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6·25 발발 당일 북한군 첫 침투한 곳이 바로 정동진

입력 2020. 12. 24   15:26
업데이트 2020. 12. 24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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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끝) 2017  '7번국도'

작사 미소 /작곡 미소 /노래 장민호 

 
동해안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옛 추억 떠올려


<7번 국도>는 7호선 국도라고도 한다. 이 도로는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에 이르는 513.4㎞의 일반국도를 말한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연결하는 30여 개 남북노선 가운데 하나다. 2017년 장민호가 부른 이 노래 속의 화자(話者)는 동해안 해변을 따라 강릉 정동진에서 남쪽 울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을 산책(散策)하면서 옛 추억을 더듬는다. 찬란한 아침 해도 떠오르고, 처럭 거리는 파도 소리에 끼룩끼룩 갈매기 소리가 뒤엉킨다. 추억어린 옛 포장마차는 들렀을까 그냥 스쳐 지나쳤을까. 이 노래 속의 정동진(正東津) 부근이 6·25전쟁 발발 당일 새벽 3시 북한군이 최초 침투했던 곳임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노래 속의 화자는 동해안 해변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진 도로를 남행(南行)하면서 옛 추억을 떠올린다. 사연도 세세하고 눈에 밟히는 장면도 많다. 우리나라 유행가 중에 도로(道路)이름이 들어간 곡은 1960년대 남상규가 부른 <애수의 김포가도>도 있다. 다시는 안 찾겠다 맹세했건만 / 그래도 잊지 못해 마지막으로 / 애절하게 달려온 김포공항이여 / Trap마저 떨어지고 허공만 남아 / 님 없는 활주로여 아아 아아아 / 애수의 김포가도 눈물의 가도. 이 노래는 김포공항의 이별을 모티브로 했는데, 남상규에 이어 남일해·문주란·남진·신환균 등이 1960~1990년대 초반까지 불렀다.

<7번국도> 노래 첫 소절의 정동진은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에 있는 바닷가다. 강릉 남쪽 18㎞ 지점, 서울 경복궁(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위도상으로는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있는 도봉산의 정 동쪽에 있다. 신라 때부터 임금이 사해용왕(四海龍王)에게 친히 제사를 지내던 곳. 이곳의 해안 단구(段丘) 절벽은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답다. 근처 정동진역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고, 1994년 TV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또 이곳은 1950년 6월 25일 옥계면 일대에서 우리 해군과 북한국이 벌인 최초의 전투인 옥계전투(玉溪戰鬪)가 벌어진 곳이다. 6·25전쟁 발발 이전 이곳(양양·강릉)은 국군 제8사단 제10연대가 38선 경비를 맡았고, 제21연대는 삼척에 주둔하며 후방경계의 임무를 담당했다. 동해안경비는 해군 제2정대·묵호경비부가 담당하고 있었다. 이 지역을 6월 25일 3시경 사전 침투공격을 한 부대가 제766유격대(부대장 대좌 우진우·1917~1995·북한군 인민무력부장 역임)와 제945육전대(오랫동안 549부대로 알려졌음)다. 이들의 목적은 국군제8사단의 퇴로를 차단, 궤멸시킨 뒤 6월 29일까지 포항까지 남하해서 부산을 신속히 점령한다는 계획이었으나, 묵호사령부는 육군과 경찰 병력 등과 연합해서 북한군을 격퇴한 후, 6월 26일 포항으로 철수했다.

도로에는 노선번호가 부여된다. 남북 방향의 도로는 서쪽 노선부터 순차적으로 홀수 번호를 붙이고, 동서 방향의 도로는 남쪽에 있는 노선부터 순차적으로 짝수 번호를 부여한다. 세 자릿수 노선번호도 있다. 352번 도로는 3번 도로에서 5번째로 파생되고, 또 거기서 2번째로 개통됐다는 의미다. 이 바둑판식 도로 명칭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용되고, 군사작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 국도1호선은 목포~신의주를 연결하는 도로다. 목포·무안·함평·나주·광주·장성·전주·논산·공주·천안·평택·수원·안양·서울·고양·장단·개성·평양·신의주를 연하는 선이다. 국도1호선은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기에 신작로(新作路)를 설치한 것을 근간으로 하는데, 천안 이북 구간은 조선시대 대로(大路)와 거의 일치하지만, 이남은 일본의 쌀 수탈과 식민통치의 목적에 따라 일부 변형됐다. 1971년 8월 31일 일반국도노선지정령에 의해 국도제1호선으로 지정됐고, 우리나라 등록문화재 제79호다.

<7번국도>의 노랫말 두 번째 모티브 간절곶(艮絶串)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해안의 돌출된 곳을 말한다. 동해안에서 맨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 영일만 호미곶보다 1분, 강릉 정동진보다도 5분 빨리 해가 돋는다. 간절곶은 간절한 곳이 아니다. 곶(串)은 막다른 한계점의 끝자락 땅이라는 뜻. 이 근처 서생포는 회야강(回夜江) 어귀, 임진왜란 발생 이듬해인 1593년 평양까지 진출했던 왜군이 명나라와 강화협상을 하면서 경상도 해안지역으로 회군(回軍)해 돌로 성(城)을 쌓은, 서생포 왜성이 있다. 동남해안에 쌓은 왜성 28개 중 가장 동쪽에 위치한 성으로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가 주둔했던 곳이다. 인근에는 울산성이 있는데 왜구는 제1차울산성전투, 벽제관 전투, 제2차 진주성전투를 임진왜란 3대첩으로 꼽는다. 우리가 한산도대첩·행주대첩·제1차 진주대첩을 3대첩으로 하는 데 대한 대칭 논리다. 조선의 권율과 정기룡 장군, 명나라 양호와 마귀 장군이 연합한 5만 7000여 명의 공격(1598년 1월 4일)은 가토 기요마사의 1만 5000명이 방어한 울산성을 무너뜨리지 못한다. 하지만 왜군은 식수(食水)가 고갈돼 밤마다 성벽을 넘어 태화강 물에 머리통을 처박고 물을 마시다가 조선군에게 척살(刺殺)된 놈이 한둘이 아니었다. 또 식량 고갈로 말을 잡아먹고, 성벽 돌에 붙은 이끼를 삶아 먹고, 눈을 녹여 식수로 사용하는 등 전장 공황에 빠졌다. 조명연합군이 철수(1598년 2월 9일) 한 후 가토 기요마사는 울산성에서 서생포 왜성으로 퇴각해 주둔하다가 1598년 본국으로 패퇴(敗退)한다. 그 후 가토는 울산성전투를 교훈 삼아 구마모토 성에 120개의 우물과 고구마 줄기로 된 다다미를 만들었다. 고구마 줄기 다다미는 유사시에 삶아서 먹는 군량으로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유행가를 흥얼거리면서 휘늘어지고 간들거리는 가락에 어깻죽지를 덩실거리면서도 노랫말을 재갈재갈 씹어보시라. 그 사연들이 우리의 역사다.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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