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황두진 조명탄] 설명의 시대

입력 2021. 04. 12   17:08
업데이트 2021. 04. 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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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두 진 황두진 건축사사무소 대표
황 두 진 황두진 건축사사무소 대표


바야흐로 모두가 설명을 하고 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치고 자기 일만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아니, 이제 ‘자기 일’에 설명이 추가됐다. 온라인·오프라인 강연은 아예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소셜 네트워크는 그 이상이다. 영화 만들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스카 수상 영화감독부터, 낡은 기계를 새것처럼 고치는 어느 이름 모를 금속 장인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실로 ‘설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리더였던 기타리스트 마크 노플러의 동영상이었다. 자기가 사용해 왔던 기타를 모두 갖고 나와 하나하나에 대한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 기타는 술탄즈 오브 스윙(Sultans of Swing) 녹음할 때 썼던 거고, 또 다른 곡 녹음할 때는 이 기타를 썼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기타 하나하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그중 한 기타에 가볍게 키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타 주법에 대해서도 간단한 설명을 곁들였는데, 그러니까 자신의 음악적 자서전이면서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훌륭한 입문 강연이기도 했다. 어느 분야 사람이건 지긋한 나이에 저런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면 본인에게나 세상을 위해서나 정말 값진 일이다. 입문서는 대가가 쓰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동영상이었다.

몇 년 전 어느 대학에 가서 ‘창의성’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자기 분야, 그리고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소개하는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강연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한 학생이 찾아왔다. 상기된 얼굴로 본인은 경영대에 재학 중이지만 혹시 건축사무소에서 일할 기회를 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아했지만 한 번 찾아오라고 했고, 논의 끝에 취업 대신 결국 그 학생에게 간단한 연구 과제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경영학도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를 연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후 그 학생은 여기저기 인터뷰도 하고 조사도 하더니 드디어 어느 날 보고회를 하겠다고 했다.

결론이 바로 ‘지금 하는 일을 설명하라’였다. 유튜브를 비롯해 많은 인터넷 매체들을 조사해 본 결과, 지금은 모든 분야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건축 분야에서는 이런 노력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예술적인 동영상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부분 조회 수가 낮으며 댓글도 거의 안 달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원되는 언어들이 얼마나 공허한지 자기도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건 설명이 아니라 최면 같아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 누군가가 쉽고 명쾌한 언어로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준다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다행히 건축 분야 또한 이러한 상황을 잘 이해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와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묵묵히 내 일만 한다’는 앞으로도 여전히 미덕일 것이지만, 점점 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사회가 돼 가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언어도 좀 더 명확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은 설명서를 원하는데 시를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런데 결국 문제의 핵심은, 설명 이전에 설명할 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뻔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돌고 돌아 결론은 이것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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