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인플루언서블 세대; 자신의 영향력을 알고 행동해 변화를 만든다

입력 2020. 12. 29   16:13
업데이트 2020. 12. 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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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인플루언서블 세대·끝 
 
신조어로 보는 MZ세대
[마이사이더] 자신만의 기준으로
[다만추] 다양한 사람과 만남 추구하며
[세컨슈머]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해
[선한 오지랖] 더 나은 사회를 만든다 

 


“이 돌멩이도 쓸모가 있어, 어디에 쓸지는 몰라도…. 이 돌멩이가 쓸모없다면 세상도 쓸모가 없는 거야.”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인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로 1954년에 나와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 ‘길(La Strada)’에 나온 대사다. 영화는 자신을 묶은 쇠사슬을 끊는 등의 시원찮은 묘기를 보여주는 떠돌이 차력사와 그를 보조하며 살아가는, 지능이 떨어지나 순진무구한 소녀 젤소미나의 유랑을 그렸다. 잠시 그들과 함께했던 줄타기 곡예사 마토는 차력사에게 맨날 구박받고 사는 젤소미나에게 동정과 연정이 섞인 감정을 느끼며, 함께 도망가자고 한다. 결정하지 못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젤소미나에게 마토가 길 위의 하찮은 돌멩이를 집어 들면서 한 말이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의 황량한 풍경과 처연함이 정전 후 한국의 피폐한 상황과 어우러지며, 미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후벼 팠다. 한국에서는 특히 여자 주인공이 부는 처량한 트럼펫 곡조에 맞춰 “오, 젤소미나, 애달프고나”라는 가사를 붙인 주제가가 널리 불렸다. 할 일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만 같던 시절이었다.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정해져 있을까?


일자리를 구한다는 ‘구직(求職)’을 붓으로 쓴 팻말을 허리에 동여매고 힘없이 길가 건물의 벽에 기대고 선 청년을 찍은 임응식 작가의 1953년 사진이 그때가 어떤 시대였는지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청년 뒤편에서는 말끔하게 양복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서로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넥타이를 맨 인물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그 힘든 시절에도 사람마다 형편에 차이가 있어서, 잘나간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잘된 이들이 나오면서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고, 그게 물처럼 넘치고 온돌 아랫목 따스함이 윗목으로도 퍼지듯 다른 이들도 혜택을 입는다는 소위 ‘낙수효과’니 ‘온돌효과’니 하는 용어가 나왔다. 그런데 정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물이 떨어지고 있는지, 온기가 방 전체로 퍼지고 있는지, 더 깊이 들어가면 갈증을 달래줄 물과 따스한 온기를 나눌 의향이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다른 이들과 나누고 베풀 수 있는 것인지 기준을 묻는다. 그만큼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친다.


기부도 놀이처럼 ‘우리는 MZ세대’

태어난 지 7654일 되는 날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스물한 살이 되기에 열흘 이상 모자란 날이고, 대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날이다. 실제로 아무 의미 없는 날인데, 그날을 기념한다고 자신의 SNS 팔로어를 대상으로 기프티콘을 주는 이벤트를 연다. 자신의 다이어트 도전을 응원해 달라면서 역시 SNS를 통하여 기프티콘을 뿌리기도 한다. 팔로어가 몇 명 되지도 않는데, 허황스럽게 수만 명이 팔로우하는 ‘인플루언서’에게나 어울릴 행동을 한다고 혀를 차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기부도 놀이처럼 하는 MZ세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베풀며 ‘인플루언서 놀이(Influencer Play)’를 게임처럼 즐기기도 한다.

