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만화로 문화읽기

책장 넘기던 명작, 스크롤 내려 본다

입력 2021. 03. 16   15:04
업데이트 2021. 03. 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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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만화의 웹툰화와 TV 드라마 리메이크

2003년 선보인 ‘궁’ 10년간 잡지 연재
흑백 원작 지난해 풀컬러 웹툰으로 부활
TV드라마도 인기…최근 리메이크 결정

일본 작품 ‘강철의 연금술사’도 재탄생
웹툰세대에 ‘출판 걸작’ 접근법 관심


만화를 원작으로 제작돼 큰 인기를 모았던 드라마 ‘궁’이 15년 만에 리메이크된다고 한다. 지난 5일 ‘궁’의 저작재산권을 관리하고 있는 재담미디어는 최근 “드라마 제작사 그룹 에이트와 함께 드라마판 리메이크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궁’ 만화판 1권 표지.   필자 제공
‘궁’ 만화판 1권 표지. 필자 제공

‘궁’ TV 드라마판 포스터. 주요 배역을 맡았던 신인 배우들은 이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필자 제공
‘궁’ TV 드라마판 포스터. 주요 배역을 맡았던 신인 배우들은 이 작품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필자 제공


박소희 작가의 만화 ‘궁’은 ‘만약 우리가 광복 후 왕정복고를 해서 지금까지 궁궐에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는 신선한 소재로 화제를 모았던 왕실 로맨스물이다.

특히 지난 2006년 공개된 TV 드라마판은 궁궐 내부를 생동감 있게 묘사해낸 수려한 영상미가 압권이었다. 더불어 신인급 연기자 윤은혜와 주지훈, 송지효와 김정훈을 파격적으로 기용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드라마가 워낙 인기를 끌다 못해 스핀오프 드라마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이번 리메이크 소식은 자연히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웹툰화해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궁’. 흑백만화에 색을 칠하면서 원래 연재 당시에 비해 달라진 세태 등을 반영해 대사와 설정 일부를 수정했다.   필자 제공
웹툰화해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궁’. 흑백만화에 색을 칠하면서 원래 연재 당시에 비해 달라진 세태 등을 반영해 대사와 설정 일부를 수정했다. 필자 제공


‘궁’은 지난해 7월 웹툰 형태로 이미 돌아온 바 있다. 흑백 출판만화였던 원작이 채색판 웹툰으로 완전히 다시 제작돼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별개로 박 작가는 지난 2014년, 안동 하회마을을 소재로 한 지역 홍보용 기획 만화를 ‘궁 외전: 별신의 밤’이라는 형태로 제작한 적은 있다.

만화 ‘궁’은 2003년, 순정만화 잡지 ‘윙크’를 통해 처음 연재를 시작했다. ‘궁’은 이후 무려 10년간 연재되며 순정만화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이 한창 연재되던 때는 한국 출판만화가 만화 전문 잡지를 통해 연재되던 막바지 시기였다. 이 시기 포털 업체들은 출판만화의 형식과 윤태호·황미나·이충호 등 주요 만화가들을 웹툰 연재 공간에 소개했다.

이는 기존의 출판만화 독자층을 흡수하면서 포털 웹툰 연재 공간에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시도는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물론 당시 만화의 미학적 완성도가 다소 정체기를 겪고 있던 상황에서 기성작가들의 전작과 신작들의 등장은 웹툰으로 만화창작을 시작했던 이들에게 큰 자극을 줬다. 그러나 출판만화 형식을 그대로 모니터에 옮겨 보려는 시도는 기대만큼 성과가 없었다.

다음 포털은 지난 2009년 ‘만화 시사회’라는 이름으로 서영웅의 ‘굿모닝 티처’나 이미라의 ‘인어공주를 위하여’ 등 1990년대 수작 출판만화들을 페이지 뷰 형태로 보여줬다. 같은 시기에 네이버는 황미나의 고전 ‘슈퍼트리오’를 채색해 스크롤 형식으로 재연재하고, 시즌2는 페이지 만화 형태로 보여줬다.

또한 네이트는 아예 ‘툰도시’라는 브랜드로 만화 전문 출판사들의 만화잡지들을 웹 공개하고 자체 제작 만화 잡지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들은 스크롤 일변도인 웹툰의 틀을 다변화하거나 그 자체의 성장을 보여주진 못했다. 물론 출중한 기량을 지닌 기성 작가들의 웹툰 시장 본격 진출을 유도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이번 ‘궁’의 풀컬러 웹툰화는 앞선 시도에서 약 10년이 지난 후에야 등장했다. 종전에 1990년대 출판만화 전성기의 수작들을 그대로 보여주려 했던 사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 웹툰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 만화 독자층으로 진입한 이들에게 ‘출판만화’는 세대 면에서 괴리가 다소 있었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크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웹툰부터 만화를 본 세대들도 접해 본 콘텐츠에 웹툰의 스크롤 형식으로 완전히 재편집하고 색을 칠해 과거와는 정반대로 친숙하게 접근하도록 했다.

또한 ‘궁’ 웹툰화는 원작 발표 시점과 너무 멀지 않아 대중적 인지도가 확보된 시점에서, 옛 독자층과 현재 독자층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고 하겠다. 또한 박 작가도 지금 시점에 맞춰 대사를 고치거나 왕실에 맞췄던 설정을 황실로 바꾸는 등 그 사이의 변화를 반영해 단순히 색만 칠하는 복원에 그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궁’ 웹툰화의 사례는 상업만화의 중심이 된 웹툰이 출판만화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지를 보여줬다. 동시에 ‘궁’이라는 브랜드에 신작 발표 수준의 화제를 모으기 위해 새 TV 드라마 발표와 함께 진행하는 전략적인 행보를 보여준 점에서 중요한 선례로 기록할 만하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9월 일본의 흑백 출판만화로 큰 인기를 끌었던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가 한국에서 재채색과 재조립을 거쳐 웹툰 형식으로 연재된 것도 결국은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하겠다.

웹툰화한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홍보 이미지. 해체와 재구축에 가까운 편집으로 책으로 읽었던 기성 독자와 웹툰 독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필자 제공
웹툰화한 일본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홍보 이미지. 해체와 재구축에 가까운 편집으로 책으로 읽었던 기성 독자와 웹툰 독자들을 모두 놀라게 했다. 필자 제공


결국 ‘궁’ 웹툰판과 ‘강철의 연금술사’ 웹툰판은 온라인 비중이 높은 한국 만화 시장에서 출판물로 유명했던 상업 만화를 어떻게 접근시킬까를 보여줬다. 과거의 명작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작가와 업체들에겐 부가수익 창출은 물론 새로운 독자층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례들이 웹툰 시장의 둔화나 정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우려도 된다. 나의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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