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UN가입 30년과 軍 국제평화협력활동

허허벌판에 부대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서현우

입력 2021. 01. 27   17:03
업데이트 2021. 01. 2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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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선발대의 시간

장교·부사관·병사 등 선발대 60명
모가디슈 항 들어온 장비·물자
하역·수송 마치고 시설 공사 착수
 
적 침투 대비 부대 방호 특히 신경 써
치명적인 독사 등 파충류 출몰하자
1m 높이 모기장 설치 유해동물 차단
악명 높은 독사 모기장에 걸리기도
 
김영삼 대통령, 부대에 격려 전화
국민 성원 보답고자 임무 더욱 매진
 
임시 숙영지를 편성하고 있는 선발대원들의 모습.   사진 제공=정장수 운영과장
임시 숙영지를 편성하고 있는 선발대원들의 모습. 사진 제공=정장수 운영과장
소말리아 모가디슈 항구에서 장비를 하역하고 있는 선발대원들.
소말리아 모가디슈 항구에서 장비를 하역하고 있는 선발대원들.
공사 간 경계 임무 중인 부대원들.
공사 간 경계 임무 중인 부대원들.
주둔지 구축을 완료한 상록수부대 전경.
주둔지 구축을 완료한 상록수부대 전경.

선발대는 본대보다 먼저 파견돼 주둔지 조성과 행정업무 처리 등의 제반 준비 임무를 한다. 부대가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첫 단추가 되며, 그 역량에 따라 부대의 성패가 갈린다. 소말리아처럼 황량하고 척박한 낯선 이국의 땅에서는 특히 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상록수부대 1진 선발대는 1993년 6월 29일 서울공항을 출발해 이튿날 소말리아 모가디슈에 도착했다. 앞서 같은 달 15일 부대의 장비·물자를 싣고 먼저 떠난 선박이 현지에 도착하는 시점을 맞춘 일정이었다. 본대는 7월 31일 합류할 것이었다. 남은 시간은 한 달여. 이제부터는 선발대의 시간이었다.

선발대는 장교·부사관·병사 등 60명으로 구성됐다. 선발대장은 부대 운영과장 정장수 소령(당시 계급)이 맡았다. 부대 장비·물자를 실은 선박이 7월 9일 모가디슈 항에 들어오자 이튿날부터 하역작업을 시작했다. 이틀간 진행된 작업에는 유엔이 제공한 트레일러, 크레인, 지게차 등이 동원됐다. 주둔지로 수송을 마친 선발대는 주둔 시설 공사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주둔지는 모가디슈 북동쪽 약 40㎞ 지점, 이탈리아 여단 본부 울타리 내에 자리했다. 이탈리아 여단 예하 공수연대와 군수지원대대가 부지를 남북으로 나눠 각각 주둔했고, 우리 군은 그 중간에 약 3만㎡ 규모의 주둔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선발대장 정 소령은 선발대원들과 함께 본대가 오기 전까지 기존 네 개 동의 건물을 보수해 본대 도착 즉시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준비했다. 또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 사항으로 주둔지를 구성했다. 허허벌판 같은 맨땅에 조금씩 부대의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조성 중인 주둔지를 혼자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이탈리아군 여단 장교 아쿠카 중위가 정 소령을 향해 달려왔다. 아쿠카 중위는 선발대 도착 때부터 도움을 주던 우리 군 담당 장교였다. 아쿠카 중위는 곳곳에 도사리는 파충류들을 조심해야 한다며 부대 안에서도 혼자 움직이면 안 되며 바짝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Seven steps die!”

독사에 물리면 일곱 걸음 이내에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탈리아 사람이라 영어 실력이 능숙하지 않았지만, 세 단어만으로 충분히 뜻을 알 수 있었다. 알고 봤더니 독사뿐만 아니라 전갈, 도마뱀, 이구아나 등도 자주 출몰했다. 주둔지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사전에 숙지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언제든 벌어지기도 한다. 빠르게 현장을 파악해 대응·대비하는 것도 선발대의 임무였다. 정 소령은 적 침투 같은 비상상황에 대비한 부대 방호에 특히 신경 쓰는 동시에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자 했다. 해충과 벌레의 서식을 방지하고자 화단 설치를 금지하고, 주둔지 인근에 1m 높이로 모기장을 설치해 유해동물을 차단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그 모기장에 아프리카 독사로 악명 높은 맘바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 소령은 매일 아침 위성통신 장비로 부대장 장정훈 중령과 교신하며 현지 상황과 진행 일정을 꼼꼼히 공유했다. 본대 합류 후 즉각적인 임무 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장 중령 역시 정 소령을 포함한 선발대의 노력을 잘 알고 있다. 장 중령은 “완벽했다”는 한마디로 선발대의 임무 수행을 평가했다.

이어 본대가 도착하자 8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잔여 공사를 함께 진행해 컨테이너 50동과 텐트 47동을 비롯해 사무실, 공동시설, 급식·위생시설, 주둔지 방호벽 등을 완성했다. 본격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때를 맞춰 이튿날 대통령이 부대에 전화를 걸어왔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부대장 장 중령과 통화하며 부대원들의 현지 적응과 건강 여부를 확인했다. 또 작전 준비상황을 보고받으며 장병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특히 장병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며 임무 수행할 것을 주문했다. 약 8분간의 전화통화 내용은 1993년 9월 11일자 국방일보 지면에도 실린 바 있다.

“충성. 상록수부대장 장정훈 중령입니다. 부대 이상 없습니다.”

“더운 데서 얼마나 고생이 많아요?”

“온 국민의 성원 속에 부대원 모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실제 공사 준비도 잘 진행되고 있지요?”

“네. 실제 공사 준비도, 정찰도 끝냈고 모든 준비 완료했습니다.”

대통령의 안부와 당부는 계속됐다.

“그래요. 첫째도, 둘째도 안전에 유의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대표입니다. 당당하면서 친절하게, 한국인이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대통령으로서 상록수부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부대원들은 대통령의 전화 이후 더욱 힘을 냈다. 아니 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당부이기 전에 무사 임무 완수를 바라는 온 국민의 성원이었기 때문이다.

서현우 기자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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