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친의 전략론·작전술 『스베친의 전략론 그리고 작전술』 (스베친 저·전갑기 역, 2018, 도서출판 선인)
1차 세계대전 패인 분석 대안 제시
5개 주제 전략·작전 이론·실제 전개
유연하고 개방적인 전략 구사 강조
전쟁사 실질적 교훈 바탕 작전 적용
일찍이 나폴레옹은 “누구나 전쟁을 계획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는 드물다. 왜냐하면 진정한 군사적 천재만이 그 전개와 상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정치가는 전쟁의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가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정치목표에서 최종적인 군사목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전략가는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러시아군이 1차 대전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해 전략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알렉산드르 스베친이다. 소련군 프룬제 참모대학 전략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전쟁사와 국제관계를 분석해 국가전략 등 안보와 관련한 총체적이고도 분석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스베친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업시설을 비롯한 모스크바 서쪽의 군수시설은 향후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전쟁 개시와 동시에 생산을 중단하고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며 모스크바와 우랄산맥 사이에 배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스탈린은 이를 무시했지만, 이후 독일군이 러시아를 공격했을 때 상황은 그가 예측한 대로 전개됐다.
스베친은 저서에서 190개 소주제를 군사학에서의 전략, 전략과 정치, 무력전선의 준비, 최종 군사목표 달성을 위한 작전의 결합, 지휘라는 5개 주제로 나눠 전략과 작전술의 이론과 실제를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다. 또 고대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전쟁, 나폴레옹전쟁, 보불전쟁, 미국 남북전쟁, 러일전쟁과 1차 대전의 전쟁사 분석을 통해 도출한 통찰력을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소련과 러시아의 용병술 체계 정립
러시아군 용병술 체계의 이론과 실제는 러시아 혁명 이후 스베친이 기본 토대를 정립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전략과 작전술은 스베친이 세웠던 이론적 바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북한군의 용병술도 소련군 용병술의 아류이며 용어도 러시아군 용어를 번역,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 전후에 프룬제와 투하체프스키 그리고 게루아 등 군사적 걸물들이 많이 출현했다. 스베친은 게루아와 더불어 러시아 작전술의 유산을 새롭게 정리하고 전략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작전술의 현대적 의미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전술이란 작전술 차원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제공하며 전략은 그 방향을 지시하며, 작전술은 전술과 작전술을 연결하는 군사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술과 과학이라고 했다.
역사상 전략을 소모전략과 섬멸전략으로 구분한 사람은 병법사를 저술한 한스 델브릭이다. 섬멸전략은 적의 병력을 쓰러뜨리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했고 소모전략은 전투의 극과 기동의 극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움직이는 전략을 말하는데 스베친을 소모전략의 대표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스베친이 주장한 소모전략은 공세 섬멸전략을 주장한 투하체프스키의 이론과 대립했다.
투하체프스키는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소련군 총참모장을 지내면서 종심전투 이론을 주장했다. 소련군의 전략이 당시 시대 상황이 요구했던 신경제정책(NEP)에 의해 종심작전으로 확장되면서 어떤 면에서 보면 이론의 타당성보다 정치적 환경과 만주사변이 스베친의 이론을 배척케 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은 엄청난 인명·물자 손실을 봤다.
스베친은 1차 대전과 혁명 내전으로 소련의 국력이 약화됐고 방어가 공격보다 강력한 전쟁형태이기 때문에 수세전략이라는 소모전략을 주장했다. 이는 나폴레옹전쟁을 분석한 결과 내린 결론이었다. 투하체프스키가 공세 섬멸전략을 주장한 이유는 소련군의 존재 목적이 외부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다른 나라로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했는데, 투하체프스키는 1937년 6월 12일에, 제국주의 첩자로 정치재판에 회부돼 반동분자 판결을 받은 스베친은 1937년 7월 29일 처형됐다.
스베친은 전략을 논하면서도 전략과 정책 그리고 전략을 중심으로 한 제반 관계에 대해 본질의 연관성을 논했다. 서구의 전략에 관한 책자들이 부대 운용에 중점을 둔 반면 스베친의 전략은 경제와 전쟁 그리고 그 외에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상호 간의 상관성을 심도 있게 논하고 있다. 스베친은 전략이 병참선에 관한 연구라고 단언한다.