사실 인플루언서 여부를 가리는 공식 기준은 없다. 10만 팔로어를 가진 사람은 100만을 둔 이를 보며 열등감을 갖는데, 100만 팔로어 보유자는 방탄소년단(BTS)을 보면서 한숨을 쉴 수 있다. 그런 부러움과 질시는 종종 자신보다 못하다고 규정한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재능과 노력에 따라 합당한 결과를 얻는다는 능력주의의 어두운 일면이다. 기존에 강제된 것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찾는 ‘마이사이더’의 길을 개척한 MZ세대는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과 활동 시도를 추구하는 ‘다만추’를 통해 스스로 인플루언서로 나아간다. 그래서 대학내일 20대연구소는 MZ세대의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여, ‘영향(influence)’을 ‘줄 수 있다(-able)’라고 하여 ‘인플루언서블(influenceable)세대’라는 특성을 제시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

기프티콘을 뿌리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즐거워하는 데서 그친다면 지위라고도 할 수 있는 ‘인플루언서’라는 칭호를 돈을 뿌려 사는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가치는 다른 이들에게 작게나마 기쁨을 줄 수 있는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렇게 소수의 사람이나마 함께 즐거워하며 세상이 좀 더 살 만하게,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 기업이 ‘#I_Am인플루언서’라는 슬로건과 함께 진행한 광고캠페인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향력에 물음을 던지며 시작한다. “네임드가 되거나/ 수만 팔로어를 가졌거나/ 좋아요를 많이 받아야만/ 영향력이 있는 걸까?” 자문자답 형식으로 답을 내준다. “오늘 우리가 행한 가치로운 일이/ 내일 조금 세상을 변화시킨다면/ 그 또한 대단한 영향력이라고 생각해”라면서 “보여줘/ 너의 선한 영향력”이라고 작은 행동이라도 촉구한다. 일상에서 하는 크고 작은 실천들이 곧 ‘사회적 가치’이고, 이것을 실천하는 이들이 스스로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인플루언서’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은 행동이 가져온 커다란 긍정적 변화

김아림 선수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 우승에 이어 스포츠계에 축하할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올해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2019년 12월에 70m를 질주하며 넣은 원더골로 한 해 최고로 멋진 골에 주는 푸스카스상을 받았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상식 후 그에게 얼떨결에 패스를 해줘, 생각지도 못한 어시스트를 기록한 얀 페르통언 선수와 한 영상통화가 화제가 되었다. “내 어시스트가 없었다면 골이 불가능했지”라고 페르통언 선수가 농담을 건네자, 손흥민 선수는 “슈퍼 얀, 멋진 도움이었어. 정말 고마워”라고 화답했다. 아주 작은 의도치 않은 행동이라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의식하지 못한 작은 행동이나 존재가 큰일을 가능하게 한다.

“만약 여러분이 사업을 한다면, 혼자서 그 사업을 창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누군가 그런 사업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들었겠죠.”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말이다. 출생하면서부터 누구나 사회에 구축된 의료·교육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다. 학교에 가려고 건설된 다리를 건널 수 있고, 멘토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그런 당연한 현상을 두고 한 얘기인데, 거기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입니다.”


상대의 영향력 인정하지 않는 건 ‘꼰대’


영향력은 더는 일방적이 아니다. 조직에서 수평적인 환경에서 의견을 주고받아야 진정한 피드백이 되고, 피드포워드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기능한다. 수직적인 환경에서 잘못을 지적하면 거의 간섭으로 끝나고 만다. 꼰대와 선배를 구분하는 기준에 꼰대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고, 선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게 있다. 다른 식으로 얘기하면 간섭과 꼰대는 상대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행동이고 그러는 사람들이다. 인플루언서블 세대의 진정한 인플루언서는 누군가의 행동이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대화의 주도권도 독점하지 않고 나누며,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 선한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

일상에서 이루는 소소한 성취나 행동들, 직접적인 요구가 없어도 행하는 선한 오지랖, 버리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세컨슈머의 원칙이 어우러져 만드는 세계관을 나누는 친구들 속에는 계급이 없다. 지속 가능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가볍고 선한 영향을 나눌 뿐이다.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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