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세월도 설움도 굽이굽이 강물 따라 흘러가네

입력 2020. 12. 11   17:28
업데이트 2020. 12. 13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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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963 <한탄강 사연>   

작사 월견초 /작곡 이한욱 /노래 장세정 

 
한탄은 ‘큰 여울’ 뜻…‘탄식’ 오해도
이름 따른 유래·얽힌 역사 많아
‘한탄강 ’이름 붙은 유행가 다양
전사·실종된 호국영령 노래로 기려 

 


6·25전쟁이 정전협정을 체결한 후 전쟁의 상처를 보듬는 대중가요들이 많이 탄생했다. <전선야곡>, <전우야 잘 자라>, <경상도 아가씨>, <굳세어라 금순아>를 비롯해 <한탄강 사연>도 그런 류의 노래다. ‘한탄강 사연’은 1963년 스타레코드 STL-7001 음반 A면에 실렸다. 한탄(漢灘)은 큰 여울이라는 뜻으로 탄자가 여울 탄(灘)자다. 그런데 많은 대중들은 탄식한다는 한탄(恨歎)으로 오해하고 있다. 노래 속의 화자는 6·25전쟁 중에 한탄강 유역에서 전투를 하다가 전사·실종된 호국 영령을 기리는 듯하다.

한탄강(漢灘江)은 북한 평강군에서 발원해 철원군~연천군을 거쳐 전곡읍과 미산면 사이에서 임진강과 합류한다. 총 길이는 136㎞. 이 강은 한여울로 불려왔으며, 전곡읍에 한여울마을도 있다. 옛 기록에는 대탄(大灘)으로도 기록돼 있다. 후고구려 궁예가 이 강 주변 현무암을 보고 나라가 곧 망한다고 한탄해서 한탄강이라고 불린다는 설도 있고, 풍설(風說)에는 6·25전쟁 당시 미쳐 이 강을 건너지 못한 피난민들의 한탄을 근거로 한탄강으로 부른단다. 한탄강 유역의 전곡읍은 삼팔선이 지나는 곳으로 6·25전쟁 당시 쌍방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격전지였다.

한탄강 유역은 철원~연천~전곡~파주를 거쳐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휴전선 일대다. 유역의 지명은 여울 탄(灘)이나 시내 천(川)과 같은, 물과 연관된 이름이 많다. 한탄·차탄·신탄·포천·회천·연천·동두천·운천 등인데, 이와 같은 거센소리 지명들은 슬픈 전설을 지녔다. 옛 철원은 후고구려의 장군 왕건(877~943)이 918년 태봉국의 군주 궁예(857~918)를 제압하고 고려를 건국한 근원지다.

이 한탄강 유역의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은 철원 승일교(昇日橋)가 대표적이다.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6호.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를 잇는 다리다. 이 다리는 건설과정이 의미가 깊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 패망 직후, 철원군이 소련 군정을 거쳐 북한 영역에 속하던 1948년 한탄교(漢灘橋)라는 이름으로 착공됐다.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장이었던 김명여의 설계로 러시아식 공법의 아치교로 설계된 이 다리는, 동송읍 쪽 아치교각만 완성된 상태에서 6·25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가 1952년 주한 미군 제79공병대와 대한민국 제62공병대가 갈말읍 쪽 교각(橋脚)과 보를 완성, 1958년 개통하고 승일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승일교 명칭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김일성이 시작하고 이승만이 끝냈다고 하여 이승만 승(承)자와 김일성 일(日)자를 합쳐 승일교(承日橋)라 했다는 설과 김일성을 이기자고 승일교(勝日橋)라고 했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화설(話說)이리라. 정설은 이 다리를 건설하고 6·25전쟁 중 북한 인민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박승일(朴昇日, 1920~?) 연대장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라고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한탄강을 연하는 인근에는 6·25전쟁 이전 북한노동당 당사(黨舍), 격전의 10여 일 동안 주인이 스무 번 이상 바뀐 백마고지, 녹슨 열차의 객량(客輛)이 남아 있는 월정리역 등등이 세월 저편의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승일교 부근에는 고석정(孤石亭)이란 작은 바위섬이 있다. 신라 진평왕(?~632)과 고려 충숙왕(1294~1339)이 다녀간 곳이란다. 이곳에는 6·25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철원·평강·김화)전투를 기념하는 전적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한탄강이 서류(西流)하는 연천(漣川)의 연(漣)은 눈물 흘린다는 뜻. 그래서 인가. 고려에 항복한 신라 왕조 마지막 제56대 경순왕(?~978) 능(陵)이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 흐르는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잠들어 있다.

또한 파주시 장단면 사천강이 흐르는 벌판 가운데 도라산(都羅山)이 있다. 도라산전망대와 도라산역이 있는 곳, 높이 156m. 낙랑공주(樂浪公主·안정숙의공주)는 고려의 공(公)으로 침몰한 남편을 위해 산 중턱에 암자를 지었다. 그 암자가 바로 영수암(永守菴)이다. 정승공은 날마다 이곳에 앉아서 신라 방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단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성도 도(都)자에 신라 라(羅)를 붙여 흔히 도라OP라고 한다. OP(관측소)는 Observation Post의 줄임말이다. 이 왕의 아들이 마의태자(麻衣太子·삼베옷을 입은 왕자). 이름과 이력은 분명하지 않다. 이 왕자가 아버지의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고려에 항복하는 정치적인 판단에 반대하면서 금강산으로 들어간 사연을 읊은 노래가 유행가 <마의태자>다. 1934년 미스코리아 김추월(1896~1933)이 부른 절창. ‘풀 옷을 몸에 감고 금강에 해 지우니 / 망군대 바위 돌에 새긴 뜻 한숨 지네.’ 모란봉이라는 예명의 그녀는 이 노래로 ‘금강산에 숨어 있다가 봉화를 들고 나온 천사’라는 칭송을 받았다. 1931년에는 안기영이 가곡으로, 1957년 손인호, 1982년 송창식, 1999년 조영남이 각각의 가사와 멜로디로 불렀다. <눈물의 한탄강>, <말 없는 한탄강>, <한 많은 한탄강>, <한탄강 달밤>, <한탄강 사연>, <한탄강 야곡>, <한탄강의 슬픈 역사> 등 한탄강 이름이 붙은 유행가도 많이 탄생했다.

대중가요, 유행가, 트로트는 역사의 보물이다. 한 곡에는 7요소(작사·작곡·가수·시대·사람·사연·모티브)가 노래 탄생 당시의 현재완료형으로 어우러져 있다. 이 노래 300곡을 음유할 수 있으면, 만인의 벗이 될 수 있다. 가삼백만인우(歌三百萬人友), 시삼백사무사(詩三百思無邪)에 비길 만한 말이다. 역사 쳇바퀴 속 큰 여울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탄강은 그래서 우리 가슴에 살아 숨 쉬는 것일까?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유차영 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운영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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