스베친 전략론의 현대적 의의
본서는 국방대 김영준 교수가 주장한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현대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스베친은 늘 시대와 상황, 전쟁 양상이 변하기 때문에 전쟁사 연구를 바탕으로 도그마나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고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전략을 구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상황, 전쟁의 양상변화에 따라 공방의 전략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고 정치, 과학기술, 병력, 지형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미래 전쟁 대비 전략구상을 위해 전쟁사에서 도출된 교훈이 핵심이 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스베친 자신이 참전용사였고 당시 참모대학 학생 장교들이 러일전쟁과 1차 대전 참전용사들이었기 때문에 전쟁사에서 도출된 실질적 교훈을 바탕으로 비평·분석하고 전략과 작전에 적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셋째, 스베친은 통합군사지도자의 개념과 더불어 전략에서 환경과 상황에 맞는 융통성 있는 공격과 방어를 강조했다. 그의 전략적 방어가 고착화 된 방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술과 전술 영역에서는 역습과 관여, 선제공격 등 다양한 작전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주장했고 그의 소모전략은 러시아의 전투준비태세를 고려해 모스크바의 방어를 보장하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익숙한 장소에서 주도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스베친은 정치군사문제를 전략과 군사, 역사적인 측면에서 다뤘다. 군사학 연구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이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를 통한 전략이론을 중시했고 이는 마한과 리델하트 등의 전략일반이론 도출과 유사하면서도 작전술과 전술 그리고 지휘와 연계시켰다는 면에서 특이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명저
안드레이 코코신은 『소련전략사상 1917-1991』에서 소련의 1920~1930년대가 러시아 전략사상의 황금기라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에 승리하고 세계적인 강군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기반은 당대 소련 전략사상의 발전 덕분이라고 하면서 스베친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 미국의 러시아 전쟁사 학자인 제이콥 킵 박사는 작전술 개념을 세계 최초로 현대전에 도입하고 적용한 사상가로 스베친이 러시아 전략사상가에서 더 나아가 세계전략사상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영어판 서문에서 주장하고 있다.
본서가 비록 1차 대전 이후에 집필됐고 거의 90년 전의 책이기는 하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고민하는 전략과 작전에 관한 진수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많은 통찰을 주고 있다. 특히 강대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우리에게 전쟁의 정치적·작전적 차원에서 동맹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동맹국과의 전략 일치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의 전략적·작전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본서는 정말 소중하고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하겠다. <주은식 예비역 준장(육사 36기)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스베친의 전략론·작전술 『스베친의 전략론 그리고 작전술』 (스베친 저·전갑기 역, 2018, 도서출판 선인)
1차 세계대전 패인 분석 대안 제시
5개 주제 전략·작전 이론·실제 전개
유연하고 개방적인 전략 구사 강조
전쟁사 실질적 교훈 바탕 작전 적용
일찍이 나폴레옹은 “누구나 전쟁을 계획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 자는 드물다. 왜냐하면 진정한 군사적 천재만이 그 전개와 상황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정치가는 전쟁의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가의 조언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정치목표에서 최종적인 군사목표가 나오기 때문이다.
전략가는 미래를 합리적으로 예측해 방안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러시아군이 1차 대전에서 패한 이유를 분석해 전략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알렉산드르 스베친이다. 소련군 프룬제 참모대학 전략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전쟁사와 국제관계를 분석해 국가전략 등 안보와 관련한 총체적이고도 분석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스베친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업시설을 비롯한 모스크바 서쪽의 군수시설은 향후 독일이 러시아를 공격할 경우 전쟁 개시와 동시에 생산을 중단하고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며 모스크바와 우랄산맥 사이에 배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스탈린은 이를 무시했지만, 이후 독일군이 러시아를 공격했을 때 상황은 그가 예측한 대로 전개됐다.
스베친은 저서에서 190개 소주제를 군사학에서의 전략, 전략과 정치, 무력전선의 준비, 최종 군사목표 달성을 위한 작전의 결합, 지휘라는 5개 주제로 나눠 전략과 작전술의 이론과 실제를 파노라마처럼 전개하고 있다. 또 고대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전쟁, 나폴레옹전쟁, 보불전쟁, 미국 남북전쟁, 러일전쟁과 1차 대전의 전쟁사 분석을 통해 도출한 통찰력을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소련과 러시아의 용병술 체계 정립
러시아군 용병술 체계의 이론과 실제는 러시아 혁명 이후 스베친이 기본 토대를 정립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러시아군의 전략과 작전술은 스베친이 세웠던 이론적 바탕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었다. 북한군의 용병술도 소련군 용병술의 아류이며 용어도 러시아군 용어를 번역, 차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시아 혁명 전후에 프룬제와 투하체프스키 그리고 게루아 등 군사적 걸물들이 많이 출현했다. 스베친은 게루아와 더불어 러시아 작전술의 유산을 새롭게 정리하고 전략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작전술의 현대적 의미를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전술이란 작전술 차원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제공하며 전략은 그 방향을 지시하며, 작전술은 전술과 작전술을 연결하는 군사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술과 과학이라고 했다.
