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만화로 문화읽기

창작의 붓이라도 함부로 덧칠 안 된다

입력 2021. 04. 06   15:31
업데이트 2021. 04. 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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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픽션은 픽션일 뿐?’ 정답이 아닌 구호일 뿐

판타지 사극 드라마 방영 중단 사태
역사 왜곡·고증 오류 논란 식지 않아
사건·인물 대한 이해·존중 부족 때문

헬스 트레이너 빙의된 세조 ‘근육조선’
사도세자 생존 가설 소재 ‘야뇌 백동수’
바른 뼈대에 상상력…대중도 고개 끄덕



최근 TV 드라마 두 편이 역사 왜곡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초를 무대로 삼고서는 전혀 맞지 않는 중국풍 소품들을 동원하고 임금들의 묘사도 적절치 못했다.

결국 시청자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은 끝에 2회 만에 방영이 중단됐다. 다른 한 작품인 ‘설강화’는 아직 방영 전이다. 하지만 현대사의 아픔을 건드리는 바람에 방송사의 연이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며 방영 중단된 TV 드라마 ‘조선구마사’.  필자 제공
최근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며 방영 중단된 TV 드라마 ‘조선구마사’. 필자 제공


물론 역사 왜곡과 잘못된 고증에 대한 논란에 ‘새삼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이를테면 판타지 사극이라는 장르를 들어 제작된 작품들이 대상이다. 또한 일부 문화 콘텐츠 창작자들은 이렇게 되면 자유로운 발상에 제약이 생긴다는 볼멘소리도 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단순히 픽션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분노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나 르포 장르가 아닌 이상 실제 일어났던 역사 속에 가공의 인물을 집어넣는 건 장르와 매체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이와 같은 상상력이 있기에 대중문화들은 다채로운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장금’ 같은 대형 TV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에 몇 줄밖에 나오지 않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지만 소재를 잘 가꾸고 상상을 버무려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TV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도 파격적인 세종의 모습을 선보였지만, 시청자들이 그 이유로 작품 자체를 거부하진 않았다.

‘조선구마사’ 논란 와중에 역사 소재 활용 면에서 긍정적으로 회자된 ‘근육조선’. 필자 제공
‘조선구마사’ 논란 와중에 역사 소재 활용 면에서 긍정적으로 회자된 ‘근육조선’. 필자 제공

고려시대 실존인물 백동수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야뇌 백동수’.  필자 제공
고려시대 실존인물 백동수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야뇌 백동수’. 필자 제공


‘조선구마사’ 같은 걸 만드느니 차라리 이 작품을 영상화하라는 요청으로 화제가 된 웹소설이 있다. 바로 ‘근육조선’이다. ‘근육조선’은 헬스 트레이너가 조선시대 수양대군(세조)에 빙의해 온 조선을 헬스장으로 만드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역사를 왜곡했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다.

실존 인물인 무인 백동수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는 가설을 채용한 만화 ‘야뇌 백동수’나 고려 무신시대 만적의 난이란 역사를 소재로 기공이 난무하는 무협 판타지를 만든 만화 ‘무장’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조선구마사’를 비롯해 대체로 소재 면에서 대중의 분노를 자아낸 사례들을 보면, 단지 허구를 섞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왜,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그리 다루었는가’라는 지점에서 대체로 두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소재로 삼은 실제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이해와 존중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무언가를 등장시키기 위한 개연성이 지극히 허술해 설득력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두 가지에 몹시 예민한데, 그 원인은 사실 그리 단순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피 흘리며 싸운 역사가 있다. 또한 동북아 역사와 영유권에 대한 공방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은 만화 ‘은혼’에서처럼 자기네 역사 속 유명 인사들까지 가차 없이 희화화하거나 게임·애니메이션인 ‘페이트’ 시리즈에서처럼 외국의 영웅적 신화적 인물을 성별까지 바꿔 데려오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와 인물을 소재로 가져올 때 바꿔도 되는 부분과 바꿔선 안 되는 부분에 관한 기준점에 예민하다. 만약 바꾸더라도 존중하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를 소재로 삼는 경우 뼈대 자체를 건드리진 않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해 ‘잘’ 만들어내면 용인이 되지만, 뼈대를 건드리는데 막상 설득력도 없고 재미도 없으면 곧바로 비난의 화살에 직면하게 된다. ‘조선구마사’가 대표적인 후자의 경우다.

때로는 ‘누가’ 시도하느냐도 논란에서 중요한 맥락을 차지한다. 공 모양의 캐릭터를 이용해 국가를 풍자하는 만화 ‘폴란드볼’은 블랙 유머의 영역에서 해석된다. 하지만 일본 작가의 웹 만화 ‘헤타리아’ 시리즈는 일본 우익 관점에서 세계를 묘사하며 한국을 시종일관 비하하고 있으니 귀엽고 재밌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가 몇 차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맞이했던 금전적 문화적 호황기인 ‘다이쇼 로망’을 그야말로 낭만적으로만 묘사한 숱한 만화들을 한국인 입장에서 곱게 볼 여지가 없는 것도 궤를 같이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사례들이 지금까지도 켜켜이 쌓이고 있는 마당이니, 대중들이 용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여타의 논란을 그저 허구를 섞었기 때문이라거나 실제 역사를 비틀어서 일어났다고만 보는 관점은 대중의 분노를 외면한 해석이다.

그렇기에 ‘조선구마사’와 ‘설강화’가 일으킨 논란은 ‘픽션은 픽션, 드라마는 드라마, 만화는 만화일 뿐’이라는 구호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물론 창작자 입장에선 매우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표출하는 분노의 근본 원인을 먼저 직시하길 바란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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