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만화로 문화읽기

학폭도 재미만 있으면 그만?...시대착오적 생각 이제 그만!

입력 2021. 03. 02   16:02
업데이트 2021. 03. 02   16:05
0 댓글
9 학교 폭력과 만화

피해자 고통 공감하지 못한 채
재미 위해 무비판·관성적 묘사
폭력 미화 웹툰 여전한 인기 우려
 
‘당신이 저지른 것은 폭력’
알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 시작점


 ‘흰둥이’ 시리즈를 그린 윤필 작가가 스토리를 맡고 주명 작가가 만화를 맡은 작품 ‘일진의 크기’. 키 197㎝였던 일진 ‘최장신’이 성장 축소 증후군에 걸려 최단신 꼬맹이가 되면서 바뀐 입장에서 남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필자 제공
‘흰둥이’ 시리즈를 그린 윤필 작가가 스토리를 맡고 주명 작가가 만화를 맡은 작품 ‘일진의 크기’. 키 197㎝였던 일진 ‘최장신’이 성장 축소 증후군에 걸려 최단신 꼬맹이가 되면서 바뀐 입장에서 남의 고통을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필자 제공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 소녀가 집단 따돌림을 겪으면서도 자존감을 지켜내고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필자 제공
우미노 치카의 ‘3월의 라이온’. 소녀가 집단 따돌림을 겪으면서도 자존감을 지켜내고 상황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필자 제공

한 스포츠 스타에서 시작된 학교 폭력 피해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학교 폭력은 오랜 시간 우리 교육 현장에서 암묵적으로 발생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뒤늦게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더 이상 폭력을 감내하지 않아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만화에는 학교를 무대로 하는 장르로 ‘학원물’이 있다. 학원물은 흔히 학창 시절의 고민, 사랑,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인기를 끌었던 만화는 ‘학원경파물’과 ‘학원폭력물’로 구분되곤 했다. 이런 작품들의 내용은 대체로 동료와의 싸움이다. 반에서 제일 싸움 잘하는 학생이 새 학기에 반을 평정하면, 그다음은 같은 학년 단위에서 반 대표끼리 싸워서 학년 대표를 가리고, 학교 전체의 패권을 쥔 다음 지역·전국 단위로 진출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장기 연재나 다량 출간을 위해 매번 더 강한 상대가 나오는 에스컬레이터 노선 형식의 전개를 취하다 보니, 만화 속에서는 필연적으로 온갖 기상천외한 싸움 기술들이 학교를 무대 삼아 등장한다. 물론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실제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는 폭력도 힘 외에는 어떠한 다른 요소를 배제한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최근 작품들을 보면,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학교 속 풍경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도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는 모습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학생들끼리는 더욱 나쁜 형태로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혀 집단 내 여론을 만들어내는 폭력적 내용이 보인다.

사실 우리 문화 전체로 살펴보면 한 시기에 걸쳐 전근대적인 ‘건달’ 및 집단 체제 문화가 마치 낭만처럼 그려진 적도 있다. 불과 200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장르는 조직폭력배였고, TV 드라마에서도 이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사회 전체와 일반 대중이 조폭 문화의 폭력 논리를 납득하고, 내재화했다고 볼 수 있다.

만화 또한 마찬가지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단순히 만화나 기타 대중문화로 인한 영향 때문이 아니라 폭력을 자기 수단으로 삼은 상태다. 다만 창작자는 그와 같은 폭력을 어떻게 비춰낼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학원물뿐만 아니라 소년만화 등 물리적 강함을 추앙하고 약함을 배격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 상당수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따로 존재한다. 바로 학교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장르적 재미 추구를 위해 무비판적, 관성적으로 이를 묘사해 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만화가 학교 폭력을 부른다’는 비난은 지극히 부당하지만, ‘재미있으면 그만이다!’라고 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당신이 저지른 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도 포털 웹툰 인기 상위권에 피해자를 너무나 못나게 만들고 폭력은 시원하게 연출한 웹툰 ‘외모지상주의’를 비롯해 주먹질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역력한 웹툰 ‘프리드로우’ 등 일진 소재 작품들이 올라가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무엇보다도 이들 작품에서 폭력의 정체에 관해 아무런 생각과 고민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또한 어린 독자층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적인 입장 차를 뒤바꿈으로써 학교 폭력의 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일진의 크기’나, 집단따돌림을 겪는 소녀가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려낸 ‘3월의 라이온’ 같은 작품은 지금 시기에 꼭 읽어보길 권한다. <서찬휘 만화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