역사상 전략을 소모전략과 섬멸전략으로 구분한 사람은 병법사를 저술한 한스 델브릭이다. 섬멸전략은 적의 병력을 쓰러뜨리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했고 소모전략은 전투의 극과 기동의 극이라는 양극 사이에서 융통성 있게 움직이는 전략을 말하는데 스베친을 소모전략의 대표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스베친이 주장한 소모전략은 공세 섬멸전략을 주장한 투하체프스키의 이론과 대립했다.
투하체프스키는 1925년부터 1928년까지 소련군 총참모장을 지내면서 종심전투 이론을 주장했다. 소련군의 전략이 당시 시대 상황이 요구했던 신경제정책(NEP)에 의해 종심작전으로 확장되면서 어떤 면에서 보면 이론의 타당성보다 정치적 환경과 만주사변이 스베친의 이론을 배척케 했다.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은 엄청난 인명·물자 손실을 봤다.
스베친은 1차 대전과 혁명 내전으로 소련의 국력이 약화됐고 방어가 공격보다 강력한 전쟁형태이기 때문에 수세전략이라는 소모전략을 주장했다. 이는 나폴레옹전쟁을 분석한 결과 내린 결론이었다. 투하체프스키가 공세 섬멸전략을 주장한 이유는 소련군의 존재 목적이 외부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을 다른 나라로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했는데, 투하체프스키는 1937년 6월 12일에, 제국주의 첩자로 정치재판에 회부돼 반동분자 판결을 받은 스베친은 1937년 7월 29일 처형됐다.
스베친은 전략을 논하면서도 전략과 정책 그리고 전략을 중심으로 한 제반 관계에 대해 본질의 연관성을 논했다. 서구의 전략에 관한 책자들이 부대 운용에 중점을 둔 반면 스베친의 전략은 경제와 전쟁 그리고 그 외에 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상호 간의 상관성을 심도 있게 논하고 있다. 스베친은 전략이 병참선에 관한 연구라고 단언한다.
스베친 전략론의 현대적 의의
본서는 국방대 김영준 교수가 주장한 바와 같이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현대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스베친은 늘 시대와 상황, 전쟁 양상이 변하기 때문에 전쟁사 연구를 바탕으로 도그마나 교조주의에 빠지지 말고 유연하고 개방적으로 전략을 구사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는 상황, 전쟁의 양상변화에 따라 공방의 전략을 융통성 있게 적용하고 정치, 과학기술, 병력, 지형 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함을 강조했다.
둘째, 미래 전쟁 대비 전략구상을 위해 전쟁사에서 도출된 교훈이 핵심이 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스베친 자신이 참전용사였고 당시 참모대학 학생 장교들이 러일전쟁과 1차 대전 참전용사들이었기 때문에 전쟁사에서 도출된 실질적 교훈을 바탕으로 비평·분석하고 전략과 작전에 적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셋째, 스베친은 통합군사지도자의 개념과 더불어 전략에서 환경과 상황에 맞는 융통성 있는 공격과 방어를 강조했다. 그의 전략적 방어가 고착화 된 방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전술과 전술 영역에서는 역습과 관여, 선제공격 등 다양한 작전형태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주장했고 그의 소모전략은 러시아의 전투준비태세를 고려해 모스크바의 방어를 보장하면서 결정적인 승리를 익숙한 장소에서 주도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스베친은 정치군사문제를 전략과 군사, 역사적인 측면에서 다뤘다. 군사학 연구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사이 영역이라고 주장하면서 역사를 통한 전략이론을 중시했고 이는 마한과 리델하트 등의 전략일반이론 도출과 유사하면서도 작전술과 전술 그리고 지휘와 연계시켰다는 면에서 특이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명저
안드레이 코코신은 『소련전략사상 1917-1991』에서 소련의 1920~1930년대가 러시아 전략사상의 황금기라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독일에 승리하고 세계적인 강군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기반은 당대 소련 전략사상의 발전 덕분이라고 하면서 스베친의 공로를 높이 평가한다. 미국의 러시아 전쟁사 학자인 제이콥 킵 박사는 작전술 개념을 세계 최초로 현대전에 도입하고 적용한 사상가로 스베친이 러시아 전략사상가에서 더 나아가 세계전략사상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영어판 서문에서 주장하고 있다.
본서가 비록 1차 대전 이후에 집필됐고 거의 90년 전의 책이기는 하나,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고민하는 전략과 작전에 관한 진수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많은 통찰을 주고 있다. 특히 강대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우리에게 전쟁의 정치적·작전적 차원에서 동맹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며 동맹국과의 전략 일치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의 전략적·작전적 배경을 이해하게 되면 본서는 정말 소중하고 귀중한 가르침을 준다 하겠다. <주은식 예비역 준장(육사 36기) 한국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