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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익어가는 4차 사과혁명

입력 2020. 12. 21   17:00
업데이트 2020. 12. 2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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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로 만든 전통주가 당신을 춤추게 한다 ‘댄싱사이더’



‘술이 만들어진 장소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다. 흔히 말하듯이,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펴낸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을 통해 한 말이다. 그렇다. 좋은 술은 함부로 이동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다.

댄싱사이더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대표가 선택한 ‘좋은 술’은 ‘사이더(Cider)’라는 사과 과실주였다. 미국 유학시절 사이더(Cider)를 처음 접했던 이 대표는 이 낯선 술의 매력에 빠졌다.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과실주인 사이더는 사과의 단맛과 향이 탄산과 함께 느껴지는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술이었다.

미국에서 대학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서 사이더(Cider)를 몇 번이나 찾아보았지만, 사이다가 아닌 사이더(Cider)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사이더를 마시며 지인들과 함께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었던 사과향이 나는 그 시간들이 그리워질 때마다 ‘사이더의 주재료는 사과인데, 맛있는 사과가 매년 생산되는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국내에서 수제 사이더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것이 댄싱사이더(농업회사법인㈜비전레드)의 시작이었다.

국내 농가에서 수확한 사과에 인공 착향료나 설탕, 색소 등을 넣지 않고 좋은 날을 더욱 좋게 만드는 술을 만드는 것. 이 대표의 목표는 오로지 이 하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신선하고 맛 좋은 사과를 찾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사과의 고장 ‘충주’가 떠오른 이 대표는 무작정 충주로 떠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사과 하나만 떠올리고 떠난 충주에서 이 대표는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충주시는 인구 약 21만 명의 소도시이다. 충주시에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청년들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여기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진행하는 ‘2019년 농업과 기업 간 연계강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는 등 다양한 지원 또한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사이더 제조 기술이었다. 맥주가 나라별로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듯 사이더 역시 각 지역에서 마시는 스타일에 차이가 있었다. 영국에서는 드라이하면서도 높은 도수의 사이더를 주로 마신다면, 프랑스에서는 달달한 저도수의 사이더를 많이 마신다. 미국의 경우에는 다양한 맛과 폭넓은 도수를 지니는 특성이 있어 댄싱사이더는 미국 사이더 업계의 독창적인 맛에 대한 시도를 국내에서 해보기로 했다.

이대로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구성모 이사는 이를 위해 미국에서 다수의 사이더 양조장을 방문했고, 이 중 미국 크래프트 사이더 양조장인 ‘Downeast Cider House’라는 곳과 기술제휴를 맺었다. 미국의 양조사들은 충주를 직접 방문해 자신들의 양조 기술을 전수했다. 그 후 미국 양조장에서 만드는 사이더 레시피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닌, 국내 사과로 ‘댄싱사이더’가 원했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맞는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밟았다. 이렇게 댄싱사이더의 충주 양조장은 2019년 4월 문을 열었다.

처음 탄생한 제품은 ‘스윗마마(Sweet Mama)’와 ‘댄싱파파(Dancing Papa)’이다. 스윗마마는 사과를 베어 물었을 때 기대할 법한 달달함과 새콤함이 온전히 느껴질 정도로 사과 고유의 풍미가 돋보인다. 댄싱파파는 아버지들을 춤추게 만든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데, 드라이한 맛을 선호하는 애주가들을 위해 단맛이 덜하고 도수는 조금 더 높은 것이 특징이다.

댄싱사이더가 충주의 지역 기업으로 자리 잡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른 농가와도 연계됐다. 사과로 만든 사이더에 블루베리를 첨가하여 새콤달콤함을 그대로 담아낸 ‘와쥬블루(Oiseau Bleu)’, 사이더에 오미자와 라즈베리의 산뜻함을 담은 ‘요새로제(Yose Rose)’ 등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댄싱사이더만의 새로운 맛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충주에 문을 연 댄싱사이더 양조장
충주에 문을 연 댄싱사이더 양조장

댄싱사이더의 철학은 좋은 술을 그냥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는 양조 기술을 연구하고 활용하여 국내 과실 발효주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이 대표의 ‘사이더라는 술을 마실 때의 좋은 경험을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충주를 선택하게 했고, 충주의 자연환경이 그의 꿈을 도왔다. 브랜드명인 댄싱사이더(Dancing Cider)에는 사이더를 마실 때의 흥겨운 느낌을 담아 ‘춤을 추게 만드는 사이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좋은 사이더는 품질 좋은 사과 원물을 착즙하고, 이 착즙된 즙을 건강하게 발효시켜 독창적인 블렌딩(Blending, 두 개 이상의 성분을 혼합하는 과정을 뜻함) 과정을 통해 깊은 풍미로 완성된다. 성공하는 스타트업들을 살펴보면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좋은 아이디어인 원료에 용기와 추진력이 섞이고 합쳐지는 과정을 거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풍미가 더해질 때 비로소 좋은 기업이 된다.

최근 댄싱사이더처럼 지역과 연계하여 지역의 특성을 담아낸 양조 스타트업들이 많다.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지만, 좋은 술은 그 지역에서 자라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도 한다. 양조 스타트업들이 술을 통해 지역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성장하는지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자.
<박지영 『창업가의 생각노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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