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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지 않은 평범의 가치

입력 2021. 02. 25   16:51
업데이트 2021. 02. 25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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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 홍 상병 
해군잠수함사령부 
96잠수함전대
이 규 홍 상병 해군잠수함사령부 96잠수함전대
입대 당시 나는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없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 한 몸 불태우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대학을 다니던 중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했다.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주변 친구 대다수가 육군으로 갈 때 나는 해군을 선택했고, 훈련소에서 국가전략부대인 잠수함사령부 근무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해야만 하는 군 생활이라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잠수함 근무 지원병’이 됐다. 지인들에게 내가 ‘잠수함 근무 지원병’이라고 소개하면 ‘지원’의 의미를 오해해 ‘잠수함 근무를 하고 싶어서 손들어 지원한 병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러면서 “잠수함 타는 게 힘들지는 않으냐”, “대단하다”라며 존경의 눈빛을 보냈고 나는 그들의 오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힘든 척, 잘난 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난 잠수함에 승조하지 않는다. 잠수함 승조원들이 임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그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잠수함 승조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숙련도와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만큼 긴 양성 교육 기간이 필요해서 복무 기간이 짧은 수병은 잠수함 근무를 할 수 없다. 비록 나는 잠수함에 직접 타지는 않지만 ‘잠수함 근무 지원병’으로서 잠수함 전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사소한 행정 업무부터 출·입항할 때 홋줄을 걷거나 연결해 주는 일까지, 과장을 조금 섞어서 얘기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작전하는 ‘잠수함 임무 수행의 시작과 끝’을 내 손으로 지원하는 조금은 특별한 군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잠수함 근무 지원병’이라고 해서 누구나 이렇게 특별한 군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잠수함의 임무 수행에 작은 힘을 보태는 ‘특별한 일’을 하고 있지만, 다른 누군가는 부둣가에서 홋줄을 바다로 던져주는 그저 ‘평범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함이 되고, 누군가에겐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함이 되는 이 커다란 차이는 사실 마음가짐의 작은 차이에서 온다.

비록 나는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병이 아니지만, 내 작은 업무에도 큰 의미를 두고 항상 자부심을 느끼면서 평생 다시는 하지 못할 특별한 군 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군 생활이라면 이왕이면 조금 더 특별하고 즐겁게 하는 것은 어떨까? 비록 의무로 시작하게 된 군 생활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부심을 품고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잠수함 근무 지원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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