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18세기 말 英 상류층은 왜 앞다퉈 로마에 갔을까?

입력 2021. 04. 13   16:21
업데이트 2021. 04. 13   16:39
0 댓글
64 18세기의 유행 신고전주의


로코코 향략적 문화에 대한 반발
고대 그리스·로마 아름다움에 심취
이상·교훈적이며 사사로운 감정 배제
로마 견학 필수…미술품 등 수집 열풍
고전 모방하되 빠르게 새로운 것 추구

서정욱 미술토크 유튜브 채널.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관련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필자 제공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필자 제공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죽음’.

‘찰스 존 크라울의 초상’.
‘찰스 존 크라울의 초상’.

세상에는 유행이라는 것이 있다. 유행어가 있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 패션도 있다. 사실 유행이라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유행에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면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따라가게 된다. 특히 SNS가 발달한 요즈음 유행이 만들어지고 퍼져가는 속도가 대단하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은 시대의 유행을 미리 읽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오늘은 18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미술에 관한 이야기이다. 18세기 초 프랑스에는 로코코 문화가 크게 유행하고 있었다. 루이 14세가 죽자 절대왕권에서 기를 펴지 못하던 귀족들이 해방된 마음에 가볍고 즐겁고 감미롭고 우아한 취향을 즐겼던 것이 로코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도 시들해졌다. 서서히 사람들 눈에 비친 로코코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향락적 문화 정도로 변해갔다. 그러면서 다음 유행으로 생겨났던 것이 신고전주의이다. 신고전주의란 용어 그대로 고전을 따라가자는 주의이다. 여기서 고전이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말하는 것이고 고전주의 앞에 ‘신’ 자가 붙은 것은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 미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인간의 이상을 추구한 미술이라고 할 수 있다. 로코코의 향락적 문화로 인해 허무해진 사람들의 눈에 비친 고전의 이상적 아름다움. 그것은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심취해 갔다. 때맞춰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한순간 땅속에 묻혔던 고대도시 폼페이의 유적이 발굴되며 2000년 가까이 감춰졌던 그리스와 로마의 유물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더욱더 그리스 로마 문화에 빠져들었다.

먼저 역사화들이 등장한다. 신고전주의 화가로 불리는 자크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가 대표작이다. 소재는 당연히 로마 건국사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은 한 가족이다. 왼편 세 젊은이는 아들들, 가운데 중년 남자는 아버지, 오른편 세 여인은 왼편부터 어머니, 딸, 며느리다. 어머니가 안고 있는 아이는 손자이다. 이들은 지금 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세 아들은 로마를 대표해 전쟁에 나가기로 했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검을 주며 승리를 기원한다. 여인들이 저리도 슬퍼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로마는 알바왕국과 계속 싸우고 있었는데 길어지자 합의를 한다. 양측의 피해가 점점 커지니 오히려 대표군인을 뽑아 최후에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전투를 벌이자고, 그리고 결과에 승복하자고. 결과적으로 보통 전투가 아니다. 지면 무조건 죽는다. 게다가 한 가지가 더 있다. 싸움의 상대는 이 집안의 사돈이었다.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는 아들이 죽든 사돈 청년이 죽든 죽는다. 딸 입장에서는 오빠가 죽든 약혼자가 죽든, 죽는다. 며느리 입장에서는 남편이 죽든 오빠가 죽든 죽는다. 안타까운 경우다. 그런데 그림의 네 남자에게는 주저함이 없다. 어떤 감정도 없다. 애국심은 무엇보다도 우선이고, 그 앞에서 흔들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신고전주의 스타일이다. 이상을 추구하고, 교훈적이고, 사사로운 감정은 배제한다. 그리고 정돈되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는 장면이다. 그는 아테네 정부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젊은이들에게 나쁜 사상을 가르쳤다는 이유에서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살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독배를 마시기로 한다. 옳은 일을 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런 회화들이 신고전주의 시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영국에서는 ‘그랜드 투어’라는 것이 유행한다. 그랜드 투어란 상류사회 자제들의 고급필수교육 마무리 단계로 하인과 가정교사를 대동해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 기간은 몇 달에서 몇 년까지 걸렸다. 특히 그들은 여행 중 이탈리아에 들러 고대의 문화를 견학하고 고대 기념품을 구입하며, 상류사회의 필수 고급문화인 신고전주의를 익혀야 했다.

또 특별한 그림들이 유행했다. 귀족들이 고대 그리스 로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배경 앞에 서서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그리는 초상화이다. 이런 그림 하나쯤 가지고 있어야 상류층으로서 구색이 맞았다. 화가 폼페오 바토니의 작품 ‘찰스 존 크라울의 초상’을 보면 주인공은 로마 귀족처럼 우아한 포즈를 잡고 있는데 표정 또한 온화하다. 배경의 건축물은 로마풍이고, 그리스풍 조각상들이 테이블 위에 보인다. 폼페오 바토니는 그때 고대기념초상화 전문화가로서 꽤 유명세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들과 부유층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미술품이나 기념품, 그리고 그 시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미술품들을 사 모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의 신고전주의 열풍이 불었다.

사람들에게는 모방심리가 있다. 그래서 새로운 어떤 것이 좋아 보이면 따라 하게 되고, 그래서 유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미술에도 그런 경향이 아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예술가라면 결코 모방하지는 않는다. 빠르게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작품 감상은 지루할 틈이 없다.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