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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에서 감상까지 ‘스마툰’(Smart + Toon) 시대

기사입력 2021. 02. 09   16:04 최종수정 2021. 02. 09   16:05

6.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세상 왔다
 
종이→액정 태블릿→스마트 디바이스
만화 제작 도구·환경 급속도로 변화
 
펜 탑재 노트·패드형 기기 휴대도 간편
강력한 기능 페인트 프로그램 속속 개발
시각 문화예술 강력한 생산·소비자 가능

 
내가 처음 만화를 그린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마주한 제주의 기억을 그냥 흘려보내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대의 흥행작 『먼 나라 이웃 나라』의 화풍을 따라 내 나름의 제주 여행기를 만화로 그려냈다. 얇디얇은 연습장에 사진을 잔뜩 붙여가면서 볼펜으로 그린 내 만화는 봐 줄 만한 구석이 없는 연습장 낙서에 불과했다고 자평한다. 물론 처음으로 만화라는 형태로 만들어낸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내게는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이후 내가 만화를 그려 사람들 앞에 내보인 것은 그로부터 30년의 세월이 지난 후다. 지난해 아내와 함께 베이비뉴스에 발표한 ‘PAN&AL’s 난임일기’와 ‘작정해도 어렵네’ 작품이 그것이다. 이처럼 내가 지면을 통해 만화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만화 제작 도구와 환경의 변화 덕분이었다.

필자가 태블릿 기기에 프로크리에이트를 실행해 만화를 작업 중인 모습. A4만한 기기에 펜슬로 바로 그릴 수 있다. 필자 제공

태블릿 기기에 프로크리에이트를 실행해 완성된 필자의 작품 ‘작정해도 어렵네’ 3화. 필자 제공

199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는 곧 만화책 출판을 전제로 했다. 그렇기에 이처럼 종이에 잉크를 찍어 묻힌 펜으로 그리는 만화는 준비 재료와 도구도 명확했다. 종이는 펜에 묻힌 잉크가 번지지 않고 잘 묻을 수 있게끔 두께와 표현이 적당해야 하며, 선은 인쇄를 목적으로 해야 하므로 섬세하되 명료해야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만화 제작도 디지털화가 이뤄졌다. 초반엔 흔히 종이 원고를 스캐너를 이용해 컴퓨터로 그림 전체를 통째로 입력한 후 수정하거나 채색하는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점차 ‘태블릿’이라 불리는 판을 이용해 펜 도구의 움직임을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는 방식이 널리 쓰이게 됐다. 또한 웹툰의 등장으로 컴퓨터를 통해 만화를 읽는 풍토가 일반화되자, 종이 없이 컴퓨터로 직접 만화를 그리는 게 당연해졌다. 나아가 모니터 화면에 직접 선을 그을 수 있는 20인치 이상 대형 액정 태블릿이 등장하면서 훨씬 정교한 작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에도 만화를 그리는 것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존에 종이에 만화를 그리는 과정이 재료와 도구의 이해와 숙련을 필요로 했듯, 태블릿을 컴퓨터와 연결하고 원고 작업을 하는 것도 역시 일정 이상의 이해와 숙련이 요구됐다. 무엇보다도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작업하기 위해서는 태블릿은 물론이거니와 컴퓨터의 사양도 상당한 수준으로 높여야 했다.

웹툰이 초기 단계를 지나 긴 호흡을 지닌 극화 형태로 발전하면서 만화 제작 도구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디지털 환경으로 바뀌면서 원고용지에 펜으로 선을 긋는 방식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됐지만, 일반인이 만화를 그리기엔 되레 쉽지 않은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종이에 펜으로 만화를 그리는 작업은 하는 이도 드물다. 그리고 관련 재료나 도구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디지털 만화 작업은 상당 수준의 장비를 구비해야 가능하다. 만화가 관련 장비를 갖추고 대학에서 전문 지도를 받은 만화 관련 전공자만의 전유물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의 기술이 진보하면서 만화 제작 환경도 변화가 시작됐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한 2010년을 전후해 디지털 기기를 만드는 업체들은 수많은 기술을 기기 안에 탑재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한 노트·패드형 스마트기기도 등장했다.

손으로 화면을 조작하는 터치 디바이스가 보편화한 가운데 펜으로 간단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기기들도 출현했다. 단지 손가락보다 섬세한 터치가 가능한 것을 넘어 힘을 주면 굵게, 약하게 주면 가늘게 그려지는 필압까지 감지 가능한 펜을 탑재한 스마트 디바이스들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 디바이스 전용 페인트 앱인 프로크리에이트(procreate)가 만화가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른 데 이어 클립스튜디오(Clip Studio), 메디방 페인트(Medibang Paint)와 같은 강력한 프로그램들이 속속 스마트 디바이스용 앱으로 등장해 환경 차이를 줄이는 데에 일조했다.

무엇보다도 휴대가 간편한 크기에 별다른 하드웨어 설치 없이 보편화한 도구로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은 PC보다 사양이 낮을 수 있는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처럼 지극히 고화질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비교적 그럴듯한 수준의 만화 원고가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최근에는 프로 작가들도 실제 원고에 스마트 디바이스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이처럼 스마트 디바이스는 ‘누구나 만화를 그릴 수 있다’라는 수사를 가장 직관적으로 현실에 구현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회차에서 언급한 ‘프로 데뷔와는 별개로 붐을 이루는 인스타툰’ 또한 이러한 기술적 발전에 따른 진입장벽 완화가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화라는 형태로 남기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일은 자신이 소지하고 있는 도구만으로도 충분한 세상이 된 것이다.

앞으로 만화가 시각 문화예술로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강력한 생산소비자 저변을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필자 서찬휘는 새로운 시각으로 만화를 해석하며 꿈을 전하는 만화칼럼니스트로 『키워드 오덕학』, 『덕립선언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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