는 인물이 블록체인 기반 가상증표인 비트코인 자체를 소재로 삼은 작품 ‘블록21(Block 21)’을 내놓아 13만1250달러(한화 약 1억5000만 원)에 낙찰된 일이 최초다. 그런데 실물이 아닌 이미지 파일로 이루어진 디지털 예술품이 NFT를 달고 경매에 올라 낙찰된 것은 비플의 작품이 처음이다. ‘300메가바이트짜리 이미지 파일 하나에 693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는 그 이전까지 NFT가 무엇인지는 생각도 안 했던 사람들까지도 귀를 쫑긋 세우게 하고 있다. 크리스티의 경쟁사라 할 소더비 경매장도 이에 질세라 이달 중으로 NFT 디지털 예술 작품을 경매에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NFT는 최근에 느닷없이 등장한 기술 같지만, 개념 자체가 부각된 지는 사실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이를테면 2017년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VR 플랫폼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는 이용자가 가상 세계에 NFT가 부여된 랜드(land), 즉 ‘땅’을 구매한 후 그 안에서 자기만의 콘텐츠나 게임 등을 만들어 찾아오는 이에게 경험시켜 이용자 각자가 수익을 낼 수 있게끔 했다.

‘디센트럴랜드’의 사례에서 보듯 NFT는 특정 대상에 관해 특정인의 소유권을 입증케 해주는 일종의 디지털 인증서다. 언급했던 바와 같이 NFT도 블록체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특정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두가 사슬 형태로 엮인 분산저장 환경에 암호화한 데이터를 저장해 특정인이 위·변조할 수 없고 모두가 데이터 블록을 공유한다는 블록체인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즉, NFT는 위조가 어렵고 누구나 소유자가 누구인지 등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이렇게 취득한 소유권을 경매에 내어놓아 거래할 수도 있다.

NFT의 대상은 실물과 디지털 데이터를 가리지 않는다. ‘블록 21’과 같이 비트코인의 상징성을 담아 표현한 실물 예술품도 NFT로 자산성을 획득할 수 있지만 ‘디센트럴랜드’의 가상 세계 속 땅(랜드)이나 ‘매일: 첫 5000일’ 역시 NFT를 통해 자산으로서 소유권을 거래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실물 예술품은 물론 사치품, 게임 아이템, 디지털 파일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품목이 NFT를 통하면 소유권을 ‘인증’받을 수 있다.

그 종류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캐나다 작가 크리스티나 킴이 ‘마스 하우스(Mars House)’라는 이름으로 NFT를 적용해 가상공간 속 화성에 구현한 집이 지난달 약 50만 달러(한화 약 5억6800만 원)에 판매되는가 하면, SNS 트위터의 최고 경영자 잭 도시의 세계 최초 트윗 한 줄 역시 NFT를 적용해 약 290만 달러(한화 약 32억9000만 원)에 낙찰됐다. 고가 미술품이나 유명인의 소장품이 경매에 나와 상상 이상의 고가에 낙찰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젠 그 범주가 하드디스크 속에 저장되고 복제되던 디지털 데이터에까지 확장된 셈이다.

이와 같은 화제성이 부각되면서 NFT를 적용해 보려는 사례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재밌게도 이 사례 중 하나가 근래 만화계에서 튀어나왔다. 지난 3월 말 국내 게임회사 100여 곳과 함께하는 블록체인 게임 프로젝트인 아이템버스가 ‘마계대전’ ‘럭키짱’ ‘대털’ 등을 펴낸 김성모 작가의 NFT 사업권을 확보했다고 밝힌 것이다. 만화가와 NFT의 접목은 김 작가가 처음이다.

김성모 작가의 초기작 ‘마계대전’ 표지. 필자 제공


그동안 만화의 상품화는 영상과 같은 2차적 저작물이 아니라면 문구나 장식품 같은 부가 상품 정도로 이루어져 왔고, 경매 또한 일부 희소성 있는 옛 단행본에나 적용 가능한 정도였다. 미술품 거래가 부러웠던 업계인들 사이에서 팝아트 형태로 작품을 다시 제작하거나 재해석해 전시를 꾀한 사례가 있다. 또한 한 칸 안에 주제를 함축한 만화인 카툰의 경우 전시와 판매를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툰을 제외하자면 만화는 매우 고전이거나 회화 형태를 빌리지 않으면 경매 대상에 오르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만화와 NFT의 만남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만화가 본격적인 경매 대상에 오를 수 있게 된다는 점 외에도, 이미 스케치나 연출 설계도인 콘티 단계에서부터 실물 자체가 없이 디지털 데이터로만 창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웹툰의 경우에도 데이터를 팔아 작가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경우 데뷔 때부터 남겼던 스케치나 직접 채색한 만화 표지 일러스트 등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상업 만화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웹툰으로 이동해 있는 현재 한국 만화계에서 만화로 수익을 낼 창구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은 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소유권을 1/N으로 나눠 구입할 수도 있다는 점은 소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물론 또 다른 형태의 제작 투자를 가능케 할 방법으로도 NFT가 부각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NFT를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보긴 어렵다. ‘매일: 첫 5000일’의 아티스트 비플도 거품이 끼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듯, 현재의 NFT 이슈는 상당 부분 투기성으로 향하던 비트코인의 초기 활황세를 많이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기술이 결부된 만화 이슈가 무조건 작가를 황금향으로 이끌어주지는 않았다는 과거 사례들에 비춰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음원이나 영화가 이미 실물 아닌 데이터를 구입해 소유한다는 개념으로 팔린 지도 꽤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거품을 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가격이라면, 만화 독자가 진품이 인증된 웹툰 데이터를 소장하며 ‘플렉스’하는 풍경 정도는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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