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눈빛은 적진 경계하고 가슴은 고향 생각에 젖어 있네

입력 2020. 12. 18   17:03
업데이트 2020. 12. 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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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1966 <달뜨는 휴전선>
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 /노래 도미 


정전협정 체결 13년 뒤 나온 노래
휴전선서 달 올려다 본 노래 속 화자
고지전투서 스러져간 영령 떠올리다
피 흘린 보람 없이 가로막힌 현실 한탄


<달뜨는 휴전선>은 6·25전쟁(1950.6.25.~1953.7.27.)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13년 뒤 탄생한 노래다. 노래 속 화자는 휴전선의 서쪽 시작점, 강화군 교동도로부터 김포반도 시암리·용강리·철산리를 거쳐 연천·철원·화천·향로봉·건봉산·월비산에 이르는 동쪽까지 연결되는 휴전선에서 경계총 자세로 머리 위의 달을 올려다보고 있다. 달빛이 반사되지 못하도록 얼굴에는 검정을 칠했다. 눈빛은 적진을 경계하고 가슴은 고향 생각에 젖어 있다. 1966년 지구레코드 음반 120103에 실린 이 노래는 6·25전쟁 중에 널리 불렸던 <전선 야곡>의 동생 같은 노래다.

노래 속의 화자는 6·25전쟁 말기 정전협정의 막바지 시기 고지전투에 몰입하다가 산화하신 호국영령들의 환청(幻聽·실제로 들려오지 않는 소리가 마치 실제의 소리처럼 들리는 현상)을 듣고 있다. 호국영령들은 북진 자유통일을 지향하다 이승을 등진 님들이다. 노래는 피로 물든 저 벌판, 피 흘린 보람도 없이 가로막힌 휴전선을 한탄한다. 노래 속의 화자가 노려보는 달빛 어스름한 능선은 정전협정 초창기 격전지였던 ‘피의 능선(Bloody Ridge)’이 아닐까. 이 노랫말을 지은 한종명 작사가를 꿈결에서 뵐 수 있다면 여쭤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이 능선 전투에서 산화하신 호국영령님을 추모하는 서사시(敍事詩)를 헌정한다. ‘양구 동면에 가면 / 월운리에서 북쪽으로 뻗은 / 983·940·773고지 능선이 있다 / 이름하여 피의 능선 (하략)’ 6·25전쟁 초기 전투의 전략적 지향점은 지역 확보였으나, 정전협정이 시작되면서는 고지전투 중심의 유생역량격멸(有生力量擊滅)을 통해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 지향점이었다.

<달뜨는 휴전선> 노래 속의 전우는 밤도 깊은 벙커 속에서 등잔불을 밝혀 놓고 고향에 편지를 쓴다. ‘녹슨 철책 그림자 따라 / 술래 잡는 여우가 울고 / 한가락 가슴 여미는 / 귀뚜라미 노래가 구성지면 // 괭이 메고 걸어가는 아버지 어깨너머로 / 새끼 딸린 암소 워낭소리를 따라 / 맨발로 70년 엇박자 걸음걸이 / 어머님 머리 위엔 잿빛 구름이 머물고 // 동구 밖 느티나무 아래 피어오르는 / 할머니의 전솔 속에 저녁 해가 스러지면 / 사대(四代)가 둘러앉은 담장 너머로 / 내리사랑 향기가 연기 따라 피어오르고 / 쑥대 연기 휘둘러진 멍석 위에는 / 질화로에 묻어 둔 군밤이 익어 튀고 / 마음 가난한 아버지 농주 잔에는 / 하늘에서 뿌려진 푸른 별 넘실넘실.’ 고향 생각을 하면서 쓴 편지의 끝자락에는 치열한 휴전선 고지전투에서 사라져 간 영령들을 떠올린다. 전우라는 이름으로.

<달뜨는 휴전선>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 한산도는 1931년 청진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한철웅이다. 그는 작곡가로서는 한산도, 가수로서는 한종명이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어린 시절 일본에 잠시 체류하다 해방 후 부산에 정착해 중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48년 부산 영도에 있던 코로나레코드에서 백영호가 작곡한 노래 <고향 아닌 고향>으로 가수로 데뷔했으며, 한종명이라는 예명으로 <천리 여정>, <왕검성 길손>, <청춘 에레지>, <하와이안 코리안>을 발표했다. 작사가로서는 <추억의 소야곡>, <해운대 엘리지>, <동백아가씨> 등을 남겼으며, 작곡가로서는 <덕수궁의 돌담길>, <바보처럼 울었다> 등을 발표했고, 1998년 7월 31일 수원에서 향년 67세로 작고했다.

작곡가 백영호는 1920년 부산(진주설도 있음)에서 출생해 만주(만주는 중국 54개 민족 가운데 만주족의 발상지인 백두산 인근의 연변 조선족자치주 지역 전역을 일컫는 통칭임) 신징(新京·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주국을 건국한 후 수도로 정한 곳. 현재의 창춘 지역)음악학원을 수료했으며, 1964년 <동백아가씨>로 23세의 이미자를 국민가수 반열에 올려놓은 작곡가다. 본명은 백영효다. 그는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서울이여 안녕>, <울어라 열풍아>, <황포 돛대>, <추억의 소야곡>, <석류의 계절>, <아씨>, <여로>, <저 강은 알고 있다>, <지평선은 말이 없다> 등 100여 곡의 히트곡을 이미자와 함께 제조해 냈다. 또한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남상규의 <추풍령> 등을 포함해 4000여 곡을 지었고 2005년 3월 21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본명이 오종수인 도미는 1934년 상주에서 출생해 6·25전쟁 중이던 1951년 17세 나이(대구 계성고 3학년)로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당시 대구극장에서 실시한 오리엔트레코드 주관 제1회 전속가수 선발 경연대회 입상을 했던 것. 이때 공동입상자는 방운아(본명 방창만)다. 평소 현인을 흠모하던 오종수는 학교를 마치고 박춘석을 찾아가서 현인의 <신라의 달밤>으로 오디션을 받는다. 이때 박춘석이 야인초 작사가를 소개하고, 노랫말을 청탁해 본인이 곡을 붙인 노래가 <신라의 북소리>다. 이것이 도미의 가수생활 시작이고 <청포도 사랑>, <하이킹의 노래>, <청춘 브라보>, <비의 탱고>, <효녀심청>, <사도세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인 올해도 나라를 지키다 스러져간 호국영령을 떠오르게 하는 애잔한 노랫가락이 국민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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