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서정욱 미술토크

‘절실함’ 미술의 시작이었다

입력 2021. 01. 19   16:23
업데이트 2021. 01. 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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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미술의 처음, 원시미술

벽화·구조물·조각상 등 원시미술 대표작…불안감 극복의 선택이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스톤헨지
스톤헨지
알타미라 동굴벽화
알타미라 동굴벽화

지금 기분이 어떤가? 어린아이처럼 편한가? 걱정이 조금은 있는가? 아주 편한 것만은 아니죠? 위로를 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좀 있죠? 나는 여러분의 불안감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항상 불안감이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 것이다. 미술의 처음인 원시미술을 보면 그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데 원시미술이라는 용어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 아닐까? 하지만 아니겠죠. 여러분도 1만 년 전쯤에 태어났다면 지금쯤 막 동굴벽화를 그리다가 잠깐 쉬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반문이 드는가? 그런데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21세기 문명시대인데 무슨 연관이 있다는 말이냐? 그런데 아니죠. 오히려 단순한 시절을 살펴보다 보면 지금 문제의 힌트를 얻기가 쉬울 수도 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우리의 본 모습을 찾기가 다소 어렵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의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유행하는 형식 속에 감추게 된다. 비슷해지려는 본능 또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에는 부작용이 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오래 그러고 있으면 몸과 마음에 해가 된다.

오늘은 원래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까? 원시미술의 세계를 함께 탐구해 보자. 석기시대의 미술품 세 점이 있다. 하나는 동굴벽화이다. 알타미라 동굴 것이다. 그리고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이라고 하는 작은 조각상이 있다. 크기는 11㎝ 정도다. 그리고 스톤헨지라고 하는 거대한 돌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세 미술품 다 원시미술사에서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은 기원전 1만5000년쯤 것으로 추정되고, 빌렌도르프의 조각상은 기원전 3만 년쯤, 그리고 스톤헨지 구조물은 기원전 2000년쯤의 것인데 우리는 고고학자가 아니니 시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은 ‘왜 만들었을까?’일 것이다. 왜 만들었을까? 당연히 기록이 없어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 분명한 필요가 있었기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절실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당시는 사냥과 채취로 살아가던 시기였다. 석기시대. 먹고살거나 굶어 죽거나 선택은 둘 중에 하나다. 그런데, 한가롭게 동굴에 그림이나 그리고 아무 도구도 없이 수많은 시간 조각상에 혼신의 힘을 쏟거나 맨손으로 45톤짜리 돌을 옮기고 쌓고 그랬을까? 아니겠죠? 그들에게는 필수였을 것이다. 의문이 다시 듭니다. 왜 필수였을까? 먹고살면 됐지? 저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했을까?

그런데 그런 게 있었다. 처음 한 말 기억하는가? 불안감. 죽을 만큼 힘들 수 있는 불안감. 기원전 1만5000년쯤 석기인들에게나 지금 우리에게나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불안감은 이런 것이었겠지. 내일은 사슴이 잡히려나. 오히려 맹수에게 물려 죽지는 않을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겁이 났겠죠? 우리 식구들이 병에 걸려 죽으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없애고자 그들은 어떤 퍼포먼스를 했고, 저런 그림과 조각과 구조물들을 만들었다.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미술의 기원이 되었다. 즉 미술은 사치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의 시작은 절실함이었다.

다음의 궁금증은 용도다. 사실 무엇을 보면 그게 먼저 궁금해지죠. 당연히 고고학자들은 용도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논문들도 많다. 연구결과를 보면 동굴벽화는 사냥을 위한 기원이다. 주술 도구 중 하나이다. 빌렌도르프의 조각상은 다산과 풍요의 기원 등등이다. 스톤헨지는 좀 더 여러 가지다. 별을 보던 천문대라는 것부터 죽은 자의 무덤이라는 것까지. 실제 스톤헨지 아래서는 50명 정도 고대인들의 뼈들이 발견됐다.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의 소통의 무대라는 것도. 하지만 당연히 정설은 없다. 수만 년 전의 일이니 다 추측이겠죠. 확실한 것이 뭐가 있을까?

하지만 고고학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확실한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최소한 의식주에 관한 것은 아니다. 먹는 것은 아니고, 사냥 도구도 아니다. 잠자리도 아니고 의복도 아니다. 결론은 이렇다. 인간에게는 의식주 말고도 확실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불안감을 해소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미술품을 만들 때의 태도다. 어떻게 아느냐고? 디테일을 보면 안다. 너무 너무나 성실했고, 세밀했음이 분명하다. 보통 정성으로 한 것이 아니다. 스톤헨지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수십 톤짜리 돌이다. 그 돌도 멀리서 가져온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동했고, 어떻게 세우고, 어떻게 저토록 정밀하게 배치했을까? 아무 도구도 없이, 어떤 수학적 지식도 없이…. 많은 고고학자도 이것을 궁금해한다. 단순한 수레조차 없었고, 석기시대였기에 쇠망치 하나 없었을 때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지만 그런 고고학자들도 분명한 이유 하나는 안다. 그것은 석기인들의 믿음. 즉 신념이다. 신념과 믿음은 인간의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 결론은 그들은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신념과 믿음은 긍정적인 기대를 만들어냈고 불안감을 없애주었던 것이다.

처음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에게는 크든 작든 불안감이 있다. 알고 보니 원래부터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것들과 함께 살겠지.

보통 불안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하나는 불안하면 짜증이 나니 참지 않고 화를 내며 푸는 선택이다. 또 하나는 신념과 믿음 같은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무언가에 정성을 다하는 방식이다. 석기인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상상하기도 힘든 미술품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이어져 신비로운 이집트 미술, 그리스의 화려한 미술, 그리고 중세의 어마어마한 성당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미술의 바탕에는 불안감의 극복이 있었다. 

<서정욱 아트앤콘텐츠 대표>
사진=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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